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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빨갱이'란 낙인을 떨쳐버릴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지난 68년 6월 타고있던 태영호가 북한 경비정에 나포된 후 납북됐다가 4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40여년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생활하다 최근 명예를 회복한 강대광(65.전북 부안군 위도면)씨. 강씨는 지난 7일 오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명예회복 조치에 따라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과거사위는 '태영호 납북사건'을 반민주적 인권유린 사태로 결론짓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조치를 권고했다. 태영호 납북사건이란 1968년 6월 태영호 선장 강씨 등 선원 8명이 서해안 어로저지선에서 작업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가 4개월 만에 풀려난 사건으로 이듬해 강씨 등 선원이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20대 때부터 배를 탔던 그는 당시 서해안 연평도 부근에서 병어잡이를 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북한 경비정에 의해 선원들과 함께 납북됐다. 납북 당시 "이제는 고향땅 한 번 밟지 못하고 죽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강 선장과 선원은 4개월만에 극적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기쁨의 순간도 잠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들에게는 차가운 냉대만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즉시 공안당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결국 '빨갱이'란 낙인과 함께 영어의 몸이 됐다. 동료 선원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강씨는 뚜렷한 이유없이 오직 선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난 78년 다시 구속돼 꼬박 10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그때 당한 구타와 고문으로 현재 양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한 여름에도 오한에 시달리는 등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도 더욱 참기 힘들었던 것은 직계가족은 물론 먼 친척까지 감시의 눈을 벗어나지 못하는 '연좌제'였다. 그는 "나 때문에 친척들도 이웃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취직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씨는 "뒤늦게 나마 진실이 파헤쳐져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다시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