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때도 이러진 않았다…“미분양 매입해줘선 안 된다”_팀베타 장점이 뭐죠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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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분양, 어떤 기준이길래 위험 수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지난해 12월 기준 6만 8천여 가구로 늘었습니다. 많긴 많은 것 같은데 얼마나 많은지 감이 잘 안 잡히죠? 이 같은 규모는 2013년 8월 이후 9년 4개월 만에 최대치입니다. 그리고 1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입니다.

많이 늘어난 것 같긴 한데 이게 위험한 건지 또 감이 안 잡힙니다. 일단 정부는 위험신호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미분양 20년 평균인 6만 2천 가구를 위험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분양 20년 평균이 위험선일까요? 금융위기 때 대규모 미분양 사태 전후로 돌아가 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정부가 정한 위험선은 외환위기 이후 10년 평균 6만 9천 가구가 위험선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하면 지금의 미분양 규모는 위험선이 아닌 거죠. 또 현재 미분양 규모는 당시 본격적인 미분양 위기가 오기 1년 전인 2006년 7월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2006년 7월은 미분양에 대한 위기감으로 첫 대책이 나왔던 2007년 9월보다 1년 2개월 앞선 때로 미분양 아파트 위기감이 크지 않았습니다.

다만 최근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 증가 속도는 우려할 수준입니다. 위 그래프에서 보더라도 최근 증가 속도는 2008년 금융위기 전후 크게 치솟던 미분양 아파트 증가속도와 비슷한 기울기입니다.

■ 이익 날 때는 대비 안 하다가 미분양 늘어나니까 도와 달라?

건설업계에선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으면 업계가 줄도산하게 되고 이는 또 금융 분야에까지 파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미분양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정원주 주택건설협회 회장은 지난달 31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LH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청년과 신혼부부 등의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도 건설 중인 미분양 주택을 현행 공공매입가격(최고 분양가의 70~75%) 수준으로 매입하고 준공 이후 사업 주체에 환매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해 갑자기 이렇게 말했을 리는 없죠. 바로 건설사들을 위해서입니다. 정 회장은 "주택 경기가 어려워지면 모든 경제가 흔들린다"며 주택 경기발 경제 위기론을 언급했습니다.

이미 건설업계의 정부지원 요청은 미분양이 늘어나는 초기 단계부터 예견됐습니다. 과거에도 그래왔기 때문이죠. 건설시장이 좋을 때는 너도 나도 빚을 내 아파트를 과잉 공급해 많은 이익을 얻고, 미분양이 쌓여 자금회전이 안 되면 자체 해결하지 않고 정부와 국민에게 손을 내밉니다. 위험을 대비할 시간은 충분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전후 대규모 미분양 사태 때도 당시 주택·건설 관련 업계는 정부에 미분양 아파트 매입이나 양도세 감면, 대출규제 완화, 분양권 상한제 폐지 등을 요구했습니다. 정부에선 이를 받아들여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했었죠. 그때도 똑같이 건설사들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체들 수출 등으로 힘들 때 정부가 나서서 생산품을 사줄까요? 지난 1년간 자영업자 34만 명이 폐업했는데, 자영업자들이 파는 옷, 신발, 음식 같은 걸 정부가 매입해줬어야 했을까요? 같은 논리로 제조업이 어렵든 자영업자들이 어려우면 우리 경제가 흔들리는데 말입니다.

■ 미분양 매입, 논란만 키울 수도..

정부 산하 LH가 미분양 아파트를 고가에 매입했다고 해서 최근 논란이 됐었죠. 서울 강북구의 한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인데, LH는 지난해 12월 21일 전용면적 19~24㎡ 36채를 1채에 평균 2억 2천만 원에 매입했습니다. 평균 분양가보다 12% 할인된 금액인데 문제는 이 아파트의 다른 평수 미분양 아파트는 시행사가 15% 할인분양 하고도 안 팔리던 곳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할인분양이긴 하지만 더 싸게 살 수 있는 걸 LH가 사서 논란이 됐습니다. LH는 이는 정부의 미분양 주택 매입과 관련 없고 이미 계획된 청년용 매입임대주택을 절차에 따라 구매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비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급기야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지난달 30일 본인의 SNS에 "내 돈이었으면 이 가격에는 안 삽니다"라고 글을 올리며 LH를 비판했고, LH의 매입임대사업 전반에 감찰을 지시했습니다.

■ 금융위기 때 '미분양 매입' 어떤 상황이었길래?

그렇다면 과거 2008년 전후 정부는 왜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줬고, 국민들 반응은 어땠을까요?

앞서 전했던 것처럼 2006년까지는 정부의 미분양 매입 얘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7년 9월 잇단 건설업체의 부도 사태에 당시 노무현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 매입 계획을 발표합니다. 발표가 나올 당시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9만 7천여 가구로 현재 6만 8천여 가구보다 3만 가구가량 더 많았습니다.

당시 정부는 2007년 안에 준공 후 미분양 주택 5천 가구는 직접 사들이고, 2만 가구는 민간펀드를 조성해서 해소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전용면적 60㎡ 이하 주택은 장기임대용 국민임대주택으로, 전용면적 60㎡ 초과 주택은 비축용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었죠.

시민들의 반발은 컸습니다. 건설업계의 손해를 국민 혈세로 막으려 한다는 것이었죠. 당시 야당이자 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민간건설사가 지은 미분양 아파트를 재정자금으로 사주는 것은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의 극치"라며 미분양 매입 정책을 비난했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KDI도 2007년 10월에 발간한 '2008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 부동산시장 등 특정 부문에서 발생하는 충격에 대한 정책은 시장경제의 기본적 구조조정 원칙을 준수하는 범위에서 수행된다는 기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구조조정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이 보고서를 제작한 조동철 선임연구위원(현재 KDI 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건설업체들의) 뒤를 봐주는 듯한 정책을 쓰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으며, 어떤 경우라도 본인 책임하에서 사업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올바른 방향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풀어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해 시장경제 원칙에 맡겨 미분양 사태로 인한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하고, 업계 뒤를 봐주는 듯한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당시 미분양 매입에 나선 주택공사가 내세운 기준은 "감정가 대비 희망 매도가격이 낮은 아파트부터 우선적으로 매입 협상에 착수하겠다"는 것으로 싸게 팔겠다는 미분양만 우선적으로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업계는 버텼습니다. 싸게 팔 수 없다는 거죠.

실제로 당시 정부가 낮은 가격에만 우선권을 주자 실제 매입 신청한 주택은 4,500가구, 이 가운데 감정평가까지 마치고 매입협상에 들어간 주택은 1,900가구밖에 안됐습니다. 이마저도 주택공사가 감정가의 80% 선을 업체에 요구해 분양가에서 30~40% 할인된 가격만 매입 가능해 실제 매입된 아파트는 적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합니다. 이후에도 미분양은 계속 늘어 2008년 8월, 미분양 아파트는 15만 5천 가구로 늘어납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때 미분양 대책으로 준공 후 미분양이 아닌 건설업계가 원하는 '건설 중인 미분양 아파트' 매입 계획까지 발표합니다. '환매조건부' 미분양 아파트(공정률 50% 이상) 매입으로 대한주택보증이 매입하되 준공 이후 사업시행사가 다시 매입을 원할 경우 당초 공공매입 가격에 더해 자금조달비용(이자 수준)이 보장되는 수준으로 환매할 수 있도록 하는 옵션을 부여했습니다. 단 분양가 이하로 소비자들에게 파는 조건입니다.

건설사들로선 이보다 좋을 수는 없죠. 일단 정부 도움받아서 자금회전 시킨 뒤 나중에 부동산 경기가 조금이라도 살아나면 최초 분양가 아래 가격이지만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3년 현재 건설업계가 원하고 있는 방법이 바로 이겁니다. 노무현 정부 때 준공 후 미분양 매입 정책을 맹비난했던 한나라당은 여당이 되면서 입장을 바꿔 더 완화된 대책을 내놓은 셈이 됐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역경매 방식입니다. 짓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라도 더 할인된 가격을 써낸 건설사만 구제됐습니다.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었죠. 당시 기사를 보면 분양가 대비 50% 수준에서 매입이 이뤄졌습니다. 요즘 '환매조건부'로 건설사들이 요구하고 있는 분양가 대비 70~75%선보다 엄격한 기준이었습니다. 당초 2008년 8월 당정은 분양가 대비 70~75% 수준이라고 미분양 대책을 발표했지만, 도덕적 해이 비판이 컸고 실제 사업시행을 하는 주택보증으로 사업이 넘어가면서 분양가 대비 50%로 기준이 강화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8년 5,000억, 2009년 1조 5,000억 원 규모로 1만 3천여 가구를 환매조건부로 매입했습니다.

2010년 ‘환매조건부 미분양 아파트 추가 매입’  정부 발표 보도자료
그리고 2010년에도 정부는 추가로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 발표를 하면서 '도덕적 해이' 논란을 의식해 정부 합동 대책 발표 때 보도자료에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분양가 대비 50% 이하 수준으로 매입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 당시에도 미분양 물량은 11만 가구였습니다.

■ 미분양 해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할인하라"

다시 2023년 현재로 돌아옵니다. 지금 미분양 6만 8천 가구는 당시 첫 미분양 아파트 대책이 나올 당시 미분양 물량 10만 가구에도 훨씬 못 미치는 규모입니다. 게다가 2019년~2021년 부동산 경기활황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으면서도 위기에 대비하지 않은 건설사들을 위해 국민 세금이 투입돼선 안 되겠죠. 심지어 신용등급이 아예 없을 정도로 부실한 일부 건설사들이 PF대출에 의지해 사업을 해왔는데, 그 위험을 국민에게 떠넘겨선 안 될 것입니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우리 국민 중에는 이처럼 몸집이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큰 기업을 망하게 하면 경제가 흔들리고 수많은 실업자를 우리 경제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냐는 거죠. 그래서 위기 시에는 정부가 도와줄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설산업계도 같은 생각인 듯 합니다. 주택경기가 어려워지면 한국경제가 흔들린다는 논리죠. 하지만, 미분양이 지금 해소되지 않아 몇몇 건설사들이 도산한다고 해서 경제위기가 오는 것도 아닙니다.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과 한문도 겸임교수는 지난 7일 KBS1 라디오 '홍사훈의 경제쇼'에 출연해 "부실은 나겠지만, 경제위기까지 안 갈 것이다. 현재 주택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조정돼 다시 가격이 돌아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분양 때문에 도산한다고 하지만 큰 회사들은 도산하는 곳 없다. 메이저 건설사들은 주택사업에서 비중을 줄였고 SOC사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체 건설회사의 매출 총량은 변하지 않았고, 무리한 수익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땅을 사서 수익을 올리려고 했던 건설사만 문제지 전체적인 큰 그림에는 문제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건설사들은 이를 피할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분양가를 내리는 거죠. 10% 할인된 가격에도 안 팔리면 20% 할인하고, 그래도 안 되면 3~40% 할인해야 합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혹시 손해가 나도 지금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건설사뿐 아니라 소상공인 자영업자부터 유통업, 제조업 모든 분야에서 위기 시에는 적자를 보더라도 그렇게 대처합니다.

다만 건설사 위기가 금융위기로 전이돼 은행이나 저축은행 등 서민들의 돈이 들어가 있는 금융기관들이 무너진다면 그건 다른 얘깁니다. 그때는 부실 금융기관을 넘어 건실한 금융기관까지 위기가 전이되지 않도록 미분양 매입을 검토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대다수 국민들은 비싸진 집값과 분양가가 떨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강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