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학교폭력 보도인가?_베타 무카 제모_krvip

누구를 위한 학교폭력 보도인가?_보석바위 슬롯_krvip

<앵커 멘트>

지난주 금요일,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학교별 폭력 실태를 숨김없이 공개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조사 방법과 낮은 응답률을 놓고는 논란이 많았는데요.

그래서 이번 조사 결과를 다루는 언론들의 시각도 상당히 엇갈렸습니다.

언론들이 주로 교과부의 성급한 발표를 비판하는데 주력하면서,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깊이 있는 논의는 실종돼 버렸는데요.

이러는 동안 경북 영주에선 학교폭력으로 괴로워 하던 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학교폭력 관련 보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정지주 기자와 함께 살펴봅니다.

<질문>

정 기자, 우선 교과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어떤 거였는지, 그 내용부터 살펴볼까요?

<답변>

교과부는 지난 1월부터 한 달간 전국의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학생 559만 명에게 우편으로 설문지를 보냈습니다.

학교폭력 피해경험이 있느냐, 학교에 일진회가 있느냐 등이 설문지에 적힌 질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일, 교육과학기술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지난해 말,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잇따르자, 정부가 실태조사가 벌인 겁니다.

20일 조간 신문을 통해 공개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녹취> 조선(4.20 1면) : "학교폭력에 67만 명이나 울고 있었다."

<녹취> 동아(4.20 A02) : "일진 있다 응답 50% 이상 464개 교, 그중 343곳이 중학교"

<녹취> 세계(4.20 3) : "조사결과에 따르면 초중고 가운데 가장 폭력이 만연한 곳은 초등학교다. 학생 대부분은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 등의 폭력 행사를 장난으로 여기는 것이 더욱 큰 문제로 나타났다."

조선과 동아일보는 일진이 있다는 응답이 많이 나온 학교의 명단을 그대로 게재했고, 한국일보는 이니셜을 넣어 실었습니다.

항목별로 순위를 메겨 보도를 하는 언론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름이 그대로 공개된 학교는 물론 학부모들 사이에서 큰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녹취> 경향(4.21 6) : "학부모들은 우리 애가 다니는 학교의 폭력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단 말이냐, 학교는 그동안 뭘 했느냐고 학교 측에 항의했다. 학교 측은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며 해명에 진땀을 흘렸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 언론은 교과부가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한 발 더 나간 분석기사를 내놨습니다.

<녹취> 조선(4.20 A03) : "국.공립고교, 사립고보다 학교폭력 3~4배 많다."

<녹취> 조선(4.20 A03) : "취업률 높은 전문계 고, 일반고보다 학교폭력 적어"

<녹취> 조선(4.21 A08) : "전교조가 주도하는 혁신학교 “일진있다” 응답비율 더 높아"

조선일보의 경우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몇 장의 사진도 함께 실었습니다.

심각한 학교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학교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일선 교사들도 언론의 이 같은 보도 관행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호소합니다.

<인터뷰> 백승수(중학교 교사) : "다들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시고 담배피는 학생들이나 애정행각 하는 학생들 못 하게 많이 하시고 그러는데 그런 노력들이 보이는 게 아니라 결과만 보이는 거고, 그리고 선생님들 뭐하냐 그런 식으로 비춰질 수 있고, 자꾸 너무 안 좋은 것만 꺼내지다보니까 진짜 조금 회의감이 들 때도 있죠."

전문가들도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나 현상에만 집중한 보도는 오히려 학교의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양정호(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 “언론이나 방송에서 한 발 더 나갔어야 되는데 수치로 보이는 부분, 학교폭력이라고 하는 부분을 극대화시켜서 이렇게 많이 퍼져있다는 것만 제시하다 보니까 선생님들도 여러 문제로 봉착을 하게 되고 학부모 입장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 관련된 불안 심리를 계속 가질 수가 있는 거죠.”

<질문>

교과부가 의욕을 갖고 실태조사를 벌였지만 조사 자체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죠?

조사 방법을 놓고 문제가 많았다는데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답변>

일단 우편을 통한 설문조사여서 질문지 회수율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평균 25%에 불과했는데요,

이를 토대로 분석을 했으니 결과에도 의문이 간다는 지적들이 많았습니다.

교과부가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공개한 20일, 대다수 언론들은 이 조사가 엉터리였다고 보도합니다.

<녹취> 서울(4.20 1) : "엉터리 학교폭력 조사 25억 들이고 깡통 통계"

<녹취> 세계(4.20 01) : "25억 짜리 부실 학교폭력 조사"

우선 너무 낮은 응답률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녹취> 이영풍 : “전체 학생 559만 명 중 139만 명이 답해 전국 응답률은 25%에 불과합니다.”

<녹취> 한겨레(4.20 4면) : "회수율이 0%인 학교도 143곳이나 됐다."

<녹취> 서울(4.21 27) : "강제성이 없고 우편으로 참여하라니 잘될 것으로 기대하는 게 무리였다."

조사대상 560만 명 중 136만 명 만 응했고 설문지를 아예 학교에서 누락시킨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무려 25억 원을 들인 실태조사가 이렇다니 기가 막힌다.

이런 자료를 토대로 피해응답률, 일진인식률 등을 계산했으니 결과도 왜곡될 수 밖에 없다는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녹취> 경향(4.20 12) : "전교생 중 단 한 명이 일진 있다고 답하자 일진 100%로"

<녹취> 중앙(4.21 4) : "468명 중 2명 말 듣고 민족사관고가 폭력학교라고 발표한 교과부"

<녹취> 동아(4.20 2면) : "성실하게 조사에 응한 학교는 폭력건수가 많은 듯했고, 회신율이 0%인 학교는 학교폭력 비율도 0%로 나오는 왜곡 현상도 문제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이번 조사는 전체적 경향을 파악하려는 통계조사가 아니라 학교별 실태를 파악하려는 실태조사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정보를 섣불리 공개한 것 자체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녹취> 한겨레(4.20 1면) : "‘폭력학교’를 전국적으로 서열화하고, 여론에 의해 비난을 유도하는 ‘낙인효과’가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조사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번 조사의 경우 조사방법에 분명 문제가 있었고 또 결과를 해당 학교에 먼저 알리지 않고 홈페이지에 전면 공개한 것은 성급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정근식(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조사 결과를 학교 실명을 거론하면서 공개한 것. 이것이 교육적인 거냐, 아니냐 이게 쟁점인 것 같고요. 해당 당사자들한테는 당신네 학교의 조사 결과는 이런 거다. 이런 걸 갖다가 어떤 방식으로 참조를 해서 어떤 방식으로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 좀 우리가 논의를 한 번 해보자, 이런 식으로 몰고 갔어야지. 이렇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해버리면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질문>

이번 교과부의 학교폭력 조사결과에 관심이 컸던 건, 최근 학교폭력 때문에 또 한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과도 관련이 깊어 보이는데요.

이를 다뤘던 언론의 보도 태도를 한 번 살펴볼까요?

<답변>

지난해 말 학교폭력 때문에 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도, 언론들은 학생이 당했을 폭력들을 자세히 묘사해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요,

이번에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 16일 경북 영주에서 또 한 명의 중학생이 학교폭력 때문에 목숨을 끊었습니다.

언론들은 우선 유서 내용을 소개하며 어떤 학교폭력이 있었는지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녹취> 박흔식 : "이군은 유서에 자신을 괴롭히던 학생 2명의 이름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으면 뒤에서 때렸다. 몸에 침을 묻히려고 했다” 등 구체적인 학대내용을 남겼습니다.

<녹취> 중앙(4.17 18 ) : "유서에는 ‘00단(어른들은 폭력서클이라고 부른다)’에 가입하라고 했다. 가입해보니 토요일에도 나오게 했다. ‘내가 꼬붕(부하)이 된 듯하다’고 적혀 있었다."

자살하러 가는 과정까지, 상세히 묘사한 보도들도 보였는데, 방송뉴스의 경우 학생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 화면까지 사용했습니다.

<녹취> 김기현 : "잠시 망설이던 이 군은 20층으로 올라간 뒤 아파트 아래로 몸을 던졌습니다."

<녹취> 박영훈 : "그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북 영주의 중학생 이모 군은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해 이같은 극단적 선택을..."

<녹취> 한겨레(4.18 3면) : "승강기 20층 단추를 누른 때부터 1시간20여분 동안 아파트 20층에서 이군은 무척 갈등하며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언론의 보도 관행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피해나, 그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학생을 보도할 때 매번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녹취> M 뉴스데스크(2011년 12월) : "한 학생은 뒤에서 팔을 잡아 못 움직이게 하고 다른 학생이 레슬링을 하듯이 넘어뜨립니다."

<녹취> 조선일보(2012. 1.17) : "임 군은 지난 5일 경찰조사에서 가해학생들이 바지를 벗기고 성기에 전기충격까지 줬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일시적으로 관심을 가질 뿐,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대책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인터뷰> 손충모(전교조 대변인) : "학교폭력 문제를 대함에 있어서 지금처럼 누군가 죽어야 이 문제에 대응하는 언론은 매우 문제가 크다. 죽어서 문제가 되었다면 이 후에 여기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질 수 있도록 점검하는 기능까지 언론이 해 줘야 언론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그게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언론이 해야 할 기능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요."

<질문>

학교폭력은 정말 반짝 관심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정작 학생들은 학교폭력에 관련된 언론보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데요?

<답변>

교과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비록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언론들은 그 조사결과를 토대로 학교폭력이 중학교에서 가장 심하다는 기사를 내놨습니다.

과연 중학생들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서울의 한 중학교를 찾았습니다.

학생들은 언론의 학교폭력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뉴스에서는 일진이 정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막 학교가 정글이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잖아요. 근데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고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아요."

학교나 학생들의 현실에 대해 언론이 편견을 가지고 만들어낸 과장된 기사라는 느낌을 받는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 학교에 대해서 많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말을 하는 게 되게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인터뷰> "몇몇 학교의 사례만 가지고 굉장히 무서운 곳이다 신문에서는 표현을 하고 그 대부분의 학교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보는데 과장해서, 사람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발표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언론이 학교폭력 등 학교와 관련된 부정적 기사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인터뷰> "모범 답안을 주듯이 모범학교 사례, 아니면 학교폭력이 완화된 그런 학급의 사례에 중점을 두어서 조금 더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뉴스를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실제 미디어비평 제작팀이 지난 17일부터 최근까지 기사를 살펴본 결과, 학교폭력의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해결한 사례 같은 긍정적 내용의 기사들은 전체 학교폭력 관련 기사의 7% 정도였습니다.

교육계에선 학교폭력 관련 정부대책을 받아쓰고 사건이 터지면 그 대책을 비판하는 게 지금까지 언론이 해온 보도관행이었다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김동석(교총 대변인) : "여론을 선도하고 국민에게 메시지를 주는 언론 부분에 대해서 학교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캠페인 부분을 통해서 이런 부분을 자극하고 계도하고 선도하는 부분이 굉장히 약하지 않았느냐 하는 부분에 비판을 가할 수 있다고 보여 지고요."

교육계 안팎에선 언어문화 개선 캠페인 등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한 노력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론도 이런 노력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또 현재의 교육시스템이 학교폭력을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좀더 깊이 있는 대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인터뷰>손충모(전교조 대변인) : "아이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의 의견을 표현하고 발표하고 외부로 알릴 수 있도록 교육이 진행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이들이 학교의 운영과 학교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해요."

1980년대 초반 노르웨이에선 학교폭력으로 학생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학교폭력을 발견하는 즉시 ‘STOP’ 즉 ‘멈춰’를 외치는 캠페인을 벌여 지금까지도 효과를 보고 있다는데요.

반복되는 학교폭력에 대한 책임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 학교나 정부에게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사건이 생길 때만 상황이 심각하다는 기사를 잠시 쏟아낼 뿐,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깊이 있는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언론도 성찰해야할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학교폭력과 관련된 교육당국의 정책을 비판만 하기 보다는, 학교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현장 중심의 꾸준한 문제제기를 통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절실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