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진탕 후유증 딛고 영화감독 된 대니얼 윤 _불굴의 카지노 도둑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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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한인 영화감독 대니얼 윤(42)은 매우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34살이던 1999년 첫 장편영화를 만들어 데뷔하기까지 그는 체계적으로 영화를 배운 적이 없었다. 책을 통해 독학으로 영화제작법을 깨친 후 시나리오, 제작, 감독, 촬영, 주연배우, 편집 등 1인다역을 맡으며 저예산영화를 만들었는데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좋을 평을 얻으며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이력을 이채롭게 만드는 것은 그가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 개인적으로 매우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 교통사고가 그에게는 오히려 영화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새로운 창작의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심한 뇌진탕을 겪었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직장과 애인을 잃은 그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뇌진탕 그 이후'(원제 Post Concussion)로 '영화감독'이란 새로운 직함을 얻었다. 이 영화로 2000년 타오스 토킹픽처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 뉴멕시코주 타오스에 5에이커의 땅을 부상으로 얻기도 했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돼 관객을 만났다. '뇌진탕 그 이후'는 잘나가는 경영 컨설턴트가 어느 날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뒤 겪는 후유증과 삶의 변화들을 기발한 유머와 예리한 풍자로 풀어가는 '가볍지 않은' 코미디. 그는 한국계 미국인인 주인공 매튜 강 역을 맡아 자연스러운 연기력도 과시한다. 내용에서 알 수 있겠지만 '뇌진탕 그 이후'는 윤씨의 반자전적인 영화다. 사고 후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에 허구의 로맨스를 보탰다. 윤씨는 주인공 매튜 강처럼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잘나가는 성공적인 경영 컨설턴트였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코넬 대학에서 역사와 엔지니어링 학사학위를 받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공정책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버클리에서 포천지 선정 1천대 기업에 취직해 잘나가는 컨설턴트로 바쁜 삶을 살다 95년 교통사고를 당한 것. 심한 뇌진탕으로 후유증이 만만찮아 직장을 잃었고,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저예산영화 만들기에 대해 쓴 책 등을 읽으면서 혼자 영화제작기술을 배웠다. 영화는 사고 2년 뒤인 97년부터 찍기 시작했지만 후유증으로 일주일에 하루, 이틀밖에 촬영을 못해 고정 스태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최근 다음 작품의 주인공을 맡을 배우를 찾기 위해 LA의 한 영화제를 찾은 그는 "그래서 카메라 작동, 연기까지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동제작자인 데스트리 밀러와 주로 촬영을 했고, 두 사람이 연기할 때는 아무도 카메라를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를 했다고 한다. 윤씨는 자신이 직접 담당한 내레이션을 통해 천연덕스러운 유머 감각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특히 기존 질서의 권위에 도전하고 뉴에이지 방식의 삶에 매료돼 있던 당시의 버클리란 도시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리얼하게 담아낸다. 뇌진탕 후유증 때문에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잠을 많이 자야 한다는 윤씨는 요즘 두 번째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두 번째 영화는 중년의 위기를 겪는 남자들의 이야기. 자신 또한 40대로 들어섰으니 어느 정도 자전적인 요소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윤씨는 "미국 영화에서 중년의 위기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지닌 남자가 예전의 자유와 독립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나의 영화는 다르다"면서 "새 영화에서 그려질 중년의 위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내가 크면 무엇이 되겠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겪는 위기"라고 설명한다. 현재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것이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인가'를 되묻는 중년남자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주인공은 컴퓨터 시스템 운영자로 옛날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 마침내 직장을 그만두고 원하던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자신이 사실은 별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