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1300조…“빚보다 소득이 문제다”_고장성 해 정의 전기음성도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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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대 초상화의 혁신을 가져와 '빛의 화가'로 불리는 램브란트의 대표작입니다.

그런데 램브란트에겐 또다른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빚의 화가'라는 오명입니다.

인기를 잃은 뒤 소득이 줄었는데도 잘 나갈 때의 씀씀이를 유지해서 가계 빚의 수렁에 빠졌던 겁니다.

램브란트의 어두운 개인사를 갑자기 들추는 이유는 소득과 부채를 조절하지 못해 빚의 수렁에 빠진 과정이 지금 우리 가계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0월 청약 경쟁이 뜨거웠던 서울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입니다.

경쟁률 80대 1, 당첨은 로또에 비유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녹취> 00공인중개사사무소 : "6단지 같은 경우 한 3~4천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이 됐어요. 전매제한이 풀리면 그때 분위기를 봐야지 알겠지만 들리는 소문들은 그닥 그렇게…보합세 수준에서 호가가…."

이유는 중도금 마련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당첨자 대부분이 당연히 집단대출로 중도금을 내려 했지만 제동이 걸렸습니다.

<녹취> 건설업체 관계자 : "서울, 그리고 계약이 다 된 곳에 대해서는 100% 다 (중도금) 대출이 될거라고 저희들이 예상을 했었는데.. 지금은 부동산 규제가 나와서.. 사실 100% 계약이 된 단지까지도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

첫 중도금을 내야할 시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입주 예정자 가운데 2천여 세대가 중도금 대출을 아직 못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덕례(주택산업연구원) : "과거에 중도금 대출은 분양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착공을 하게 되면 시행사나 시공사가 금융기관하고 협약을 통해서 중도금 대출 약정을 맺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그게 되지 않다보니까 1금융권에서 저축은행이라든가 상화신용금고와 같은 2금융권으로 넘어가면서 조달금리가 높아가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거요, 두번째는 이렇게 되다 보니까 아무래도 중도금 대출을 조달하지 못한 사업장에서는 사업이 지연되는 문제들이 나타나고, 이러다보니까 아무래도 신규 분양주택을 분양받고자 하는 소비자들도 조금은 관망을 하게 되고, 그리고 주택 구매 자체를 꺼리면서 소비심리 자체가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서 올 1월 분양한 이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 역시 은행 대신 금리가 더 높은 제 2금융권에서 겨우 중도금을 해결했습니다.

<녹취> 아파트 조합원 : "은행 대출시 가장 큰 리스크 큰 건 분양성이잖아요. 근데 100% 분양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서 조합을 조합원들을 애먹이는 그거는 하나의 은행의 횡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근 이렇게 중도금 집단 대출이 막힌 아파트 단지는 전국에 모두 37곳, 3만 9천 8백여 세대입니다.

정리하면 이런 얘기입니다.

전국 4만 가까운 세대가 은행 대출이 될 줄 알고 비싼 아파트를 분양 받았는데 갑자기 대출이 막혔고, 계약금을 날릴 수는 없으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금리 4% 중반대의 고금리 대출을 받게 된 겁니다.

정부가 대출을 조이는 이유는 가계부채가 너무 빨리 늘고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344조 원.

1년 만에 141조 원이 늘었습니다.

1년 새 증가율은 11%, 역대 가장 가파른 증가율입니다.

빚 전체를 단순 평균하면 국민 한 사람 당 2천6백만 원씩을 빚지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뷰> 홍춘욱(키움증권 수석연구위원) : "모든 면에서 급등은 안 좋습니다. 왜그러냐면 급격한 가계부채의 증가라는 것 속에는 분명히 투기적 요인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고 더 나아가서 140조나 1년 사이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가운데 금융기관들이 신용도 또는 건전성 관리를 제대로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문제는 가계 부채의 질이 악성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 은행대출액이 9.5% 증가하는 동안 이자율이 높은 제2금융권 대출은 17.1%나 증가했습니다.

정부가 은행 대출을 억제하자 서민층이 비은행권으로 몰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사실 부채, 빚 그 자체가 당장 큰 문제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만 원 정도를 빌려서 그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빚을 갚고 돈이 남게 됩니다.

빚의 순기능, 이른바 '지렛대 효과' 입니다.

문제는 빚을 낸 가계가 그 빚을 갚을 만큼의 소득이나 수입을 벌지 못하는 현상이 언젠가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순기능이 없는 빚, '악성 부채'의 수렁에 빠진 가계가 급증한 이유입니다.

<인터뷰> 이준협(국회의장실 정책비서관) : "양극화가 심합니다. 즉, 신용이 높은 사람들은 금리가 낮지만 빚을 못 갚을 우려가 있는 신용도가 낮은 대출자 같은 경우에는 대출금리가 급등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최근에는 은행권에서 대출을 규제하다 보니까 비은행권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고, 이렇게 되면 금리가 급등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영세 자영업자 같은 경우에는 금리가 급등할 가능성, 소득이 급감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녹취> 문00(채무조정 신청자) : "야간에,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6시까지 열두 시간 근무하면서 월급도 받아보고, 낮에는 또 파출부, 하루종일 나가면 7만 5천 원, 4~5시간 하면 4만 원. 그렇게 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니까.."

문모 씨는 4년 전 승용차를 할부로 사며 2천만 원의 빚을 졌습니다.

그때만 해도 대형 슈퍼마켓를 운영할 때라 빚 갚는 데는 문제가 없을 줄 알았지만, 부도가 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지금 소득은 월 백만 원 남짓 , 한 달에 5만 원을 갚기도 빠듯한 형편입니다.

<녹취> 문00(채무조정 신청자) : "저도 많이 벌고 싶죠. 저도 많이 벌고 싶죠. 많이 벌고 싶은데 한 150 정도. 그러니까 갚을 수 있는 상황이 못됐죠. 사람이 뭐라 그럴까 자포자기? 송파 세 모녀 사건 그거 왜 그러겠어요? 그 사람들이..딱 그 마음, 똑같은 심정이야 지금 내가.."

채무를 조정해주는 신용회복위원회를 1년 만에 다시 찾은 이 여성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빚은 천 5백만 원 정도지만, 이자도 못 낼 만큼 소득이 크게 줄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녹취> 이00(채무조정 신청자/음성변조) : "지출은 매달 다르겠지만 거의 좀 소득보다는 많았어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비도 지출이 됐거든요. 취업, 실직 이렇게 반복이 되다 보니까 또 변제가 어렵고.."

이렇게 빚에 허덕이는 가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금융자산보다 금융부채가 많고 원리금 상환액이 가처분소득의 40%를 넘는 '한계 가구'는 모두 182만 가구.

1년 새 15%나 증가했습니다.

한계가구는 금리가 1% 오를 때마다 4만 가구 늘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중 은행의 금리가 이미 상승세에 진입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9월 2% 후반대를 보이던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12월에 이미 3% 중반대로 올라섰습니다.

농협은행의 경우 석달 새 0.76%나 금리가 급등했습니다.

올해는 미국이 연이어 기준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돼 한국 은행들의 금리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따라 빚에 허덕이는 한계 가구가 증가할 것으로 에상됩니다.

<인터뷰> 이준협(국회의장실 정책비서관) : "한계가구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그만큼 빚을 갚지 못 해서 연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을 경우 채무 불이행자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요. 올해는 200만 가구를 훌쩍 넘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부터 정부는 경기를 띄우기 위해 부동산 대출 규제를 대거 해제했습니다.

그 결과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지난해 8월에야 뒤늦게 대출을 억제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는데는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최근 4년 동안 아파트 가격은 3.3제곱미터당 평균 154만 원 올랐지만, 가계 소득은 월 25만 원 느는 데 그쳐, 부족한 부분 만큼 빚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 이준협(국회의장실 정책비서관) : "가계부채는 고혈압이나 성인병 같은 거라서 잘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전히 치유하겠다가 아니라 잘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요, 구체적으로는 가계부채가 가계소득보다 더 빨리 증가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램브란트는 빚더미에 빠져 우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빚을 내 호화 대저택까지 사들였지만 대표작 '야간 순찰'이 외면당하면서 수입이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계빚은 개인의 문제로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급격한 가계 부채 증가는 소비를 줄여 기업의 생산 축소와 고용 감소로 이어져 한국 경제가 불황의 악순환에 빠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더 늦기 전에 부채의 총량 관리는 물론 소득 수준과 취약계층 등 부채의 내용까지 고려한 특단의 개선책이 절실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