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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는 취지의 결정문을 냈습니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현행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이 결정은 지난 2019년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가락시장)의 4인 이하 도매업체 노동자들이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을 내면서 이뤄졌습니다.

인권위의 결정이 있고 난 후, 가락시장 5인 미만 중도매업체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4년 전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을까요. 시장이 한창 바쁜 야간에 가락시장 노동자들을 취재진이 직접 만나봤습니다.

■고된 야간 노동 계속…"주 52시간은 꿈도 못 꿔"


경매가 시작되는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가락시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분주합니다.

밤 10시 30분쯤, 취재진은 가락시장 채소 중도매업체에서 분주하게 상자를 나르던 A씨를 만났습니다. A씨는 직원 3명이 고용된 '5인 미만' 중도매업체에 고용돼 일하고 있었습니다.

중도매업체 노동자는 경매에서 낙찰돼 들어오는 물건을 받고, 발주 내용 확인과 함께 받은 물건을 정리하고, 소매업체나 직판상인 등에게 다시 물건을 배송하는 일을 합니다.

A씨는 저녁 6시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5시 30분에 퇴근합니다. 하루 평균 11시간~12시간 야간 근무에, 쉬는 날은 토요일 딱 하루뿐입니다. 법으로 정해놓은 주 52시간 상한제는 꿈도 꾸지 못합니다. 가락시장의 중도매업체 노동자는 주 5일이 아닌 '주 6일' 일하기 때문입니다.

야간·주말에 일하지만, 포괄임금이 적용돼 주말 연장근무, 철야근무를 해도 별도의 수당을 받지 못합니다.

업무 강도도 셉니다. A씨가 일하는 모습을 취재진이 10여 분간 지켜봤습니다. A씨는 경매에서 낙찰되어 온 10kg들이 채소 상자 100여개를 지게차에서 내리고, 정리하고, 배달을 위해 지게차에 다시 실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사람 키보다 높이 쌓인 채소 상자들은 지게차에 실려 중도매업체로 속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새벽 3시쯤, 취재진은 A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A씨는 여전히 채소 상자를 내리고, 다시 채소 상자를 지게차에 10개씩 들어올려 쌓고 있었습니다. A씨는 취재진을 만났던 밤 10시 30분부터 한 번도 쉬지 못한 채 일했다고 말했습니다.

야간에 정해진 쉬는 시간도 없이 장시간 노동이 계속되니, 몸이 성한 곳이 없습니다. A씨는 동료들을 가리키면서 "다 환자예요" 하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온종일 무거운 상자를 쌓고 나르다 보니, 대부분 허리나 어깨, 팔이 아프다는 겁니다.

아프다고 병원에 가기 위해 연차를 쓸 수도 없습니다. '연차'라는 개념 자체가 이곳 가락시장에는 없다는 게 A씨의 설명입니다.


■장시간 철야 노동 가능한 이유?

이렇게 오랜 시간 심야 노동이 가능한 이유, 가락시장 중도매업체 대부분이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해 근로기준법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에 따르면, 가락시장 중도매업체의 약 82%가 직원 5인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이었습니다.

가락시장 노동자들의 평균 근로 시간은 주당 40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58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하루 노동시간은 12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근로기준법 제 50조는 '1주간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일 근로시간은 휴게시간 제외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제한은 근로기준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5인 미만 사업장엔 적용되지 않습니다.

근로기준법을 피하려고 일부러 5인 미만 고용을 유지하는 중도매업체도 있었습니다. 취재진과 만난 한 중도매인은 "시장의 현실이 그렇다"며 법 제재를 피하려고 일부러 5인 미만 고용을 유지하는 곳이 많다고 털어놨습니다.

■'5인 미만'이라서…연차도, 공휴일도 없다

가락시장을 벗어나도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30년 경력을 지닌 기술자인 이종균 씨는 직원 4명인 작은 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한 지도 벌써 4년이 지났지만, '연차 유급휴가'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여행을 가거나 병원 진료 때문에 근무를 쉬면, 결근으로 처리되고 임금도 깎입니다.

소기업이 몰려있는 아파트형 공장 노동자들도 연차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 '5인 미만' 아파트형 공장 노동자는 연차에 대해 묻자 "평생 그런 게 있는지 사용하는지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한국노총의 실태조사 결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470명 중 "연차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3.2%에 그쳤습니다. 연차가 없는 이유, 역시 5인 미만 사업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60조는 1년에 15일 이상의 연차 유급휴가를 보장하고 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엔 적용되지 않습니다.

공휴일도 못 쉴 때가 많습니다. 2018년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300인 이상 기업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주 52시간 초과 근로 비율이 4배나 높았습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21년 8월)에 따르면,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비중이 300인 이상 기업은 2.7%에 그쳤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10.4%에 달했습니다.

■"영세 사업장 부담 커"…"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어"

애초에 근로기준법 적용에 '5인 미만'이라는 기준을 둔 건, 영세 사업장의 힘든 현실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에 이미 '작은 회사에서 일한다고 근로기준법 보호를 못 받는 건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이때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립니다.

당시 헌재는 "대부분 4인 이하 사업장은 규모가 영세하고 사업주 채무부담 능력도 미흡하다"며,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면 "노사 갈등 및 범법자 증가 같은 부작용이 불가피하다"고 봤습니다.

헌재의 결정 맥락과 비슷하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제도가 시행될 경우,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사업주는 범법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게 영세한 소상공인들의 입장입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취재진에 "인력난이 극심하고 경제상황도 악화돼 영업 지속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 전면 도입하는 급작스러운 변화는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에게 큰 부담"이라고 밝혀왔습니다.

그렇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근로기준법의 보호 밖에 있는 '5인 미만' 사업체는 전체 사업장 중 68%에 달합니다. 즉, 전체 사업장의 68%에서 근무하는, 43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제도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얘깁니다.

정부가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도 근로기준법 적용이 가능한지 실태 조사를 해봤더니, 의원급 병원이나 법무법인처럼 법을 지킬 여건이 되는 곳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단순히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법 적용 여부를 따지기보다, '5인 미만' 중에서도 사업장이 채무부담 능력이 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여건이 되는 곳부터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방식도 고민해볼 만합니다.

또, 정부 조사에 따르면 사업주들은 연차나 가산수당 등 경제적 부담이 있는 근로기준법 조항 적용엔 난색을 표했지만, 근로시간 준수나 직장 내 괴롭힘 등 경제적 부담이 없는 조항 적용엔 무리가 없다고 봤습니다. 사업주들이 경제적 부담을 적게 느끼는 조항부터 차례로 확대해나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계획으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발표했고, 대통령 직속 경사노위에서도
상반기까지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논의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진 지도 벌써 70년입니다. 올해는 과연 근로기준법이 사각지대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까지 품어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