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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멘트(박정호 기자): 우리근대사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는 부산의 영도다리가 철거 논란에 휩싸여있습니다. 근대사의 한 페이지였던 중앙청은 이미 철거 됐습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지우기 위해 혹은 개발에 밀려서 우리의 근대건축물들은 하나 둘씩 철거 됐습니다. 그러나 아픈 역사에서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해 근대건축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광복절 59주년을 맞아 아픈 역사의 흔적에 대한 논란을 취재했습니다. *박정호 기자: 1934년에 건설된 부산의 영도 다리. 70년이 지난 지금 영도다리는 이름을 영도대교로 바꿨지만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아시아 최고의 도개식 다리라는 수식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리의 역할도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영도 다리가 개통될 당시 부산 인구는 16만 명. 이 가운데 6만 여명이 영도다리 개통을 지켜 봤습니다. 다리가 들어올려질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장관을 지켜볼 정도로 영도다리는 부산의 명물로 자리잡았습니다. *손영지(부산시 범2동): “들어올리면 다리를 요래 싸악 들고 내려가면 그걸 보고 사람들이 좋아했거든 부산뿐 아니고 대한민국에 그런 건 없었지요” *이길우(부산 영선동): “부산하면 영도다리, 영도다리 하면 부산으로 인식했고, 그 후로 뭐 태종대네..해운대네 이게 떴지, 그 전에는…” *박정호 기자: 한국전쟁 때는 무조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며 고향을 떠나던 피난민들 영도다리는 피난민들의 마음의 고향이었습니다.. 이런 영도 다리도 부산의 도시화와 산업화에 밀려 지난 66년부터 여느 다리와 같이 고정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도개 당시 들어올려진 구간은 전체 다리 가운데 대략 31미터 이 부분은 지난 34년부터 66년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평에서 80도까지 들어올려져 배들을 통행시켜 왔습니다. 다리 아래에 위치한 기계실입니다. 다리를 들어올린 엄청난 힘은 이 기계실에 있는 거대한 톱니바퀴들에서 나왔습니다. 70년의 나이가 말해 주듯 대부분 녹슬고 심하게 부식됐습니다. 그래도 영도다리는 건축적 가치가 매우 큽니다. *김란기(도코모모 코리아 이사): “동양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입니다. 일본에서 유사한 게 있지만 시대가 늦고, 개폐방식도 다릅니다. 그래서 다리가 보존된다면 동아시아의 명물이 될 다리입니다.” *박정호 기자: 여기에다 민족의 애환이 담긴 역사성 때문에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영도다리를 빼놓으면 안될 관광코스로 잡고 있습니다. *이정자(서울 면목동): “우리는 서울서 왔는데 영도다리 말로만 들었지 안와봤거든요.그래서 지금 물어 물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박정호 기자: 70년의 역사를 안고 영도 다리는 서서히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97년 롯데가 옛 부산시청 자리에 지상 107층 규모의 제 2 롯데월드 건설계획을 세우면서 영도다리 철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시가 건축조건으로 기존의 영도다리를 철거하고 6차선 다리를 건설하도록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철거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부산시는 한 때 영구보존으로 방침을 바꿨다가 최근에 다시 철거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다리를 보존하고 대체 교량을 지을 경우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있기 때문에 결국 철거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이성근(부산시 도로계획과장) “꼭 철거라는 것을 예기하려는 건 아니구요. 다른 방향으로 검토를 한번 더 해봐라.. 그런 예기가 되겠죠. 뭐, 철거도 할 수 있으면 하는데 꼭 내포돼 있는 건 아니구요, 다시 한번 검토를 하고 상정해라, 이런 뜻이 되겠죠.” *박정호 기자: 철거 논란이 장기화되면서 롯데 측도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이문우(롯데건설 현장관리소장) “다리가 어떤 모양으로 나올지 몰라서 40억 정도 공사 외 별도 방침으로 해서 막고 있죠. 백화점 부지라도 작업을 하려고..” *박정호 기자: 부산 중구 지역 상인들도 철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산시청이 이 곳을 떠난 만큼 롯데월드와 새 다리 건설이 지역 상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김순모(부산 광복동) “유동인구가 많아진다는 거 그리고 롯데가 들어오면 상권이 죽을지 살지 몰라도 그렇지만은 지금 상태 보다야 안 나아 지겠습니까..” *박정호 기자 이처럼 우리 나라에서 근대건축물 보존 논란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95년 중앙청이 철거되면서부터입니다. 중앙청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로 일제가 식민통치의 위엄을 과시하고자 경복궁 근정전 앞에 세운 것입니다. 당시 철거 논란이 많았지만, 민족정기를 살린다는 차원에서 해체됐습니다. *최이태(문화재청 건축사무관): “건축물의 가치보다도 건축물이 서있는 장소에 문제가 있었던 거죠. 중앙청이 경복궁이 아니고 서울시내 다른 곳에 있었다면 보존됐으리라 생각됩니다.” *박정호 기자: 하지만 아픈 역사라 하더라도 철거보다는 이전을 택했어야 했다는 주장도 여전합니다. 실제로 중앙청은 가장 아름다운 근대건축물 가운데 하나였지만, 지금은 독립기념관과 경복궁에 건물의 일부 조각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강찬석(코리아 헤리티지 재단 준비위원장) “건축물을 헌다고 역사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라는 것은 지운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저도 그 때 반대를 했는데, 중앙청을 헐지 말고, 다른 장소에 이전하자.. 이전해서 그래서 그 역사 자체를 다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하나의 어떤 본보기로 삼자.. 라는 주장을 해 왔습니다만은, 결국엔 헐리고 말았습니다.” *박정호 기자: 지난 99년에는 국도극장이 철거됐습니다. 서울 을지로의 국도극장은 지난 36년에 세워진 동양풍을 가미한 르네상스식 건물이었습니다. 영화사적 가치도 높았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철거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브릿지(박정호 기자): 서울 국도극장은 지난 99년 철거되면서 현재는 이렇게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울 국도극장은 철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상영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자그마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전 국도극장 직원: “여기가 현관이고 이쪽에 매표소 그리고 이쪽으로 휴게실. 가운데가 객석이고…” *박정호 기자: 현재 국도극장 앞에는 작은 표지석 만이 설치돼 과거의 추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종희(서울 신당동) “안 헐고 보존을 딱 해났으면 좋았을 텐데, 안 헐고 그대로 보존을 해놓고 다른 걸 , 저런 걸 차리리 헐어가지고 주위환경을 해놨으면 좋았을 텐데..” *박정호 기자: 하지만 개발논리에 밀려 철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의 단성사 건물도 완전 철거돼 신축 공사가 한창입니다. '빈처' '운수 좋은날'로 유명한 사실주의 소설가 현진건 선생의 고택은 지난 2002년 소리 소문 없이 철거돼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와는 달리 철거논란을 겪었지만 보존된 사례도 있습니다. *박정호 기자: 서울 도심에 위치한 경의선 신촌역사. 30여 평 규모의 이 역사는 1920년에 지어진 서울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 건물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지만, 경의선 복원이 늦어지면서 용케도 건축 당시의 겉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당초 신촌역사는 민자역사 설립으로 철거될 운명이었지만 철도청이 개발이익을 포기하고 역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용선(신촌역장): “이 건물 자체는 작아 보이지만은 상당히 오래됐고, 또 문화적 가치도 있다고 판단되고 그래서 처음에는 철거 쪽으로 나가다가 다시 도중에 계획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결정이 나다 보니까. 상당히 문화적 가치도 있고..” *박정호 기자: 지난 82년 방화사건이 일어난 부산 미 문화원은 지난 2002년 근대 역사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동양척식 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다는 이유에서 반민족적 건물이라는 지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부산의 근.현대를 보여주는 교육장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쓰인 일제강점기시대 경남도청 건물. 부산 동아 대학교가 이 건물을 매입하면서 철거논란을 겪었지만 박물관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이 같은 보존에는 지난 2001년부터 시행된 등록 문화재 제도가 작으나마 도움이 됐습니다. 등록문화재는 국보나 보물 등 지정 문화재는 아니지만 50년이 경과하고 우리 근대사에 기념이 되거나 그 가치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건축물과 시설물이 대상입니다. 그나마 등록문화재는 현재 83건에 불과합니다. 결국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3천 여 점 이상의 근대건축물이 영도다리처럼 보호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이태(문화재청 건축사무관) “근대건축물이라는 건 과거.. 고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적 역할의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시기에 형성된 건축물도 중요한데 최근에 논란이 된 고 최근에 인식이 된 거죠.” *박정호 기자: 이런 가운데 어제 귀중한 자료가 공개됐습니다. 문화재청이 영도다리의 설계원본을 일본으로부터 입수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설계도가 있는 만큼 영도다리를 복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영도다리를 둘러싼 철거 논란이 이제는 원형 복원과 관광자원 활용 여부로 발전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박선규(성균관대 토목환경 공학과 교수) “이 원형이 그대로 되고, 가능성도 다시 그대로 되찾는다면 활용성에 있어서도 가치가 있고 문화적 가치, 관광 자원의 가치도 충분히 있다고 보거든요” *클로징멘트(박정호 기자): 우리 사회는 이제 개발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근대건축물은 일제 시대의 잔재일 수 있고 도심개발을 막는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만 남고 문화재가 사라진다면 언젠가는 역사마저 사라질 수 있기에 문화재는 없애기에 앞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