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당국이 공개한 ‘구카이라이 사건’ 전말_하루에 몇 명이 베토 카레로에 가나요_krvip

中 당국이 공개한 ‘구카이라이 사건’ 전말_농장에서 농부 시험을 이긴 사람_krvip

신화통신 `방청기'형식..`대외 발표문' 성격 중국 당국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저지른 영국인 독살 사건의 경위를 낱낱이 공개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10일 밤 11시께(한국시간 자정) '법율의 존엄은 짓밟힐 수 없다'는 제목으로 된 장문의 구카이라이 공판 방청기를 보도했다. 국무원 직속 기구인 신화통신의 이번 보도 내용은 공판 과정은 물론 수사 내용 등 사건 전말을 상세히 담고 있어 구카이라이 사건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외 발표문' 성격을 띠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은 신화통신 발표 내용을 중심으로 구카이라이의 닐 헤이우드 독살 사건을 정리한 것이다. ◇구카이라이와 닐 헤이우드의 '잘못된 만남' = 구카이라이가 수사 기관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아들 보과과(薄瓜瓜)가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2005년께 닐 헤이우드를 처음 만났다. 보과과는 영국의 명문 사립고교인 해로우 스쿨과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다. 보과과의 유학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것으로 알려진 닐 헤이우드는 2005년께 구카이라이에게 편지를 보내 만남을 청했다. 이를 계기로 가까운 사이가 된 닐 헤이우드와 구카이라이는 함께 사업을 도모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이후 구카이라이는 닐 헤이우드에게 중국의 부동산 프로젝트를 알선해줬지만 사업이 실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신화통신은 이 프로젝트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닐 헤이우드가 보과과가 알선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투자가 무산되자 약속된 수익의 10%인 1천300만파운드(약 230억원)를 보상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구카이라이는 보수 등 문제로 닐 헤이우드와 자기 모자 사이에 갈등이 증폭됐고 닐 헤이우드가 급기야 보과과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구카이라이는 수사기관에서 "나에게 이것(닐 헤이우드의 협박)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는 사실"이었다"며 "목숨을 걸고 닐 헤이우드의 미친 짓을 막아야 했다"고 진술했다. 감찰은 9일 공판에서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하는 닐 헤이우드와 보과과가 주고받은 이메일들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WP 등 서방 언론은 "이메일들의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의구심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아들을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닐 헤이우드 독살에 나섰다는 것이 구카이라이가 스스로 주장한 핵심적인 범행 동기다. 이런 가운데 일부 서방 언론은 구카이라이와 닐 헤이우드가 사업 관계를 떠나 남녀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에 있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치밀한 독살 계획…마약 사건 위장 시도 = 검찰의 공소 사실에 따르면 구카이라이는 독살 계획을 세우고 닐 헤이우드를 충칭으로 불러들였다. 구카이라이는 작년 11월 12일 자신의 집사 격으로 충칭시 공산당위원회 판공청 직원인 장샤오쥔(張曉軍·33)에게 당시 베이징에 머무르던 닐 헤이우드를 불러들이도록 했다. 장샤오쥔은 이튿날 밤 충칭시의 난산리징두자(南山麗景度假)호텔 1605호실로 닐 헤이우드를 데려왔다. 이날 밤 9시께 구카이라이는 호텔에 도착해 문 밖에 장샤오쥔을 세워놓고 닐 헤이우드의 객실에 들어가 그와 함께 술을 마셨다. 구카이라이는 객실에 들아가기 전에 장샤오쥔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시안화물 성분의 액체 독약병과 마약 캡슐을 맡겨 놓았다. 닐 헤이우드가 만취해 화장실에서 쓰러지자 구카이라이는 장샤오쥔을 불러와 닐 헤이우드를 침대에 눕혔다. 닐 헤이우드가 물을 찾자 구카이라이는 장샤오쥔에게 다시 건네받은 독약을 입에 부어넣고 미리 준비한 마약 캡슐을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놓고 객실을 나왔다. 닐 헤이우드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숨진 것으로 위장하려는 것이었다. 검찰은 공판에서 호텔 폐쇄회로(CC)TV를 통해 피고인들이 범행 당일 닐 헤이우드의 객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확인됐고, 객실의 병뚜껑과 찻잔 뚜껑에서 이들의 DNA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또한 검찰은 닐 헤이우드의 혈액과 토사물에서 시안화물 성분이 검출돼 독살 혐의가 충분히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사건을 덮어라"…충칭시 공안 은폐 가담 = 닐 헤이우드의 사망을 보고받은 왕리쥔(王立軍) 당시 충칭시 공안국장 겸 부시장은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궈웨이궈(郭衛國) 충칭시 공안부국장에게 수사 책임을 맡겼다. 궈 부국장은 다시 자신의 심복인 왕펑페이(王鵬飛) 충칭시 공안국 기술수사총대장, 리양(李陽) 전 충칭시 형사경찰총대장, 왕즈(王智) 전 충칭시 공안국 사핑바(沙坪패<土+貝>분국 부국장를 불러 현장에 나가 초동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들은 구카이라이에게 짙은 혐의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사건을 덮기로 했다. 닐 헤이우드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부검 없이 서둘러 시신을 화장함으로써 중요 증거를 인멸했다. 그러나 왕리쥔이 미국 총영사관으로 탈출했다가 중앙에 신병이 인도돼 비밀을 폭로함으로써 사건이 전면적인 재조사에 들어감으로써 진상이 밝혀졌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 서버를 둔 보쉰(博迅)은 은폐의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왕펑페이가 재수사에서 구카이라이를 잡아들이는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고 전한 바 있다. 보쉰에 따르면 궈웨이궈, 왕펑페이, 리양, 왕즈는 모두 왕리쥔의 핵심 수하들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구카이라이의 회유·협박에 넘어갔지만 왕펑페이만이 이에 응하지 않고 몰래 보관하고 있던 닐 헤이우드의 혈액 샘플을 재수사팀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안팎에서는 구카이라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보시라이 일가를 몰락시킨 최대 '공신'은 왕펑페이와 왕리쥔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재판 공정했다" 주장 = 중국 검찰은 국제적인 이목이 쏠린 이번 사건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철저한 수사를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왕리쥔의 미국 총영사관 진입 사건 이후 공안부는 이번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해 재조사팀을 출범시켰고 3월 15일 핵심 피의자인 구카이라이와 장샤오쥔을 체포했다. 이에 앞서 구카이라이와 보시라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최고 지도부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재조사팀은 연인원 394명의 사건 관련자와 증인을 조사해 16권, 총 1천468페이지에 달하는 사건 기록을 작성했다. 아울러 검찰은 수백명의 수사 인력이 충칭은 물론 베이징 등 사건 관련지를 다니며 다량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신화통신은 이번 재판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안후이성에서 진행된 것은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공안부와 최고인민법원, 최고인민검찰원이 협의해 내린 결정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