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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익 [석죽]
▲ 민영익 [석죽]


위 그림은 민영익이란 화가가 그린 ‘석죽’(石竹)입니다. 돌과 대나무를 함께 그렸다는 뜻이지요.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로 민 씨 일가가 주도한 세도정치의 중심에 서며 영욕의 삶을 살다 갔지만, 사실 그는 난초 그림과 대나무 그림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문인화가였습니다. 부친 민태호와 숙부 민규호가 저 유명한 추사 김정희 밑에서 글씨를 배운 토대 위에서 15살 무렵부터 서화가로 이름을 알렸다니 그 재능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민영익의 난초 그림은 그의 호를 따 ‘운미란’이라고 불리며 당대 최고의 난초 화가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모진 풍파를 겪다 55살에 상하이에서 망명객으로 일생을 마친 민영익은 우리 미술사에서 조선 최후의 문인화가로 꼽힙니다.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백인산 선생은 자신의 책 <간송미술 36>의 마지막을 민영익의 작품으로 장식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후일 해강 김규진, 석재 서병오, 영운 김용진 같은 화가들이 운미의 그림을 계승했지만, 기량과 의취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정신이 결여되고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문인화는 본질을 잃어버린 양식으로서의 문인화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운미는 분명 조선 최후의 문인화가였고, 그의 죽음은 조선 문인화의 종언을 의미했다.”

민영익 [묵란]
▲ 민영익 [묵란]


민영익을 끝으로 우리 사군자 그림의 전통은 사실상 단절됐다고 보는 겁니다. 대대로 전해져온 그 빛나는 전통의 맥이 끊겼다니 이 얼마나 애통한 일인지.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동양화를 전공하는 한 미술학도가 서울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을 찾아갑니다. 미술관 측에 사정사정해서 민영익의 그림을 모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때까지 미술 해보겠다는 수많은 학생이 간송미술관을 다녀갔지만, 민영익의 그림에서 전통을 이어보겠다고 덤빈 학생은 처음이었답니다. 겸재 정선 연구의 대가인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선생조차 저런 미친놈은 처음 봤다고 했을 정도라니 말입니다. 차가운 바닥에 담요를 깔아놓고 먹을 갈아 민영익의 작품을 보며 그림을 그린 학생의 배짱과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그렇게 민영익의 그림을 모사하며 조선시대에 끊어진 사군자 전통과 정신을 내가 반드시 이어놓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그 야심만만했던 학생은 이제 우리 전통 수묵화를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습니다. 문봉선. 수십 년 전 차가운 미술관 바닥에서 우리 전통 사군자의 맥을 잇겠다고 덤벼든 그 학생의 이름입니다.

문봉선 화백
▲ 문봉선 화백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했습니다.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법고하기 위해선, 끊어진 전통을 잇기 위해선 그 전통을 마지막까지 지킨 이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조선 사군자의 전통은 민영익을 끝으로 단절됐습니다. 문봉선 화백은 학생 시절 바로 그 자리를 찾아간 겁니다. 끊어진 전통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했으니까요. 사실 문 화백은 매난국죽 사군자뿐 아니라 우리 수묵화의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방대한 예술 세계와 필력을 보유한 대단한 화가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전시회를 열어 자신의 작품 세계를 꾸준히 소개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대나무 그림만큼은 단 한 번도 전시회에 선보인 일이 없었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의외로 대답은 간단하더군요. 40년 동안 기다렸답니다. 사군자 중에서도 가장 그리기 어렵고, 그래서 가장 깊은 내공이 필요한 것이 대나무 그림이라고들 합니다. 대나무는 군자의 표상이자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래서 먼 옛날 사대부들은 대나무를 그리면서 군자를 닮고자 했고 절개와 지조를 가다듬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정신 수양의 한 방편이었던 겁니다. 대나무의 겉모습은 손재주만 익히면 누구나 그릴 수 있지만, 대나무에 담긴 기운과 정취까지 그려낸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깊고도 진한 장맛의 비결은 바로 ‘숙성’에 있다고들 하지요. 문봉선 화백이 기다리고 기다린 40년 세월은 바로 그 숙성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문봉선 [묵죽도]
▲ 문봉선 [묵죽도]


그렇게 오래 숙성된 문봉선 화백의 대나무 그림이 마침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전남 담양의 영산강, 진주 남강, 울산 태화강, 섬진강 구례와 하동 등 전국의 좋은 대나무 숲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렸습니다. 맑은 날 대나무, 바람을 맞아 잎이 누운 대나무, 눈 쌓인 대나무 등 다양한 대나무의 모습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 화가는 무려 40년 간 숙성시킨 탄탄한 필력을 바탕으로 날씨와 계절, 생태에 따른 대나무의 외형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 미묘한 변화까지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좋은 대나무 그림에서는 어떤 생동하는 기운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바람을 맞아 누운 대나무 잎과 잎 사이로 바람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대나무 그림일 겁니다. 운 좋게도 화가의 작업실에서 대나무 그리는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요. 대나무를 그리는 데도 순서가 있답니다. 가장 먼저 그리는 게 대나무 줄기입니다. 그런데 줄기를 직선으로 쭉쭉 뻗어 올리는 게 실은 가장 어려운 과정이라고 합니다. 오랜 수련을 거치지 않으면 마음 가는 대로 줄기를 쳐올릴 수 없다는 거죠. 그렇게 힘차게 줄기를 그리고 난 뒤 가지와 잎, 마디까지 기승전결의 네 단계를 거쳐 하나의 대나무 그림을 완성합니다. 화가의 붓질은 조금의 실수도, 망설임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대나무의 고고한 형상이 화선지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은 한 마디로 경이로웠습니다.

문봉선 [우죽]
▲ 문봉선 [우죽]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바로 빗속 대나무입니다. 비 내리는 흐린 날 희뿌연 운무에 가려 흐릿한 숲 속에서도 그 존재감이 오롯한 대나무의 모습을 그린 위의 작품을 한 번 보세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앞서 잠시 소개한 간송미술관의 백인산 선생도 이번 전시의 평문에서 “창신(創新)의 압권은 역시 비를 맞은 대를 그린 우죽(雨竹)이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대의 물기가 채 가시기 전에 큰 붓에 담묵을 묻혀 신속하게 화면 전체를 쓸어내렸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가 화면 가득하다. (중략) 우죽의 양태와 비 내리는 대숲의 정취를 한 화면에 모두 잡아낸 것이다. 전례 없던 과감한 발상도 대단하지만, 한 되의 먹을 적실만한 큰 붓을 너끈히 감당하며 넓은 화면에 무리 없이 경영하는 필력을 마주하며, 그간 쌓아온 내공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빗속 대나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속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법고를 통해 창신으로, 옛 것을 본받음으로써 새 것을 창조해내는 그 역량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뛰어난 관찰력에 부단한 그림 연습이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눈을 현혹시키는 화려한 기교가 만능처럼 여겨지는 세태 속에서 문봉선 화백의 그윽하기 이를 데 없는 수묵화는 진정으로 깊은 울림을 줍니다. 백인산 선생의 말대로 그것이야말로 사생의 힘이며 진솔함의 힘입니다.

문봉선 [섬진강]
▲ 문봉선 [섬진강]


하지만, 전시장에서 직접 가보면 그보다 더 놀라움을 주는 작품이 한 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섬진강 죽림을 그린 바로 위 작품입니다. 섬진강 변에서 포착해낸 대나무 숲의 정경을 담은 그림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나무 줄기도, 잎도 안 보입니다. 그런데 떨어져서 바라보면 바람에 누운 대나무 숲의 모습이 장쾌하게 펼쳐집니다. 파격입니다. 법고를 통해 어떤 창신을 이루었는지, 화가의 공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작입니다. 작품 길이만 10미터가 넘는 이 작품을 전시장에 놓여 있는 방석에 앉아(얼마 전 성황리에 끝난 마크 로스코 전에도 관람용 방석이 등장한 바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바람 소리 들리는 대나무 숲속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청신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이 글을 읽고 작품의 실물이 궁금해진 분이라면 꼭 한 번 전시장을 직접 찾아가 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그림이 주는 감동은 그림 앞에 섰을 때 비로소 놀랍고도 황홀한 체험으로 다가오니까요. 그리고 그런 그림을 그려낸 화가의 불굴의 의지와 노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테니까요. 서양 그림 일색인 우리 미술계에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수묵화가의 외길을 걸어온 문봉선 화백. 저는 이렇게 누가 뭐라든 자기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고 독보적인 일가를 이룬 분들을 ‘원리주의자’라고 부릅니다. 문 화백 같은 원리주의자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문화와 예술은 더욱 더 다양해지고 풍성해질 겁니다.

※ 전시회 정보
제목: <청풍고절 – 문봉선> 전
기간: 2015년 9월 1일(화)~10월 6일(화)
장소: 포스코미술관
주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440 포스코센터 서관2층
문의: 02-3457-1665

※ 작품 출처
민영익 <석죽> 간송미술관
민영익 <묵란> 간송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