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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항에서 열렸던 6·25전쟁 70주년 기념식.

지팡이를 짚고 다소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듯했던 노병의 눈빛이 해군가가 울려 퍼지자 매섭게 바뀌었습니다. 노병은 해군가가 끝날 때까지, 태극기를 향해 꼿꼿하게 거수경례 자세를 유지하더니 '6.25의 노래'도 주먹을 불끈 쥔 채 힘차게 따라 불렀습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TV 중계 카메라에도 그 모습이 여러 번 포착됐는데요.

올해 나이 93살,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입니다. 6.25 당시 미군 참전 이전 해군의 단독 작전으로는 첫 승리였던 '대한해협 해전' 참전용사입니다.

대한해협 해전은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이 1950년 6월 25일 밤 부산 앞바다에서 무장병력 600여 명이 타고 있던 북한의 수송선을 5시간여 만에 침몰시켰던 전투로, 이를 통해 연합군의 증원과 물자 도입이 가능해졌습니다.

6월 26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는 대한해협해전 70주년 전승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 전우 4명과 함께 참석한 최영섭 예비역 대령은 "삼면의 바다를 지키겠다고 자진해 나선 해군 장병과 그 가족들이 푼돈을 모아 백두산함을 사 왔습니다. 그 배가 6월 25일 조국을 지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습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옆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오른쪽)
그러면서 아직도 생생한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전병익 이등병조는 죽는 순간까지도 적선의 격침 여부를 물었고, 김창학 삼등병조는 '끝까지 함께 싸우지 못해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 뒤 마지막 힘을 모아 '대한민국...'을 외치며 눈을 뜬 채 숨을 거뒀습니다"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나라 사랑이 있을까요.

1,129일 동안의 전쟁으로 국군 13만 7천여 명이 숨지고, 2만 4천여 명이 실종됐습니다. 이 가운데 2만9천 명 만 현충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나머진 아직도 포성이 울리던 전장 그 어딘가에서 '귀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2000년부터 시작했지만 만 여명의 참전 용사만 유해로 발견됐고,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사례는 149명에 불과합니다. 유해의 DNA와 대조할 DNA가 턱없이 부족해 가족을 찾지 못하는 겁니다.

70년이 지나간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려면 최대한 가까운 촌수의 다수 유가족 유전자 시료가 필요한 상황인데 2020년 5월 말 현재 확보된 유전자 시료는 5만여 개로, 미수습 전사자의 37% 수준에 불과합니다. ‘국민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 수업(이종혁 교수)에서 '태극기 배지' 캠페인이 시작됐다
"영웅들을 기억하는 상징물을 만들자!"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의 한 수업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작은 캠페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유해를 모신 관을 태극기로 감싼 모습에서 이미지를 착안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태극 문양 일부가 보이는데, 그 모습을 본떠 배지로 만들었고 SNS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선 겁니다.

광운대 4학년 윤재우 학생은 "지난해 전역을 했다. 나는 무사히 군대를 다녀왔지만, 아직 가족 곁에 못 돌아온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분들을 잊지 말자는 캠페인의 취지를 손편지로 작성해 배지와 함께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훈의 의미를 담은 '굿즈'에 대한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습니다. 뜻에 동참하는 청년들의 인증사진과 응원 글이 이어졌습니다.

태극기 배지를 신청한 30대 문현준 씨는 "젊은 친구들도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희생하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수업을 이끈 이종혁 교수(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장)는 2015년에는 국군 장병의 군복에 태극기를 달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요. "미국과 영국에서 포피(Poppy, 양귀비)가 보훈의 상징이 된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보훈의 상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제안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포피는 세계 1차대전 격전지에서 무수히 피어난 양귀비꽃을 본 참전군인이 지은 시에서 착안한 보훈의 상징입니다. 현재 모든 영연방국가는 매년 11월 11일(1차 세계대전 종전 서명일)을 포피데이(Poppy Day)로 기리는데, 그 주에는 연방국 국민과 TV 방송 진행자는 물론 영국 여왕도 포피를 가슴에 달아 돌아오지 못한 용사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가(정부위원장 정세균 국무총리·민간위원장 김은기 전 공군참모총장) 청년들의 움직임을 정부 공식 캠페인으로 이어받았습니다. 귀환을 기다리는 전사자와 같은 숫자인 12만 2,609개의 배지를 만들어 국민과 나눈 겁니다.

전장으로 떠난 아들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을 어느 용사의 어머니처럼, 배지를 가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6·25전쟁 당시 북측 지역에서 전사해 7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147인의 영웅들
1호 배지는 1950년 10월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했지만,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고(故) 서병구 일병의 외동딸 서금봉(70세) 여사에게 전달됐습니다. 2호 배지부터는 무료로 배포했는데, 불과 2일 만에 마감되는 등 국민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김은기 공동위원장은 “아무런 대가 없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호국영웅들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기억'이라며 국민께서 뜨거운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6·25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70년 만에 조국의 품에 안긴 147명의 영웅을 맞이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참석자는 태극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1명이 귀환하는 그 순간까지, 국민과 정부 모두 기억하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