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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하다. 그 말을 하는 그가 딱한 것이 아니다. 우리 국악계의 현실이 딱하다는 얘기다. "판소리나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우리의 고품격 예술입니다. 누구든 그런 한국의 전통소리를 가장 훌륭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은 한국, 또 국립국악원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국립국악원에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자연음으로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그런 우리 소리 전용 공간이 없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국악원의 김철호(55) 원장은 국악공연장이 화제가 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성이 약간 높아지는 듯하다. "이 옆(예술의전당)에 지금 복합공연장을 하나 만들어놓고 거기서 (마이크를 써서) 오페라도 하고, 외국 오케스트라도 연주하고, 체임버뮤직도 하라고 한다면 아마 난리날 겁니다." 국악공연공간과 관련해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원장실에서 만난 그의 말이다. "현재 국립국악원이 갖고 있는 (예악당이나 우면당 등) 공연장시설은 오래 전 국악의 대중화를 염두에 두고 지어진 겁니다. 복합공연장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맛뵈기 식으로 공연하도록 한 거지요. 판소리나 시나위, 영산회상(靈山會上), 시조, 가곡 이런 것들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으면 감상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마이크에 의존하다 보니 예를 들어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들이 굳이 통성(배 속에서 바로 위로 뽑아내는 소리)을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통성으로 소리를 전달해야 정상인데 마이크를 가깝게 해서 소리를 내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통성 있는 소리 공간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음악도 정통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김 원장은 이제 국악이 단순한 보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품격화, 정수화, 정예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우리의 공연예술이 대개 통으로 이뤄진 것이지 토막토막으로 된 게 아닙니다. 굿도 그렇고 풍물도 그렇고 민속악 모두 그렇습니다. 그 걸 현대식 극장에 맞추다 보니까 맛뵈기 식으로 토막을 내서 찔끔찔끔 하게 된 거죠. 그러니 복합공연장에서 마이크를 써서 온갖 것을 다 함께 해 버린 겁니다." 국립국악원은 요즘 통으로 된 우리의 전통예술을 복원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올 연초에는 종묘제례악과 함께 조선 초기의 대표적 궁중예술이라 할 수 있는 '봉래의(鳳來儀)'를 500여 년 전 모습에 가깝게 복원했다. 또 지난 5월에는 조선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베푼 회갑연을 재연해 낸 '왕조의 꿈, 태평서곡'을 고궁에서는 처음으로 창덕궁에서 공연했다. "지금까지는 궁중예술을 중심으로 복원작업을 해 왔지만 앞으로는 굿 같은 민간전승의 전통공연예술을 옛 모습으로 재연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굿뿐 아니라 대풍류 같은 음악들도 통으로 복원하려 합니다." 국악의 생활화도 그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립국악원의 과제다. "초등학교의 수업 시작이나 종료를 알리는 신호가 '엘리제를 위하여' 또는 쇼팽의 피아노곡 같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국악 선율들을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친숙하게 듣도록 한다면 국악이 보급되는 데 크게 기여할 겁니다. 가야금 선율로 수업의 시작을 알리고...우리 굿거리장단으로 생일축하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국립국악원은 최근 100여 초등학교를 시범학교로 정해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음악으로 국악을 사용토록 하고 연말께 시행결과를 분석해 생활 속에서 국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국악이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 건 전통음악이 생긴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원장의 생각이다. "우리 음악은 보통 느리게 시작해요. 시조를 감상해도 그렇고. 그러나 그 건 동양화의 여백같은 겁니다. 그 걸 이해하고 들으면 자연히 우리 국악에 친숙해질 수 있는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국악이 순수 국악의 발전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종합적으로 볼 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복도 그렇고 전통음식도 그런 것처럼 우리 음악도 어느 시대에나 퓨전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말. 국악도 대중들이 전자음악을 통해서라도 즐기고 기억하고 이해한다면 그것대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김 원장은 얘기한다. 그러나 역시 그는 '정통적인 전통공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또 그를 위해서는 사랑방이나 정자 같은 분위기에서 연주자와 관중이 서로의 숨소리를 느껴가며 마이크 없이 자연음으로 우리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소리극장'의 건립이 시급하다는 점을 두 번 세 번 얘기한다. 국악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을 포함해 국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딱한 상황'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