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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말기 환자 강남수 씨(61)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
2017년 한 해, 우리나라 총 사망자 28만 5천여 명 중 76%인 21만 명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의학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도,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다양한 시술과 처치를 받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연명치료를 받는 동안 환자의 고통은 길어지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과 지인들도 상상하기 힘든 괴로움을 겪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을 무의미하다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의식이 없거나 희미한 상태에서 고통스러운 치료를 지속하는 일에 대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마주할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조금 더 편안하고 존엄하게 맞고 싶다는 생각, 이른바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논의는 그래서 시작됐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뜻에 따라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한 것으로, 현행법상 심폐소생술과 혈액투석, 항암제투여와 인공호흡기 착용 등 4가지 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임종과정에서 의사와 함께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나, 건강할 때 보건복지부 등록기관에서 미리 작성해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다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생전에 연명치료를 원치 않았다는 가족 2인 이상의 진술이나 배우자와 직계가족 '전원'의 동의로도 중단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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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4일)이면, 이 법이 시행된 지 꼭 1년입니다.

매일 말기 암 환자들을 만나는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가 지난 1년간 의료 현장에서 경험했던 연명치료 중단 과정을 만화로 담았습니다. 만화그리기가 김 교수의 취미라고 합니다.


■ "환자에겐 제발 비밀로 해주세요."

"일단 가족들이, 의사가 환자와 직접 얘기하길 원치 않으시는 경우가 많아요. 나쁜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진료하기 전에 미리 쪽지를 준다든지, 환자랑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가 나중에 가족들이 항의하는 경우도 있고요. 가족들은 환자가 의사랑 안 좋은 얘기를 나눠서 절망스러워하고 그런 과정에서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질 거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시죠. 그런데 저는 결국은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을 잘 견디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게 의료진의 역할이고요."


■ "설명이요? 그냥 편안하게만 해주세요."

"일단 질병에 대해서 자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본인하고 얘기하려면 충분한 진료시간이 있어야 하거든요. 저희가 그냥 간단한 시술 하나 받는데도 의료진과 충분히 상담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죽음과 관련한 대화가 3분짜리 진료를 하면서 이뤄지기는 어려운 거잖아요.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거 자체가 의료진도 너무 힘들고, 어렵고. 그런 얘기 꺼냈다고 해서 환자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진 뒤 얘기를 꺼내게 되면 그땐 환자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이해하기 어렵죠. 나중에야 가족과 보호자들을 불러 모아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서류(DNR)를 작성하고 환자는 이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임종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이 아직은 많습니다."


■ "가족 '전원'이 동의해야 가능합니다."

"의사들끼리도 얘기를 많이 하는데, 실제 우리나라에서 가족이 붕괴된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요. 결혼 상태는 유지하는데 거의 왕래를 안 하는 집들도 정말 많고요. 부모 자식간에 의절해서 연락이 안 되고 나중에야 불러 모으는 상황도 많고. 그런 상황에서 가족 간의 갈등을 다 봉합하면서 임종을 맞이하게 해드리는 게 물론 저희가 가야 할 방향이긴 하지만, 여전히 임박해서 뭔가 작성하려면 어려운 게 있죠."


■ "숨쉬기도 힘든 분한테 무슨 짓인가요?"

"가능하면 건강할 때 미리 작성해놓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단 본인이 명확하게 생각을 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기에 작성할 수 있어야죠. 4기 암 같이 대개 5년 생존율이 10% 미만인 암종을 진단받은 경우에는, 진단받은 때부터 의료진과 가족들과 함께 앞으로 치료 방향이라든지 치료가 더는 효과가 없을 상황에 대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해 미리 대화를 나눠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처벌받지 않으려면, 서류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이 법의 본질은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임종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관해 결정을 하게 해준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본질을 더 살리는 쪽으로 나아간다기보다는 많은 서류를 작성해서 어떻게 하면 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매진하는 경향들이 좀 보여요.

사실 사람의 생명에 관한 것이다 보니까 여러 가지 남용 우려 때문에 의무기록이라든지 엄격한 법적 기준들이 정해져 있어요. 그런 것들을 다 충족시키려니 서류만 해도 서너 장 이상을 저희가 작성해야 하고, 그걸 전산 등록하는 과정도 굉장히 복잡하고요. 여전히 현장에서는 조금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사전의료의향서는 가족을 위한 마지막 선물입니다."

"제 환자 중에 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원해서 결국은 마음을 다시 먹고 투석을 하게 된 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투석 중간중간에 저랑 대화할 때는 '나 너무 힘들다, 빨리 보내달라'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환자가 얘기한 건 '내가 나 같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 온전히 나로서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었답니다.

그래서 제가 투석을 중단하자고 보호자한테 말씀드렸는데 동의하지 않으셨어요. 결국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투석을 더 하고 그다음에 임종하셨거든요. 고통도 고통이지만 내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게 정말 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느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필요한 건 대화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두기로 한 이종철(80) 씨가 작성한 상담일지.
마지막을 준비할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준비된 죽음이란 게 있겠느냐마는,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사고나 질병의 경우 임종은 물론 치료 과정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대화조차 나누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질병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도, 환자들은 본인의 건강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기회를 얻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가족의 만류 때문입니다. 환자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게 됐을 때 회복에 대한 기대를 아예 놓아버리고 치료 의지를 잃을까 봐, 가족들은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서상 자녀들이 부모에게 먼저 임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는 점도 작용합니다. 죽음은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이야깃거리일 뿐이죠.

의료현실의 문제도 있습니다. 매일 시간에 쫓기며 진료하는 의사들이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시간을 내서 죽음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정부와 관계기관의 지원과 의료진들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충분한 대화'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병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가족과 의료진들이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의식이 또렷하고 충분히 고민할 수 있을 때 이야기를 나누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지적입니다. 가족들이 대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본인이 원하는 임종을 선택할 수 있으려면, 시작은 역시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결정은, 사실 죽음의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문제일지 모릅니다. 살면서 하는 수많은 선택 중 하나, 죽음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