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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을 해주셔서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만, 아직 저희는 국가에 대해서 (사과나 보상에 대한) 정확한 확답도 받지 못해서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
-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대상자)

"사과 서한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온 '결정문' 이게 다예요."
- 정○○ 삼청교육대 피해자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대상자)

KBS가 지난해 집중 보도한 <사과는 없었다>를 통해, 각종 '국가 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토로한 말들입니다.

'국가' 차원의 대규모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진실화해위원회가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보상' 등이 필요하단 권고를 해도, 정부 부처들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과거사 피해자들이 진실화해위에 자신의 사건을 접수하고, 진실 규명 결정이 나오기까진 보통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립니다. 이 사이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을 직접 제출해야 하고, 조사관들과 면접 조사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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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지키면 그만'이던 맹탕 권고 … 국가 폭력 피해자 두 번 울려

지난한 과정을 거쳐 국가기관이 피해를 인정하더라도 정작 달라지는 게 없는 현실.

진실화해위 '권고'는 '안 지키면 그만'인, 그야말로 별 실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는 정부 기관이 진실화해위의 권고를 받고 이를 따르지 않아도, 어떤 제약이나 벌칙이 없었습니다.

권고를 지키고 있는지 감독하는 주체도, 사실상 공백 상태였습니다.

법이 위원회 활동 종료 이후 발간되는 종합보고서 권고 사항만을 이행 관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위원회 활동 중 나온 권고 사항은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권고를 받은 정부 기관들 역시 '피해자 연락불가' '피해자 거부' 등 거짓된 이유로, '사과'와 '보상'을 거부했습니다.

"마지막에는 2019년 10월인가 11월에 한국에 갔었어요. 간첩이라고 잡아넣을 때는 해외 국민이라는 것을 빌미로 삼아서, 간첩으로 조작했는데, 이제 와서 해외 국민이니까 뭐 연락을 못 한다는 건, 말이나 되는 소리를..."
- 김병진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육군 본부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사과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전화에, 나를 다시 협박하려 하나 생각했는데, 그걸 근거로 내가 사과에 '부동의'했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임헌영 문인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 3개월 내 이행 계획 제출 … '인권위 급' 권고 위상 강화

이런 행정 난맥상을 바로 잡을 개정안이 어제(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개정안에는 진실화해위의 권고를 받은 정부 기관 등은 3개월 이내에 권고사항의 이행 계획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제출하고, 권고사항을 이행하면 그 결과도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만일 해당 기관이 권고 사항을 이행하지 못하면, 사유서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송부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정부 기관들에 '권고'를 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권고를 받은 기관들에 90일 이내에 이행 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고, 거부하면 인권위는 이를 강제 공표할 수 있습니다.

진실화해위 권고의 위상이 인권위 급으로 격상되면서 지금처럼, 권고를 받은 정부 기관들이 '사과'와 '보상'을 막무가내로 미룰 수 없게 된 겁니다.

개정안엔 권고의 이행상황 점검 주체를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명시하며, 권고 관리 부처도 처음 명확히 했습니다.


■ 이미 나온 '권고'들에 소급 적용 가능할까?

외면받던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인 국가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을 길이 열렸지만, 우려는 여전합니다.

이번 개정안은 공포 뒤 6개월이 지난날부터 시행됩니다. 따라서 2기 진실화해위가 이미 내린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등 굵직굵직한 진실규명 결정들이 이 개정안에 소급적용을 받을 수 있을지는 법적 해석의 영역입니다.

진실화해위가 지금까지 나온 '권고'들을 법 시행 이후 다시 '권고'하거나,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하는 조사보고서를 법 시행 이후로 미루는 방법이 있지만,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또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시행 중인 인권위 권고 제도 역시 실효성 논란을 겪는 상황입니다. 벌칙 조항·강제력이 없으므로 인권위 권고 역시 3건 중 1건만 온전히 수용되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했던 변상철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 챈스 소장은 "결국 중요한 것은 권고를 받은 정부의 이행 의지"라며 "정부가 나서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 결정하고 권고한 사안 중 이행되지 않는 사안을 전수 조사하는 것이, 개정안 취지를 이행하는 첫 걸음"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