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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고 밤이고 죽겠습니다."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제주시 한경면 일대에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짧게는 30초, 길게는 20여 분 간격으로 엄청난 굉음이 마을을 뒤덮었다. 인근 주민 A 씨는 "처음 총성이 울린 날 아내가 전쟁이 난 줄 알고 전화를 걸어왔다"며 "굉음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확인 결과 인근 콜라비 농가에 설치된 조류퇴치기가 소음의 근원지였다.

한 달 반가량 한경면사무소와 한경파출소에 민원이 폭주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유해 조수 퇴치 소음은 소음·진동 관리법상 규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종필 한경면사무소 생활환경팀장은 "현재까지 행정에서 파악한 곳만 20여 곳이다. 농가에서 임의로 설치한 건데, 관련 조례나 규정이 없어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25일 새벽 1시 제주시 한경면 콜라비밭에 설치된 조류퇴치기. 소음 민원이 들어와 한경면사무소 직원과 한경파출소 직원이 퇴치기 라인을 분리했다.
인근 주민 B 씨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은 심각성을 못 느끼지만, 주민들은 다르다.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다가온다. 농부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방법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장영심 씨는 "어른들도 깜짝 놀라는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냐"며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주시 한경면의 한 밭. 꿩이 콜라비를 쪼아 구멍이 뚫려있다.
"내가 쫓아가서 잡을 수도 없고…" 농민들은 울상

제주 서쪽에 있는 한경면엔 현재 콜라비와 비트, 브로콜리 등 월동채소 수확이 한창이다. 지난해 연이은 태풍과 비 날씨로 피해가 막심해 농가 입장에선 수확이 절실한 상황이다. 김종필 팀장은 "현재 월동채소 가격이 상당히 잘 형성돼 있다"며 "태풍으로 파종도 못 한 상황이라 농민들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20년 경력의 농부 고봉일 씨는 "동네 사람들이 욕을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꿩이 한 번이라도 쪼면 상품을 폐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 씨는 구멍이 숭숭 뚫린 작물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말도 못하죠. 마음이…. 어떻게 꿩이 날아가는데 제가 가서 쫓아가서 잡을 수도 없고…."

2019년 12월 31일 제주시 한경면 콜라비밭. 농부 고봉일 씨가 폐기처분 될 콜라비를 들고 있다.
고 씨는 "관리를 하지 않으면 밭 절반이 꿩과 까치로 쑥대밭이 된다"고 토로했다. 고령화와 일손 부족 상황에서 농민들은 조류퇴치기를 불가피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지난해까지 없던 조류퇴치기가 입소문을 타며 마을 일대로 유행처럼 번져 나간 것이다.

한경면에 설치된 조류퇴치기는 카바이드(carbide)라는 탄소 화학물질에 물을 떨어뜨려 아세틸렌 가스를 모아 점화해 폭음이 터지는 방식이다. 조류퇴치기 1대 가격은 20여만 원으로 비교적 저렴하고, 카바이드도 한 통(1~3만 원)이면 한두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어 점점 설치가 느는 추세다.

고 씨가 조류퇴치기에 적신 천을 깔고 카바이드를 넣자 연기가 발생하고 있다. 물을 넣고 코드를 연결하면 폭음이 발생한다.
"직접 지원 필요" 행정이 발 벗고 나서야 할 때

제주시는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국비 보조사업으로 노루망과 방조망 설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 농가 당 지원 금액이 300만 원에 그쳐 한 번 보조받을 때 설치 면적이 190㎡(60평)에 불과하다.

야생동물을 잡는 대리포획단도 운영하고 있지만, 피해 농가와 읍면동이 포획허가서를 신청하고, 행정에서 이를 검토하는 번거로움 등이 있어 농민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김 팀장은 "포획단의 경우 산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작물에 탄알이 박히는 문제를 배제할 수 없다"며 "현시점에선 조류 전용 그물망을 농가에 설치하고, 수확기가 끝나면 다시 철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실질적인 보조 사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현재 민원을 해소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현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한 입장이다. 야간에 소음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토지주와 농사짓는 분이 달라 이마저도 애를 먹고 있다"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