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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가 가까워진 시간, 판사 세 명의 목소리가 차례로 서울중앙지법 425호 법정에 울려 퍼졌습니다.

세 명의 판사는 법대가 아닌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 등을 법원행정처에 누설한 혐의(공무상비밀누설)로 기소된 신광렬(前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前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성창호(前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판사에 대한 1심 재판이, 어제(20일) 다섯 달만에 끝났습니다.

검찰은 어제 재판에서 신광렬 판사에게 징역 2년, 조의연·성창호 판사에게는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검찰은 세 사람이 “국민의 중대한 기본권 보장을 위해 수사기밀을 취급하게 된 것을 기회로 악용해 헌법이 부여한 중차대하고 신성한 직무의 본질을 망각하고, 영장재판을 수사기밀을 빼돌리는 루트로 전락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엄중한 사법적 단죄를 통해 더 이상 재판이 사법행정권자 마음대로 사용될 수 있는 도구가 되지 못하게 하고, 헌법상 재판 독립을 더 굳건히 확립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3월 검찰의 기소 이후 공소장 내용에 대한 보도가 쏟아진 뒤, 이 재판에 대한 보도는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요.

재판에서 세 사람은 법관 상대 수사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법관 비위에 대한 수사기밀을 보고하라는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고,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을 주고받거나 검찰 수사기록 등을 통째로 복사한 사실 등도 없으며, 통상적인 사법행정상의 필요에 따라 정당한 내부 보고를 한 것이라 공무상비밀누설죄가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해 왔습니다.

다섯 달 동안 열린 16번의 재판에서 다퉈진 쟁점들이 재판의 마지막 순서인 세 피고인의 최후 진술에 담겼습니다.

그간의 재판 내용을 다 따라잡을 순 없겠지만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최대한 빠짐없이 적었지만 잘 들리지 않거나 말이 빨라지는 등의 이유로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신광렬 피고인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판사님, 그동안 피고인들 주장을 경청해주시고 사건을 충실히 심리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현직 법관으로 소환을 거쳐 세 차례 검찰 조사를 받고 기소된 후 지금까지 피고인석에 앉아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올바른 재판을 통해 당사자의 억울한 사정을 살피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온 조의연, 성창호 부장판사님들까지 검찰 조사를 받고 오늘 피고인신문까지 받으며 재판을 받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하여 많은 전·현직법관들이 검찰 조사를 받거나 이 법정에 증언까지 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참으로 가슴 아프며 이 자리를 빌어 그 분들꼐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검찰은 제가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받고 법관에 대한 수사 저지를 위하여 수사 기밀을 유출하고 영장판사들에게 법관들에 대한 영장을 엄격히 심사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전달하고, 검찰총장을 협박하는 문건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법원행정처로부터 결코 그러한 지시를 받은 바도 없고, 어떤 형태로든 영장판사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주거나 영장재판에 개입한 적이 없습니다. 검찰총장을 협박하는 문건을 작성한 바도 없습니다. 검찰이 이 법정에 제출한 어떤 증거를 살펴보더라도 이를 인정할 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제가 법관 비위 사항을 행정처에 보고한 것은 재판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함으로, 사법행정 담당자로서 직무상 마땅히 해야할 업무를 수행한 것입니다. 사법행정담당자로서는 법관비위 사건이 발생한 경우 우선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 비위법관의 징계 검토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국회나 언론 검찰 관련 업무, 전관예우 방지, 사법신뢰 회복 등 제도 개선 업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법행정 활동이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수사기관이 법원의 정상적 사법행정 업무 수행에 대해 본 사건과 같이 수사, 기소한다면 향후 법원뿐만 아니라 어느 행정조직도 예기치 못한 형사처벌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재판의 신뢰를 유지하고 사법 신뢰의 실추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대책을 검토한 데 대해 수사기관이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 혐의를 들이댄다면 과연 누가 필요한 사법행정 업무를 수행할 것인지, 사법의 신뢰는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공무상비밀누설죄는 보호 가치 있는 비밀을 외부에 누설할 때 성립하는 범죄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법행정업무에 필요한 법관 비위 정보를 파악해 법원 내부의 상급 행정기관인 법원행정처에 관련 규정과 통상적 업무절차에 따라 보고했습니다. 수사 저지 목적으로 외부의 수사대상자에게 누설한 게 결코 아닙니다. 피고인의 이런 보고가 법에 위반된다는 인식도 없었고, 검찰 수사를 방해할 의도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공무상비밀누설 구성요건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거나 직무상 정당한 내부보고에 해당하는 피고인의 행위를 공무상비밀누설죄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이러한 처분은 사실관계나 법리적인 면, 정당성 면에서 모두 타당하지 않습니다.

정운호 게이트와 같은 법관 비위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해선 안되겠지만, 만일 향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사건으로 인한 위축 효과로 어느 사법행정 담당자가 사태를 파악해 대법원에 보고하고 재발 방지책을 검토하여 시행할 것인지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2년 간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면서 소속 법관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소신껏 공정한 재판 할 수 있도록 제 능력이 닿는 데까지 노력했습니다. 외부 기관이나 단체의 부당한 비난·공격으로부터 담당 법관을 보호하는 한편, 소속 법관들의 애로사항을 들어보고 재판업무 수행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을 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을 보탰습니다. 제 능력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했을 뿐 성심을 다해 재판과 사법 신뢰를 도모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법원행정처에 법관 비위사항을 보고한 것 이외에 검사가 주장하는 공소사실은 증거로 증명되지 않았고, 법리적으로도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영장전담판사들도 사법행정적 대처를 위해 법관비위에 관한 사항을 저에게 내부적으로 보고하였을 뿐, 제가 행정처에 그 내용을 보고한다는 사실 알았거나 저와 공모하여 비밀누설한 사실도 결코 없다는 점도 아울러 말씀드립니다.

우리 재판부께서 그동안 공판중심주의에 기초하여 심리한 여러 증거들과 피고인 주장을 세심히 살피셔서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조의연 피고인

“네. 어… 먼저 어려운 사건을 맡아 재판을 공정하게 이끌어주신 재판장님과 배석 판사님께 깊은 감사 드립니다.

22년 이상 법관직을 수행하면서 비록 능력은 부족하지만 한 사건 한 사건에 정성을 다해 임하고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동안 주어진 직무를 모두 훌륭히 수행해왔다고 자신할 수 없어도, 적어도 별다른 문제없이 무난하게 재판을 해왔고 스스로 부끄러운 일처리를 한 적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 이메일 등이 압수수색되고 이후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금품수수와 같은 개인비리도 아니고 업무 과오로 재판관계인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마치 영장재판 과정에서 어떠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취급되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형사사법 절차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했고, 검찰이 의문점 갖는 부분에 관해 충분히 소명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잊고 있다가 갑자기 작년 3월 5일 성창호 부장판사와 함께 기소됐을 때 그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넘어, 이게 과연 적절한 검찰권 행사인지 심각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공소장에서 저는 하루하루 묵묵히 재판 업무를 하는 보통의 판사가 아닌 부당한 목적을 위해 법관으로서의 양심, 책무까지 저버리는 부도덕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법관으로서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고, 불과 10개월 전까지 이 건물 502호 법정에서 형사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던 탓인지 지금도 피고인석에 있는 제 모습이 낯설기만 합니다.

이 사건 재판을 준비하면서, 또 공판기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형사소송의 이념과 목적이라든지 영장주의와 적법절차가 실제 재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방어권 보장을 위한 여러 절차 조항들의 중요성도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2016년 영장업무를 맡아 하루하루 정신적 육체적으로 거의 극한상황에서 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최선을 다했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실제 있었던 일을 가지고 이런 평가를 받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데, 제가 하지도 않은 일과 알지도 못하는 일까지 보태져서 마치 영장전담판사들이 무슨 악행에 조력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법관으로서 감내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그때로 다시 돌아가 저의 인식 범위 안에서 영장 업무를 하였더라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고, 또 제가 아닌 다른 판사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실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말처럼, 제가 천직의 일터로 생각하고 있었던 이 법정에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무쪼록 형사사법의 원칙과 법리, 이 법정에서 조사된 증거에 입각해 이 사건의 실체에 맞는 판단을 해주시기를 머리 숙여 간청드립니다.

또한 오랜 기간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의 입장 헤아리시며 충실한 심리를 해주신 재판부께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상입니다.”



3. 성창호 피고인

“어… 먼저 부담이 작지 않은 사건을 맡아서 재판을 공정하고 충실하게 이끌어주신 재판장님과 두 분 판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1999년 법관으로 임용돼서 현재까지 20여 년간 근무하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고 항상 올바르게 처신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비록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큰 과오나 부끄러움 없이 근무해왔다고 스스로 자부해왔습니다. 2016년에 영장전담업무 담당했을 때도 엄청난 업무 강도와 사건의 중압감 속에서도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영장재판 업무에 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8년 검찰의 사법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중에 갑자기 제가 영장전담판사로 근무한 것과 관련해서 마치 부정한 업무처리가 있었던 것처럼 언론보도가 나오더니, 곧바로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수사 절차에 협조한다는 차원에서 2018년 9월 초에 참고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5개월 이상 검찰에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2019년 2월 중순경에 갑자기 피의자로 조사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왜 뒤늦게 피의자로 소환한다는 것인지 물었는데 제가 피의자로 입건돼 있어서 정리 차원에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사의 시점이나 이유 등에 대해서 상당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 또한 형사사법절차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2019년 2월 24일 조사에 응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는 시점에 검찰은 갑자기 저와 조의연 부장판사를 기소했다고 발표했고, 그때부터 검찰의 발표 내용을 토대로 제가 매우 부정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난 20여 년간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당혹스럽고 참담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 사건 공소장을 받아보고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공소장에 의하면 저를 비롯한 영장전담 판사들은 법관에 대한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수사정보를 지속적으로 빼내서 형사수석부장을 통해 행정처에 전달하고 행정처는 수사확대를 막기 위해서 검찰을 압박하는 등의 부당한 조직보호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검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저를 포함한 영장전담판사들은 그동안 헌법과 법률에 따라 부여된 재판업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재판을 빙자하여 범죄행위를 도모한 것이고 심지어 부정한 목적에 따라 재판 결론마저 마음대로 조작하였다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검찰의 논리는 저 개인으로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만, 법관과 재판을 이토록 왜곡하여 공격할 수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검사가 이런 논리로 법관을 함부로 기소한다면 법관은 자신이 한 재판에 대해 혹시라도 나중에 범죄 행위로 추궁당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재판 업무에 임해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16년 당시 저를 비롯한 영장전담판사들은 여느 영장 판사들과 마찬가지로 형사재판을 총괄하는 형사수석에게 중요사건 등에 대한 영장처리결과를 설명했고 정운호에 대해 보고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법관 비위가 문제돼 사법신뢰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었고 당시 다수의 현직 법관에 대한 비위 의혹이 아무런 사실 확인없이 경쟁적으로 보도되는 상황이라서, 이에 대한 법원의 대처를 위해서 당연히 보고가 필요한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영장전담판사들은 그것이 범죄가 된다거나 다른 어떤 문제가 된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016년 내내 수없이 많은 사건이 밀려오고 유난히 언론, 여론에서 크게 논란되는 사건들이 많아 상당한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오직 흔들림 없이 업무에 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충실히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여기 계신 조의연 부장판사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만 저로서는 그 해가 제 법관 인생에 있어 가장 고되면서도 한편으로 가장 보람 있는 한 해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련의 과정에서 제가 처리했던 업무가 마치 무슨 범죄행위인 것처럼 형사재판에서까지 논의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아직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이 사건 기소 이후에 저에 대한 근거없는 추측성 보도가 나오고, 또 그와 관련해서 여러 언론사로부터 문의도 받았지만, 형사 사건의 진실은 공개된 법정에서 충실한 심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법관으로서의 소신이었고, 그래서 오로지 법정에서 최선을 다해 변론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제 변론을 종결하는 터에 과연 진정 이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고 저에 대한 이 사건 기소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재판부께서 형사법의 원칙과 법리에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한 증거들을 잘 살피셔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오랜 시간 쌍방의 주장 경청하면서 충실한 심리를 해주신 데 대해서 다시 한 번 재판부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세 사람에 대한 1심 판결은 다음달 13일 오전 10시에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