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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일주일, 대한민국의 낮과 밤은 추모 행렬로 가득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국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전국에서 수백만명의 국민들이 슬픔속에 빈소를 찾아 노 전 대통령을 조문했고, 지난 금요일 영결식에는 바보'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수 십만 명의 국민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그 일주일을 담았습니다. <리포트> 파란만장했던 이승에서의 삶을 뒤로한 마지막 날, 손녀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하게 v자를 그리다가... 조용히 할아버지를 떠나보냅니다. <녹취> 손녀 :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사람들은 한평생 원칙과 양심에 충실했던 고인의 생을 회고하며 그를 지켜주지 못한데 대한 짙은 회한을 토로합니다. <녹취> 한명숙(조사/장의위원회 공동위원장) :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날벼락 같은 서거 소식. 국화꽃 한가운데 자리잡은 영정사진에, 사람들은 애써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맙니다. 분향소 주변에는 안타까운 마음들을 담은 글들이 하나하나 모여 벽을 가득 채웠습니다. <녹취> 노무현 : “야 기분좋다!” 고향에 돌아와 기분이 좋다던 탄성은 1년여 만에 추모객들의 오열로 바뀌었습니다. 어린 노무현이 뛰어놀았을 봉하마을의 논길, 밀짚모자를 쓰고 내달렸던 시골길은 끝없는 추모의 행렬로 가득찼습니다. 갑작스레 쏟아진 장대비도, 한 여름을 방불케하는 뙤약볕도, 바보 대통령’과 마지막을 함께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지는 못했습니다. <인터뷰> 인경희(경남 김해 내동) : “저희들이 오고 싶어서 온 거니까 마음이 참 좋아요. 일단 왔다는 자체만으로 마음이 편하고 힘든건 모르겠어요 등에 땀도 나고 하는데 마음은 힘들지가 않아요.” 정치인으로서의 지지와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인터뷰> 권영자(부산 거제동) : "노대통령 지지하지는 않았는데 그 분이 평소에 솔직하시고 또 거짓말 못하시고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고 경상도 남자 원래 그렇잖아요 꾸미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는..." 개구쟁이 어린 시절의 노무현을 기억했던 봉화산... <녹취> 노무현 : “(어렸을때) 고무신 신고 이런데 다녔다니까...” 이제는 그를 삼킨 다른 모습으로 '바보' 노무현을 영원히 품에 안게 됐습니다. 마지막 순간, 가파른 벼랑끝에서 느꼈을 그의 절박함은 추모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인터뷰> 이성기(부산 거제동) : “겁나네요 바위가, 텔레비전 보는거 하고 와서 보는거 하고 차이가 ...높으네요 높아..." 사람들의 비통한 마음을 담은 노란 깃발은, 해가 지면 자신을 태우는 촛불 행렬로 이어졌습니다. 사상 최대의 추모 인파를 가능하게 한 건 고인의 소탈함과 평범함. 퇴임 후 유일하게 고향으로 돌아간 대통령, 평범해서 더욱 특별했던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손녀 : "쌩쌩 달려보세요." 어린 손녀와 함께 마을 주민에게 인사를 건네고... <녹취> 노무현 : “안녕하세요.” <녹취> 손녀 : “안녕하세요.” 동네 가게에서의 대화는 여느 동네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습니다. <녹취> 노무현 : "손이 차가워서 어떡하지?" <녹취> 손녀 : "괜찮아요." <녹취> 노무현 : "먼저 갈게 천천히 놀다 와라." <녹취> 손녀 : "왜요?" <녹취> 노무현 : "그거 들고 자전거 탈 수 없잖아." <녹취> 손녀 : "그럼 주머니에 넣어가면 되잖아요." <녹취> 노무현 :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간다고?" <녹취> 손녀 : "네." 논두렁 막걸리 한잔은 기본, 마을 청소를 위해 손수 삽질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산행 중 드러난 발가락 양말, 어린아이처럼 산등성이 풀밭에서 썰매를 타기도 하고, 오히려 보통 사람들에게 더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람들의 사인 요청에는 무릎을 꿇기도 합니다. <인터뷰> 서정원(부산 대금동) : "이웃집 아저씨 같고 형님같고 털털하니... 참 퇴임하고 오셔서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거 봤을 때 저로서는 마음이 많이 와 닿았기 때문에..." 최고 권력자 시절에도 소탈함은 여전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에서 먹는 라면 한 그릇, 격무에 지쳐 잠시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손녀의 엉덩이가 아플까 자전거에는 수건을 대줍니다. 비행중 기압차로 막힌 귀를 뚫는 모습은 꾸밈이 없습니다. <인터뷰> 김영선(부산 화명동) : “일단 서민으로 생각할 때 우리를 위해줄 수 있는 대통령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도 이 분이실거 같고...” <인터뷰> 이광준(전주) : "우리들을 위한 단 한 분의 대통령, 마음속에, 제 마음속에 있는 단 한분의 대통령이다... 이렇게." 지난 2004년 자이툰 부대 깜짝 방문, 갑자기 대통령을 안아 올려 주위를 놀라게 했던 사병이 있었습니다. <녹취> 노무현 : “(허리) 다칠라.” <녹취> “상병 김준석,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다칠라' 한 마디로 기억된 대통령이지만 4년 넘어 다시 만난 대통령은 영정 속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인터뷰> 김준석(전 자이툰 부대원) : “김준석이라고 하면 아실 거 아니어요. (봉하마을)갈 생각이었는데...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이렇게 되니까 마음이 진짜...” 스스로 권위를 벗어던지고 낮은 곳을 바라봤던 대통령이기에 국민들의 슬픔은 더 컸습니다. 이 때문인지 거리나 역, 시장 주변, 경로당 등 곳곳에서 자발적인 분향소가 마련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김미혜(부천 중동) : "국민을 위해 많이 애쓰셨는데 저렇게 원통하게 돌아가셔서 마음이 안좋아요." 인터넷으로 국민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기를 원했던 대통령이어서 인지 추모는 인터넷에서 더욱 뜨거웠습니다. <인터뷰> 신율(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노무현 대통령은 비주류로서의 삶을 살고 일반 국민들은 기득권에 대해 느꼈던 감정, 그런 것들을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해소했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대통령의 죽음은 마치 주변의 사람이 죽은 것처럼 내면화하고 개인화한다는...” 국민들에게 노무현은 촛불 대통령으로 기억됩니다. <녹취> “탄핵 무효!!!” 국민들은 스스로 밝힌 촛불로 대통령을 지켜냈고 그후 다시 촛불을 밝혀 떠나보냈습니다. 지켜주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인터뷰> 김미진(부산 동래구) : “죄송하다는 것, 그리고 감사하다는 것..." <인터뷰> 황연승(부산 사직동) : “어쩌면 저도 비겁하게 물러서 있지 않았나 자책감이 너무 심하게 들고, 그게 지금도 제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가장 훌륭항 대통령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대통령을 잃은 슬픔은 분노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5살 어린아이의 촛불을 가로막는 경찰. 광장의 추모를 원한 시민들은 끝내 이를 막아선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김미경(서울 창동) : “이 슬픔속에서 국민들이 데모를 하겠어요? 단지 할 수있는 저항은 촛불밖에 없는데 촛불이 뭐가 그렇게 무섭습니까?” <인터뷰> 최상호(서울 논현동) : “말도 안되는 거죠 이 사람들이 데모하려고 모인것도 폭도들도 아닌데 이건 좀 너무 심하죠...” 광장은 결국 마지막 날에서야 열렸습니다. <인터뷰> 황상민(연세대 교수) : “이 놀라운 추모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지만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분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내지는 좌절감이 그대로 표현된거라고 할 수 있죠.” 편안함을 마다하고 가슴이 시키는 가시밭길을 걸었던 바보 정치인, 살아생전 유난히 많은 눈물을 보였던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바보' 대통령은 국민들의 가슴속에 소탈한 기억과 못다한 꿈을 남기고, 눈물 속에 먼 길을 떠났습니다. <녹취>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