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좀 주세요”…병원에서 손쉽게 마약을 구한다?_포커 데크 크기 상자_krvip

“진통제 좀 주세요”…병원에서 손쉽게 마약을 구한다?_포커로 돌아가_krvip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병원에서 처방받은 의료용 마약류를 해외로 밀수출한 미국인 남성 이야기를 지난 24일 뉴스로 전해드렸습니다.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옥시코돈, 펜타닐 등을 처방받아 외국으로 내다 팔고 12억여 원을 챙긴 외국인 남성 이야기인데요. 이 남성은 결국 경찰에 붙잡혀 구속되었습니다.


■ 마약 구하기가 그렇게 쉬워?

옥시코돈과 펜타닐은 보통 진통제로 많이 쓰이는 의료용 마약류입니다. 펜타닐은 진통제 중 널리 알려진 모르핀보다 80배 이상 강한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암 환자가 진통제로 많이 쓰는데, 그 효과가 얼마나 강력한지 "저승사자가 눈에 보인다"는 사용 후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엄격히 관리되어야 할 이 의료용 마약류를 미국인 남성 A 씨는 어렵지 않게 구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우선 국내 병·의원을 돌며 "허리가 아프다"는 말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았습니다. 외국인 등록번호를 제시하지 않고 단기체류자라고 속여 생년월일만으로 약을 처방받거나, 병원마다 이름을 조금씩 바꿔가며 처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를 들어 제 이름이 박진수인데, 어디선 성이 ‘진’, 이름이 ‘수’인 ‘진 수’, 다른 곳에선 ‘박 진’이 되는 식이었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의료보험접수를 하지 않고 일반접수를 하는 등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 5년 동안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아….

경찰은 A 씨가 의료용 마약류를 밀수출한다는 첩보는 미국 국토안보수사국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최소 다섯 군데를 돌며 한 곳에서 한 번에 1달 치씩 대량으로 비슷한 약을 처방받았는데, 5년이라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사실이 적발되지 않은 겁니다.

저희 취재진은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5년 동안 많은 병원을 돌아다니며 비슷한 마약류를 처방받았는데, 한 번도 걸리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관리 당국은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이나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해 약물 중복처방이나 과다처방 등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 여행객 등 단기체류자라고 할지라도 기본적인 인적사항은 확인하고 처방을 할 수 있게 되어있죠.

문제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리 당국이 쳐놓은 그물을 쉽게 피해 나갈 구멍이 있다는 게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와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을 비켜 간 A 씨의 묘수?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는 의약품 처방·조제 시 함께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거나 중복되는 약 등 의약품 안전성과 관련된 정보를 의사와 약사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해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사전에 점검하는 서비스입니다. 일반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한 우리 국민이라면 A 씨처럼 비슷한 마약류 진통제를 대량으로 처방받지 못했겠죠.

하지만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이 서비스를 받지 못합니다. 또 비급여 의약품의 경우 점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A 씨가 이름을 바꿔가면서 약을 처방받거나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않고 신분을 숨긴 채 약을 처방받았기 때문에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의 눈을 비켜갈 수 있었던 셈이죠.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은 마약류 취급자 또는 마약류 취급승인자가 수출입, 제조, 판매, 구매, 사용, 폐기, 조제, 투약할 때 사용한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의 취급정보에 관한 사항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입니다.

병·의원에서 A 씨에게 처방한 펜타닐패치와 옥시코돈 역시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식약처 또한 허위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아 밀수출한 A 씨의 행태를 막지 못했습니다.

보통 병원이나 약국에서 마약류를 제공한 이후에, 그 결과를 식약처로 통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처방받는 사람을 막을 길은 없는 셈이죠. 또 A 씨처럼 환자 정보가 허위로 기재되어도 역시 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어느 것도 A 씨의 일탈을 눈치채지 못한 셈입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 병원과 관리 당국의 마약류 관리 체계 '구멍 숭숭'.. 재점검 필요

지금도 국내 단기 체류 중인 외국인이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으려면 여권 등을 통한 신원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박 진수’를 ‘진 수’라고만 써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처방을 해주는 식입니다. 이렇게 쉽게 뚫리는 감독체계라는 게 일반적인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A 씨에게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해준 병원들이 확인을 제대로 했는지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경찰은 식약처 등과 협조해 병원에서 일부러 허위·과다 처방을 해준 것은 아닌지 조사할 예정입니다.

병원도 아프다고 찾아온 환자를 마약 밀수출업자가 아닐지 의심부터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마약류 관리는 전반적으로 재점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