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한 YS…“등산화 밑창만 수선해 20년 신어”_포커 메크로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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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산악회 시절 송림수제화를 신고 산에 오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 [사진 김영삼민주센터 제공]
서울 을지로 3가 구석의 한 건물 3층에 있는 송림수제화 임명형(52) 사장은 1993년 초 말끔한 양복 차림의 청와대 직원이 들고 온 짙은 갈색 수제 등산화를 받아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등산화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중반 이곳에서 구입한 이후 민주산악회 산행에서도, 가택연금을 당해 상도동 집 정원을 서성일 때도 같이 한 YS 정치인생의 동반자와 같은 신발이었다. 그런데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20여년 만에 이 등산화의 애프터서비스(AS)를 맡긴 것이다. 임 사장은 "청와대에서 왔다고 하기에 '높으신 그분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더라고요"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등산화를 만든 송림수제화의 임명형 사장
등산화는 매우 닳아 밑창의 요철이 완전히 없어지다시피한 상태였다고 한다. "우리 등산화는 30년을 넘게 신어도 밑창만 바꾸면 또 신을 수 있어요. 그래도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밑창이 닳으면 새 신발을 맞추는 게 대부분이죠." 당시 임 사장도 높으신 분이니 새 등산화를 맞춰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직원은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무조건 AS만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완고하게 밑창 수선만을 고집했다고 임 사장은 전했다. 임 사장은 "그 정도로 낡은 등산화를 또 창갈이해서 신는 분이 또 어디 있겠나 싶어요. 몇십년 동안 그렇게 신었다면 아주 검소하신 거죠. 등산을 좋아하셨으니까 아마 그 등산화에 정도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송림수제화는 1936년 문을 연 이후 80여년간 등산화와 구두를 만들어온 한국 수제화의 '명가'다. 하지만 사무실에는 유명인과 찍은 사진이 한 장도 걸려 있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받은 표창장 10여장만 벽 한쪽에 줄지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진외종조부(아버지의 외삼촌)인 고 이귀석씨, 아버지 고 임효성씨에 이어 임명형 사장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틈틈이 일을 돕다가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 밑에서 제화 일을 시작했고 이후 한 길만 걸었다. YS를 비롯해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임 사장 부자의 손을 거친 등산화를 신고 산에 올랐다고 한다. 민주산악회의 기념사진을 보면 YS가 이 갈색 등산화를 신은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민주산악회를 이끌고 산에 올라 구호를 외치는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 김영삼민주센터 제공]
이 등산화는 YS가 1980년부터 3년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던 시절 그의 벗이 되기도 했다. 임 사장은 "아버지가 당시에 YS 쪽 사람한테서 들었는데 산에 못 가니까 우리 등산화를 신고 정원을 계속 산책하셨다는 겁니다. 등산화의 거친 밑창으로 끊임없이 걷다 보니 잔디가 다 죽어버릴 정도였대요"라고 전했다. 한국의 민주화를 이룬 큰 별이었으나 임 사장에게 YS는 검소함으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 손님일 뿐이다. 임사장은 "등산화가 대통령의 건강에 도움은 된 것 같다"면서 "고인의 물품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우리 등산화도 그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그 등산화가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김영삼민주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YS는 송림등산화를 포함해 여러 켤레의 등산화를 갖고 있었지만 지인에게 나눠주거나 기증해 지금 남은 것은 코오롱 등산화 하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