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번 없이 6·25 참전한 호국영웅 전순돌 씨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_카지노 살인 게임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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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번 없는 비군인 신분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18살에 숨진 호국영웅이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007년 경남 함양군 백연리 일대에서 발굴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국민방위군 소속 고 전순돌 씨로 확인해 고인의 유해를 유족에게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민방위군은 1950년 12월 통과된 '국민방위군설치법'에 따라 만 17∼40세의 제2국민병으로 구성된 군사조직으로 비군인으로 분류됩니다.

국유단은 2006년 6월 주민 제보로 고인의 유해를 수습했지만, 국민방위군의 경우 군번이 부여되지 않고 병적기록도 남아있지 않아 신원확인이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전사 기록과 위패 현황을 보고 유가족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탐문해 2021년 11월 고인의 남동생인 순복 씨를 찾았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고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32년 11월 태어난 고 전순돌 씨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방위군에 입대해 14단 4지대 소속으로 배치됐습니다. 이후 지리산 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돼 북한군을 소탕하던 중 1950년 12월 27일 18세의 나이로 전사했습니다.

지리산 지구 공비토벌 작전은 1950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 30일까지 경남 산청군·함양군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1천750여명의 공비를 소탕하고자 약 10회에 걸쳐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고인의 유해를 유족에게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전날 서울 중랑구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습니다. 고인의 제수 김종희 씨는 "얼굴을 본 적 없지만 혈육이 살아온 것 같이 실감 난다"며 "전사자 형님이 좋은 데 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았는데 그 덕에 유해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2000년 4월 유해 발굴이 시작된 후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총 225명으로 늘었습니다. 이 가운데 국민방위군은 8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