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묘지에 위패까지 안치돼 있던 전사자 생환_바르셀로나의 카지노 호텔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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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정 앵커 :

참전당시의 조창호씨는 연세대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조국은 그가 전사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국립묘지에는 그의 위패까지 안치돼 있었습니다. 꿈 많던 한 청년의 삶은 전쟁으로 망가졌지만은 그래도 그는 조국에 돌아왔으니 여한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의철 기자의 보도 입니다.


김의철 기자 :

꿈 많고 욕심 많았던 고교시절의 청년 조창호. 연세대 교육학과 1학년 조창호. 당시 학적부에는 이만석 전 국회의장의 이름도 눈에 뜁니다. 그러나 우리민족 최대의 비극 한국전쟁은 이 전대양양한 한 청년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놨습니다. 청년은 주저없이 자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국통일이라는 자신의 꿈이 실현되기도 전에 중공군의 포로가 됐습니다. 이후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유일한 희망을 안고, 40여년 동안 수용소와 탄광둥지 등을 떠돌 때 그는 이미 남한에서는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국립묘지 패 봉안관, 군번 212,366번 조창호 소위는 이미 지난 51년9월 전사했으며 중위로 추서돼 있습니다. 숨진 것으로 기록된 조씨는 상할 대로 상한 몸과 기억을 이끌고 43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들은 그를 반겼고 조국도 놀랄 만큼 발전 했습니다. 그러나 분단과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으면서 그의 삶은 이미 황혼이 됐고, 젊을 때의 꿈은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조창호 :

내가 물질... 내가 서울서 자라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성묘도 가고, 그 다음엔 아무 것도 바랄게 없습니다.


김의철 기자 :

그러나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지나간 40여년의 세월에 대한 원망을 삭일 수가 없습니다.

KBS 뉴스, 김의철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