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비 수억 원 드릴게요” 민간 개발 현장 탈세 횡행_빙아이 이미지 크리에이터_krvip

“이주비 수억 원 드릴게요” 민간 개발 현장 탈세 횡행_오늘 축구 베팅_krvip

대구시 북구 고성동 일대 신축 아파트 건설 사업 현장.
부동산을 사고팔 때 실제 거래 가격보다 금액을 낮춰 쓰는 이른바 '다운계약서', 들어보셨을 겁니다. 세금을 덜 내려고 하는 건데,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되는 불법 행위인데요. 전국에서 가장 부동산 열기가 높았던 대구에서, 민간 아파트를 개발하려고 토지나 주택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이러한 불법 다운 계약이 횡행했다는 업계 관계자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 신고 거래가는 같은데 … 실거래에 '이주비' 명목 수억 원씩 더 받고 탈세

2024년 입주를 앞두고 있는 대구시 북구 고성동 한 아파트 개발 현장.

2년 전, 사업 시행사는 사업 구역에 포함된 주택 100여 채와 아파트 2개 동, 30여 가구를 사들였습니다. KBS는 이 중 아파트 2개 동이 세대별로 얼마에 팔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전용면적 84㎡의 30여 가구가 2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3억 5천만 원에 팔린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거래가를 다 같이 맞춘 듯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부동산 매입을 맡았던 담당자 A 씨의 말은 달랐습니다. 같은 규모지만, 4억 원부터 최대 7억 원까지 세대별로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는 겁니다. A 씨는 대구 고성동 일대에서 지주들과 집주인을 설득해 시행사에 땅과 토지를 팔도록 만드는 이른바 '지주 작업'을 수년 간 해온 부동산 매입 용역회사 관계자입니다.

KBS는 A 씨에게서 아파트 3개 가구의 부동산 매매 관련 계약서를 입수했습니다. 한 가구는 우선 2019년 부동산 매입 용역회사와 먼저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매매 대금은 6억 원. 1년 뒤 시행사와 쓴 매매 계약서에는 매매 대금이 3억 5천만 원으로 줄어듭니다. 신고한 실거래가와 같습니다. 그런데 서류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이주비 명목으로 2억 5천만 원을 지급한다는 '명도 확약서'입니다. 즉, 이면계약서상 실 매매대금과 신고된 매매 대금과의 차액을 이주비로 지급한 겁니다.

세무 전문가에게 3개 가구가 대략 세금을 얼마나 덜 냈을지 계산을 부탁했습니다. 등기부 등본을 통해 세대별 취득가 액을 파악한 뒤, 신고 매매대금과 실제 매매대금을 비교해 양도차익을 확인하고 각 양도소득세를 추정했습니다. 일반적인 필요경비 등을 반영해 살펴본 결과, 세대별로 최소 5천6백만 원에서 1억 원이 넘는 세금을 덜 낸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해당 사업구역에서만 수십억 원이 넘는 탈세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세무사(차길녕)를 통해 추정한 추정 양도소득세.
■ 서둘러 사업부지 확보가 관건, "민간 개발은 다 그래요"

대구 한 개발 사업 예정 구역인 노후 주택가.
문제는 이처럼 다운계약서를 쓰는 행위가 민간 개발 현장에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빠른 개발을 원하는 사업자와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지주들 사이 이익이 맞아떨어진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민간 아파트를 지으려면, 사업구역 내 토지 95% 이상을 확보해야만 사업 승인과 PF 대출 등 자금 조달이 가능합니다. 사업 시행자들이 높은 경비에도 불구하고 지주들에게 매매 대금 외에 이주비 명목으로 수억 원씩을 더 주겠다고 회유하는 이유입니다.

A씨/ 부동산 매입 담당자
"저희가 (지주) 작업할 때만 해도 괜찮았어요. 지금처럼 분양률이 떨어지고 미분양 많이 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년, 내후년까지 대구에 (분양물량) 6만 가구 쏟아진다는데 그 전에 빨리할 수밖에 없잖아요. 시간 끌면 이자만 더 나오니까. 지주들이 원하는 가격에 살 수밖에 없고, '좀 빼줘. 이주비로 빼주면 되잖아. 걸리면 세금 낼게(해요).' 안 걸리면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이런 식이 민간개발은 거의 다예요. 그리고 서로 얼마에 팔고 나갔는지 모르니까 보상가는 천차만별인 거지요."


주택 ·토지 매수 과정에서 체결된 ‘이주비 요청 및 명도 확약서’
하지만 세무당국은 이런 불법 행위에 속수무책입니다. 통상 개발 예정 사업구역 내 매매가는 시세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데, 매매금액 신고는 주변 시세에 맞춰서 하고 나머지는 이주비 명목으로 따로 더 지급하는 수법 탓에 다운 계약인지 눈치채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여기에다 시행사와 지주들이 실매매가에 대해 '비밀유지 계약'을 하면서 서로 간에 불법을 더 공고하게 하고 있습니다.

구본덕 / 부동산 전문 변호사
"개발 사업을 진행할 때 통상 시세보다 훨씬 높게 매매 대금을 책정합니다. 또, 보통 매매 계약서 작성할 때 두 사람(시행사-지주) 간 '비밀유지 계약'을 하게 됩니다. 금액에 대해서 외부에 발설할 경우, 위약금이나 손해를 배상한다는 규정을 해서 양자 외에는 알 수 없고, 내부 고발이 없는 이상 세무당국에서도 시세에 맞춰 금액 신고가 되기 때문에 알기 어렵습니다. 통상 시세보다 낮춰 신고되면 탈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시세와 비슷하거나 더 높게 신고해서 적발하기 힘들다는 거죠."

이처럼 수억 원의 웃돈을 붙여 땅과 주택을 사들이는 행위는 아파트 분양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일반 분양 입주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됩니다.

이병홍 / 대구과학대 금융부동산과 교수
"시행사와 지주가 서로 이익을 위해서 이런 편법 계약이 이뤄지지만 사실 이는 땅값을 상승시키고 최근 건축비 상승에 보태져서 분양가를 아주 올릴 수 있는, 결과론적으로 대구시민 전체에 부동산 가격,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폐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는 이주비 제공을 금지하도록 법이 바뀌었습니다. 최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은 "이사비, 이주비, 이주촉진비 및 그 밖에 시공과 관련 없는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민간 개발 사업에는 이 같은 규제가 없어 이주비를 이용한 탈세가 횡행하는 겁니다. 구본덕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민간이 주도하는 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과도한 이주비 또는 이사비 명목으로 돈을 지급할 경우 이를 금지하거나 금액을 토지 금액의 몇 % 이내로 제한하는 그런 부분을 (주택법에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쏟아지는 민간 아파트 개발사업 속에서 불법 탈세와 분양가 상승이 횡행하지 않도록 세무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