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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보시는 건 5.18 당시 시민들이 마지막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입니다.

광주 시민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구름같이 모였습니다.

함께여서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일상은 차츰 회복됐고, 분수대엔 다시 물이 솟아올랐지만. 그날의 기억... 생생합니다.

특히 5·18 당시​계엄군은 광주를 봉쇄하면서 시민들을 철저히 고립시켰습니다.

시내 뿐 아니라 외곽에서도 민간인 사상자들이 나왔는데 외곽을 차단하는 군의 작전 지침은 사실상 발포 명령이었습니다.

윤주성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이후 계엄군은 광주와 외부를 잇는 도로를 모두 차단합니다.

이 때 내려진 작전 지침, '반항하지 않으면 체포하고 반항하면 사살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날 저녁 광주 시내에 일을 보러 나왔던 고규석 씨 등 전남 담양 주민 4명은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다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았습니다.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승을/옛 광주교도소 근처 총격 생존자 : "무조건 차에다 이유도 없이 쏴버리니까 그냥 아무 딸싹 못하죠. 차가 어디 도망도 못 가고. 일단 확인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전남 화순으로 나가는 광주시 외곽 도로 근처에서도 무차별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총소리에 놀라 주민들을 대피시키던 통장 선종철 씨도 마을 입구에서 얼굴에 총탄을 맞고 숨졌습니다.

[정수만/전 5·18민주유족회 회장 : "이쪽 동네가 용산마을이거든요? 용산마을에서 그때 통장하던 선종철 씨가 여기서 돌아가셨거든요."]

광주 외곽 지역에서 희생된 사망자만 52명,

당시 계엄군의 작전 지침에는 반항할 경우 발포하라고 돼 있지만, 현실에서는 반항 여부나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총격이 가해졌습니다.

[노영기/전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관/조선대 교수 : "자위권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위협을 받아야 발동하는 건데 그 당시에는 그냥 지나다니는 것 자체가 다 적인거죠."]

누가, 왜 총을 쏘았는지 아직도 알 수 없는 희생자와 그 유가족...

과연 누가 대답해야 할지 군의 외곽 봉쇄 지침은 그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윤주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