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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청년으로 남은 22살 전태일 열사. 그가 산화한 지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50년 전의 외침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1970년대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 시간 제한도 야간·휴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없이 무제한 노동이 가능합니다.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 하청업체 노동자, 프리랜서들은 고용 불안과 초과 노동에 시달리면서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합니다. 2020년에도 이 시대의 전태일들은 묵묵히 견디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1970년대 서울 평화시장의 봉제 노동자들은 허리조차 펴기 힘든 좁고 어두운 다락에서 일했습니다. 하루 15시간 넘게 쪼그리고 앉아 재봉틀을 돌렸고 한 달에 하루 이틀 정도만 쉬었습니다. 근로계약서 없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봉제 노동자들의 현실이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 "다 오르는데 우리 공임만 제자리"…봉제 노동 현실은 그대로

20년째 봉제 노동을 하고 있는 김용희 씨는 "공장세 올라가지, 실값 올라가지, 다 올라가는데 우리 공임은 20년째 똑같다"고 말합니다. 다락은 벗어났지만, 근로계약서 없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그대로인 겁니다. 바쁠 때는 오전 6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합니다.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일하는 봉제 노동자들은 근육통과 디스크에 시달리지만, 일감이 있을 때는 어떻게든 버티며 한 장이라도 더 만들어 냅니다. 일이 없어 수입이 없을 때, 자신들을 보호해 줄 제도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퇴직금도 없어서 70살이 넘어서도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봉제 노동자들은 여전히 '유령 노동자'입니다. 이정기 민주노총 서울봉제지회장은 "내가 어디서 일을 했고 수입이 얼마나 감소했는지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봉제 노동 현장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는 각종 지원책에서도 빠져있다"고 말합니다. 봉제 노동자의 경력을 증명할 방법은 서류가 아닌 주변 사람과 동료들의 증언뿐입니다.


■ 산재보험 없는 길 위의 무방비 노동…"근로기준법 적용 외쳐야 할 때"

'한 장이라도 더'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봉제 노동자들처럼 라이더들은 '한 콜이라도 더'라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콜 하나하나가 수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밥 먹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포기했습니다. 이들에게 휴일은 수입 하락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오토바이와 함께 매일 도로로 나갑니다. 8년째 라이더 일을 하고 있는 A 씨는 "며칠 쉬는 건 꿈도 못 꾸고 일 년에 삼사일 정도 쉰다"며 "독한 분들은 10시간, 12시간 내내 식사도 안 하고 배달을 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며 플랫폼 배달업은 사회를 떠받치는 필수 업종이 됐습니다. 자연스레 수많은 라이더가 생겨났습니다. 특수고용직(특고직)인 이들은 합법적으로 4대 보험도 퇴직금도 없는 노동자들입니다. 배달하며 사고 위험에 늘 노출되지만, 일부 업주들은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까지 내밉니다. 서명을 하면 병원비도 오토바이 수리비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지만 거부할 방법이 없습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근로기준법을 회피하기 위해서 특고직, 플랫폼 노동자가 탄생하면서 야간에 노동하는 것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고, 최저임금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고, 해고도 앱 접속을 막는 것으로 쉽게 이뤄지는 시대가 됐다"며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면 지금은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고 주장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기존의 사회 제도가 보호할 수 없는 새로운 노동 유형에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조차 없는 게 현실입니다.

■ "방호복 입는 순간부터 땀 뚝뚝"…두려움 속의 노동 'K방역의 그늘'

코로나19 시대의 또 다른 노동 사각지대는 병원에 있습니다. 코로나19 병동과 의료폐기물을 치우는 청소 노동자들도 의료진과 마찬가지로 방호복을 입은 채 감염과 싸우고 있지만, 인력 충원과 휴게 공간 확보, 위험수당은 기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코로나19 병동 청소 노동자 B 씨는 "처음에는 다들 들어가길 꺼려서 지원을 받았는데 3월부터는 지원 가지고 될 일이 아니어서 순번대로 들어갔다"며 방호복을 입던 첫날 "겁이 났다"고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매일 하던 청소도 쉽지 않았습니다. B 씨는 "일반 병실과 달리 모든 청소용품이 일회용이기 때문에 의료 폐기물이 많이 나오는 것도 힘들고 무엇보다 방호복을 입는 순간부터 땀이 쏟아져 괴로웠다"고 말했습니다. 격일로 일했지만 노동 강도가 워낙 높아 배려를 받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력 충원도 없어서 마음 편히 쉴 수도 없었습니다.

코로나19 병동의 의료 폐기물을 치웠던 청소 노동자 C 씨는 "병동 통로가 막혀 그나마 있던 휴게실에 가려면 멀리 돌아가야 한다"며 휴식 시간은 쓰레기 수거지에서 보낸다고 말했습니다. 의료진과 마찬가지로 감염의 공포와 싸우고 있지만 급여는 최저임금에 딱 맞춘 금액인 데다 위험수당도 없습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주6일 근무를 해온 C 씨는 "가족과 주말을 인간답게 보내고 싶다"며 "환경 개선과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 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반세기 뒤 오늘, 이 시대의 전태일들이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