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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주인이 던진 볏짚을 먹기 위해 돼지들이 몰려듭니다.

볏짚을 그냥 주기도 하고, 현미식초 등으로 발효시켜서 먹이기도 합니다.

봄과 여름에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야생 풀들을 먹이로 줍니다.

<녹취> 김정호 : "전적으로 농사를 짓고 남은 농사 부산물을 주요 원료로 해서, 조금 모자라면 곡물을 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될 수 있는 한 곡물을 사지 않고 농사 부산물을 가지고 먹이고 있죠."

한참을 먹더니 한두 마리씩 우리를 빠져나갑니다.

<녹취> "볏짚 먹고 목마르면 다시 물 먹으러 여기까지 오는 거죠. 그러니까 운동을 하고 싶지 않아도 운동을 하게끔..."

올해 쉰세 살인 김정호 씨는 지난 20년 세월을 돼지와 함께 보냈습니다.

인공수정이나 배합사료와 같은 현대 축산 방식 대신, 생태 친화적으로 토종 돼지를 기르는 실험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방역 당국으로부터 매몰 처리 통보를 받았습니다.

인근에 있는 다른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기 때문에, 예방을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건강한 돼지들까지도 죽여야 한다는 겁니다.

<녹취> "(아까우시겠어요?) 그건 그렇게 표현이 안 돼요. 내 인생이 절단나는 거예요."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곱살 어미 돼지는 새끼를 출산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녹취> "무척 예민해져 있어요. 지금. 이제 지금 새끼 낳으려고 막 모으는 거예요, 볏짚을. 오늘 밤에 아마 출산을 할 거예요."

이 돼지들은 지난 목요일 모두 매몰 처리됐습니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 50일이 됐습니다.

초기에 매몰 처리 위주였던 방역 대책은 이제 전국적인 백신 접종으로 확대됐습니다.

벌써 15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매몰 처리 되면서 축산기반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면초가의 어려움에 갇힌 구제역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정부임 씨는 정성 들여 키우던 소 120마리를 모두 잃었습니다.

태어난지 사흘 밖에 안 된 송아지까지 모두 죽여야 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 정부임 : 자기 새끼 찾느라고 울어, 엄마 소가 울어. 그리고 엄마소가 새끼를 자기 다리 사이에 넣어놓고 안 내놔. 자기 품 안에 넣어놓고 안 내놓는 거야."

이 소들 역시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구제역 오염 지역에 들렀던 차량이 이 농장에 방문했었다는 이유로 예방 차원에서 모두 매몰 처리됐습니다.

<녹취> "전부 다 내 손으로 받은건데...다 크지도 않았는데..."

지난해 11월 28일 구제역이 발생한 뒤 지금까지 150만 마리에 가까운 소와 돼지가 매몰 처리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소 가운데 약 4%, 돼지는 약 14%가 사라졌습니다.

3천6백여 농가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 농가에서 구제역이 확인되면 반경 500미터, 때로는 3킬로미터 이내의 가축도 함께 매몰 처리를 하기 때문에, 감염되지 않은 가축들도 상당수가 묻혔습니다.

<인터뷰> 유한상(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 "주위에 있는 숙주 동물을 빨리 살처분 하지 않으면, 숙주를 제거해주지 않으면 언제 전파가 될지 모르는 질병입니다. 그래서 빠른 시기에 매몰해서 감수성 있는 숙주 동물을 제거해 줘야 됩니다."

인근 가축까지 땅에 묻는 예방적 매몰 처리는 영국과 같은 축산 선진국에서도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부작용 역시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얗게 눈이 내린 시골 마을 가운데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이 눈에 띕니다.

최근 가축을 매몰한 곳입니다.

메탄가스를 방출하기 위한 파이프가 묘비처럼 서있습니다.

동네 곳곳에 동물의 공동묘지가 들어선 셈입니다.

농가에서는 돼지들이 축사 밖으로 나옵니다.

바깥 공기를 쐬는 것도 잠시, 모두 매몰 처리 됩니다.

안락사 약물이 부족해서 돼지들이 산 채로 매몰되다 보니 발버둥에 못 이겨 비닐이 찢어지고 침출수가 유출됩니다.

너무 많은 가축의 희생은 물론, 땅과 물의 오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방역 대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들판에 가축을 풀어놓고 풀을 뜯어먹게 하는 방목형 축산에서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주로 가축과 가축의 접촉을 통해 전파됩니다.

때문에 가축이 돌아다니는 반경 500미터 이내에서 매몰 처리를 실시하는 게 정석이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축산 농가는 사료를 배달하거나 분뇨를 치우는 차량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구좁니다.

때문에 감염 지역이 넓어지면서 매몰 처리 지역도 그만큼 광범위해집니다.

<인터뷰> 박봉균(서울대 교수) : "실제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자연 방목 형태의 축산을 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역대의 설정방법, 500미터, 3킬로미터, 10킬로미터, 20킬로미터로 이렇게 정하는 방법이 자연방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축산 산업의 인프라를 기준으로 재구성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몰 처리만으로는 역부족을 느끼자 정부는 전국적인 백신 접종을 시작했습니다.

선제적인 백신접종을 통해 구제역의 추가확산을 막고, 매몰 처리를 최소화 하겠다는 것입니다.

구제역을 피해갈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던 농가들은 백신 접종을 크게 반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종원 : "백신 쓴다는 걸 뉴스에서 봤나봐요. 아빠, 우리는 언제, 몇번째야? 딸도 걱정을 하면서 백신 쓰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물론 우리 축산 농가도 더욱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죠."

그러나 부정적인 견해도 많습니다.

백신을 접종하면 일정 기간 동안 가축 출하가 금지되기 때문에 이제 눈 앞에 다가온 설 대목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소의 경우 백신을 접종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 소비자들까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섭니다.

<인터뷰> 남호경(한우협회 회장) : "지금 살처분 정책은 현실가 보상을 다 해주는데, 백신을 맞은 농가는 이동제한이나 여러 가지 경제적 악조건이 상당히 있다, 이력제가 되가지고 그게 낙인이 찍혀있는데 그걸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사게 되면 판매 차익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보전을 확실히 해줄 수 있는 것이냐..."

백신 접종에 대한 또 다른 우려는 국제 교역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구제역 백신을 접종한 소가 살아있으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남아있는 것으로 간주돼 청정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동남아와 같은 구제역 상시 발생국들에 대해서 구제역을 이유로 수입을 막아왔지만, 이제 이들 국가가 같은 상황임을 들어 우리에게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해올 수 있습니다.

<인터뷰> 정민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 "구제역이 계속 확산됨에 따라서 일본도 결국은 지역 백신 또는 링백신 정책을 실시했는데요. 일본도 청정국 지위를 조기에 회복하기 위해서 백신을 투여하고 난 이후에 살처분 정책을 동시에 실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 단계에서는 백신을 맞은 가축은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방역 당국이 백신 접종을 늦게 시작한 이윱니다.

구제역 확산 이후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인터뷰> 이환주 : "일단 이 구제역 바이러스 자체가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게 되면 파괴된다는 걸 제가 알고 있거든요."

<인터뷰> 김수현 : "지금 축산 농가들이 되게 힘들구나, 정부 예산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라는 정도로 생각하지, 우리가 돼지고기를 많이 먹어야겠다 말아야겠다라는 생각까지는 지금 저희들이 크게 하지 않고 있어요."

대부분의 손님들은 이처럼 개의치 않지만, 그래도 구제역이 발병될 때마다 축산농가는 물론 음식점까지 타격을 받는 곳이 생깁니다.

<인터뷰> 이주연(식당 주인) : "예약이 있으셨다가 취소하시는 분들도 생기고, 아무래도 여러가지 어렵고요. 또 수급이 어렵다 보니까 고기값도 많이 오르고 해서 전반적으로는 약간씩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빨리 잡히길 바라야죠."

구제역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고 사람의 위산도 이겨낼 수 없는 것은 물론, 인체에 감염이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인터뷰> 주이석(수의과학검역원) : "구제역 자체가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에 구제역에 걸린 가축에 대해서 동남아 지역 에서는 직접 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구제역에 걸린 가축에 대해서는 매몰처분을 통해서 유통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백신 접종 가축에 대해서는 전혀 구제역 바이러스하고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먹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육류 소비가 위축되지 않도록 해서 축산 농가의 피해를 줄이는 게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축산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 유한상(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 "지금까지의 교육은 생산성 위주의,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생산할까, 이런 것들에 대한 것만 있었지 어떻게 이 동물을 안전하게, 질병으로부터 안전하게 키울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러한 부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축산 농가는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자식처럼 키우던 소와 돼지를 묻은 농민들은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겪고 있습니다.

또한 힘겹게 지켜온 한우 축산의 기반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방역 당국이 총체적인 대책에 나섰지만 이미 뒷북 대처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위기의 축산 농가를 살리는 길은 이제 국민적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