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실은 지옥 같았다”…증언대 선 ‘간첩조작 사건’ 유가려 씨_베타 서른은 마실 수 있다_krvip

“조사실은 지옥 같았다”…증언대 선 ‘간첩조작 사건’ 유가려 씨_가려움증으로 인한 베타 알라닌_krvip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와 유가려 씨 남매가 어제(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재판장 송승훈) 심리로 열린 현직 국정원 직원 유 모 씨와 박 모 씨의 재판에 출석했습니다.

유 씨와 박 씨는 2012년 유가려 씨에게 가혹행위를 해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진술을 받아내고, 유우성 씨의 재판에서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위증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증인석에 앉은 건 가혹행위를 당한 당사자 유가려 씨였습니다. 법정에 들어오기 전 심장이 너무 떨려서 약까지 먹고 왔다는 유 씨는, 증언 도중 가쁜 숨을 몰아쉬거나 고개를 묻고 흐느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8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수도 없이 피해 사실을 증언해왔지만, 유 씨는 여전히 "옛날 생각을 하면 피가 끓는다"고 말했습니다.

■ "조사실은 지옥 같았다"…유가려 씨가 증언한 8년 전 그날

유 씨는 조사실이 마치 '지옥'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조사실에 들어가면 공포스럽고 무서워서 손과 발이 항상 떨렸다"며 "너무 맞아서 조사관님들이 원하는 대로 해야 나갈 수 있다고 하니까 다 맞춰줬다"는 겁니다. 조사관들의 유도신문에 그대로 응했고, 사실이 아닌 내용까지 진술서로 남겼다고 유 씨는 증언했습니다.

당했던 폭력의 내용도 다양했습니다. 우선 플라스틱 물병이나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벽에 찧거나 발로 허벅지를 차는 등 물리적인 폭행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질긴 X' 등의 욕설을 하거나 '전기고문'을 언급하며 협박한 일도 얘기했습니다.

특히 유 씨가 눈물을 많이 흘린 대목은 공개적인 모욕을 당했던 상황을 설명할 때였습니다. 조사관 박 씨가 A4용지 반절 크기의 종이에 '회령 화교 유가리'라고 쓴 다음 이를 유 씨의 배와 등에 붙이고 센터 숙소동 건물 앞에 세워뒀다는 겁니다.

유 씨는 당시 박 씨가 "탈북자로 가장해 들어온 나쁜 X이다. 얼굴 보세요. 구경하세요."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큰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잘못했다고 사정했지만 "망신을 주겠다", "혼내주겠다"며 건물에 있던 모든 사람을 불러냈다고도 했습니다.

매일 가혹한 조사를 받고 허위진술을 강요당하는 게 너무 괴로워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유 씨는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살기가 싫었다"며 화장실에서 벽시계를 깨서 자해하려 했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또 "조사실 화분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릴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 '폭행·협박'은 없었다는 국정원 조사관…"모순 밝히겠다" 예고

여러 차례 감정을 추스르고 2012년 당시 진술서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느라 시간이 늦어지자,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 유 씨를 한 번 더 불러 증인신문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두 조사관 측 변호인은 "유 씨 진술의 모순점을 밝히겠다"며 3시간가량의 강도 높은 반대신문을 예고했습니다.

변호인은 또 유우성 씨와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 판결문에 "조사관들이 유가려 씨를 폭행·협박해 허위진술을 이끌어낸 사실은 증거가 불충분해서 입증이 안 된다고 쓰여 있다"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이어 두 조사관이 과거 '유 씨 진술이 모순되고 신빙성이 높지 않아 수사 필요성이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있다며, 해당 보고서를 국정원에 요청해 받아보고 싶다는 요청도 했습니다. 변호인은 "유우성 씨가 간첩이라는 허위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폭행·협박을 했다는 검사 주장과 상반되는 부분"이라며 "두 조사관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행동한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조사관은 이날 법정과 연결된 구속 피고인 대기실에 들어가 유 씨의 증언내용을 들었습니다. 대기실과 법정을 나누는 문은 열려 있었지만, 그 사이엔 차폐막이 설치됐습니다. 유 씨가 두 조사관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고 요청해 마련된 특별한 조치였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 유우성 씨는 "가족으로서 재판 내용을 듣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어떻게 동생의 힘든 시간을 위로해줄지 잘 모르겠다"며 "지금 이시점에서 차라리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두 조사관의 다음 재판은 내년 3월 19일에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