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영리병원 ‘개설 허가 취소’ 적법…쟁점과 전망_월드컵 빙고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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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제주도  [우]녹지국제병원병상이 50개도 안 되는 제주의 한 국제병원이 영리병원 논란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녹지국제병원 측은 "내국인은 이용 못한다"라는 조건을 달아 허가해준 제주도를 상대로 재량권 남용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이 오늘(20일)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녹지병원 개설허가 취소 처분은 적법"…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은 선고 유예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는 20일 녹지병원 측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제주도가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녹지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한 것은 적법하다고 법원이 판결한 겁니다.

애초 녹지 측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2건입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018년 12월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내국인 진료 금지한다"라는 제한 조건으로 허가를 내줬고, 녹지 측이 병원을 개원하지 않자 3개월 뒤 제주도가 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녹지 측은 '내국인 진료 제한'이라는 개설 조건을 취소하라는 소송 1건과 이에 따른 개설허가 취소도 부당하니 이 역시 취소하라는 소송 1건, 이렇게 2건의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위 2건의 소송 중 '개설허가 취소 소송'에 대해서만 선고를 내렸습니다. 내국인 진료제한 조건과 관련한 소송 선고는 연기했습니다. 이번에 선고한 개설허가 취소 소송이 최종 확정돼야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타당했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분리 선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1심에서 개설 허가 취소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조건부 허가 취소 소송으로 녹지병원 측이 얻을 수 있는 법률적인 이익이 없고, 20일 제주도가 승소했지만, 녹지 측이 항소하거나 대법원까지 가는 과정에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최종 확정이 된 뒤에 판단하겠다고 한 겁니다.

■재판부가 제주도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우선 녹지 측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위법하기 때문에 개설 허가 취소도 위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이뤄지지 않았고요.

두 번째로, 녹지 측은 내국인을 진료하지 못하면 경제성이 없어서 병원 운영이 어렵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내국인 진료 제한으로 경제성이 없고, 이 때문에 병원 운영이 어렵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셋째, 현행 의료법상 병원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녹지 측은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면 진료거부에 따라 형사처벌 위험이 있다고 했는데, 이 역시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녹지병원 측이 개설 허가를 받고 3개월 이내에 업무를 시작해야 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의료법 제64조를 보면, 의료기관은 개설 허가를 받고 3개월 이내에 업무를 해야 하는데요.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하지 않으면 개설허가를 취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녹지 측은 개설 허가가 늦어지면서 채용했던 의료 인력이 이탈했기 때문에 개원이 어려웠다고 주장해 왔는데요.

재판부는 인력이 이탈한 사정이 있더라도, 녹지 측이 병원 개원 준비를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녹지 측은 제주도에서 허가 취소가 아니라 업무 정지도 할 수 있었는데, 허가를 취소 한 건 재량권 남용 아니냐 이런 주장도 했는데, 이 역시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주도에 유리한 고지?…녹지 측 "안타깝고 실망스러워"

우선 제주도 측은 개설 허가 자체가 취소됐기 때문에 7부 능선은 넘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개설허가 조건 취소 소송도 법리적으로 이익이 없어서 각하 되는 게 맞다"라는 입장을 전했고요.

반면 녹지 측은 애초 조건부 허가가 잘못됐는데 재판부에서 이를 판단하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녹지 측 변호인단은 판결문을 받아보고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외국 사법기관을 통해 판단을 받을 수 입장도 내비치면서 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녹지 측이 병원 건물 설립 등에 800억 원 가까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소송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녹지 측이 판결 이후 "녹지병원은 대한민국의 법률과 제주자치정부의 약속을 믿고 엄청난 금액의 투자를 하였으니 그 법과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이 이번 분쟁의 본질"이라며 "상식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제주지법에서 받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실망스럽다"라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녹지 측은 "영리병원을 허용할 것인지 아닌지는 대한민국 법과 제도 정책결정권자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고, 녹지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이는 정책결정권자가 부담하고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며 "제주도나 국민의 뜻이 영리병원을 할 의사를 번복하는 것이라면, 정당한 보상 등 적법절차를 거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지 측은 또, "더구나 내국인 진료금지라는 조건 부가가 가능한 것이냐에 관한 사건의 선고를 추정한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판결로 영리병원을 추진해 온 다른 지역들도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는데요.

영리병원은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인천과 부산 등 경제자유구역 8곳에 설립이 허용돼 있는데, 이번 소송 결과가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영리병원 반대를 외쳐온 시민사회 단체들은 환영 성명을 내고 공공병원 전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특히, 시민사회 단체에서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제주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법에서 영리병원 허용조항을 전면 삭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앞으로도 영리병원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출처]게티이미지 ■영리병원이란?

2018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5.7%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민간병원입니다. 민간병원이 곧 영리병원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의료법상 민간병원 설립 자격은 의사나 비영리법인으로 제한돼 있는데요. 이 병원들은 수입이 발생해도 인건비나 연구비, 설비 투자 등으로만 쓸 수 있습니다. 외부의 투자를 받을 수도, 수익을 외부로 유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영리병원은 이런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투자를 받고 영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거죠.

영리병원 반대 측이 주식회사 병원이라고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진료 자체가 수익에 얽매일 수밖에 없고, 비급여 진료가 늘어날 거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던 거고요. 더 나아가서 의료비 지출 증가는 물론 우리나라 의료보험 체계가 무너지고, 보건의료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란 지적이 있었습니다.

반면 영리병원 찬성 측에서는 일반 산업군처럼 투자나 자본 조달이 높아지면 의료 서비스 품질이 자연스레 올라가고, 특히 제주의 경우 의료 관광 활성화를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의료비가 높아진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정부가 의료 수가를 조정하기 때문에 크게 높아질 일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어떤 결정이 됐든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어서 전국적으로도 이번 판결을 주목해 온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것, 지방자치단체, 의사나 비영리법인만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는데, 영리병원은 어떻게 설립할 수 있었을까요? 외국 기업이 추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녹지국제병원은 중국 녹지그룹이 서귀포시 동홍동과 토평동 일대에 추진하는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의 일부인데요.

제주특별법 307조를 보면,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은 제주도지사 허가를 받아 제주도에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기 때문에 설립이 가능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