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 결정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거시경제의 상·하방 위험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가계부채의 높은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는 것도 금리 동결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결정의 주요 변수로 꼽히는 가계부채는 작년 1∼7월만 해도 월평균 3조4천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작년 8월 초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와 기준금리 인하를 기점으로 증가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다. 작년 8∼11월 가계대출은 월평균 6조8천억원 늘었다.
정부가 연 1%대 저금리의 수익공유형 주택대출을 도입한 상황에서 금리가 추가 인하되면 가계부채가 더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게다가 시장 예상대로 올해 6월께 미국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지금의 저금리 기조를 돌릴 수밖에 없는 외부 압력이 생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자본 유출을 막는 차원에서 미국보다 1∼2% 포인트 정도 높게 금리를 유지해왔다.
◇ "전 세계적 통화완화 기조…한국도 자유롭지 않아"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치로 내려와 있는데도 추가 인하 요구는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최근에는 각국의 통화완화 정책으로 촉발된 '글로벌 환율전쟁'이 한은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에 불을 붙였다.
선진국이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시장에 돈을 풀고, 각국 중앙은행이 깜짝 통화완화 정책을 발표하는 상황에서는 한은도 그에 걸맞은 대책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 방식의 양적완화를 선언하자 스위스·인도·페루·이집트·덴마크·터키·캐나다·러시아가 금리를 낮췄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자국 화폐 가치의 절상을 늦추는 방식으로 통화완화 대열에 합류한 데 이어 중국은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지급준비율을 낮췄다.
각국은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완화정책을 쓰고 있지만 속내는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나라의 경제를 궁핍하게 만들면서 자국의 경기 회복을 꾀하는 이른바 '근린 궁핍화 정책'이다.
그러나 이주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각국이 침체된 경기 회복세를 높이고 디플레이션 압력을 방지하려고 통화완화 정책을 쓴 결과 환율이 영향을 받는 것"이라며 "이를 '환율전쟁'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글로벌 달러 강세 기조에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00원대로 상승(원화 약세)하면서 환율 방어를 위한 기준금리 인하론은 설득력을 잃은 측면도 있다.
◇ 관건은 환율과 1분기 경제지표
전문가들은 국내총생산(GDP) 등 올해 1분기 경제지표와 환율 흐름이 앞으로 기준금리의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수출 경쟁력을 우려해야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 총재는 물론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엔화와 유로화 대비 원화 환율 변화다.
엔화 대비 원화 강세로 대(對) 일본 수출은 지난해 이미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유럽연합(EU)에 대한 수출도 지난달 큰 폭으로 감소했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ECB와 중국, 호주 등이 통화완화를 이어가 원화의 상대적 강세가 심화되거나 경제지표가 부진하면 3∼4월 중 추가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혁수 대신증권 연구원도 "환율 변화가 올해 경제 성장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한은이 추가 금리 인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회복세가 여전히 약하다는 것도 추가 금리 인하론을 이끄는 논리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전쟁에 가담해야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경기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금리를 내려야 한다"며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소비를 촉진하려면 3월에는 인하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다른 시각도 등장하고 있다.
임일섭 우리금융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두 차례의 금리 인하에도 소비와 투자가 반응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부채 증가를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며 "부채를 줄이면서 경기를 살리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부채 총량을 늘어나지 않게 관리하면서 동시에 금리를 내려 경기를 살리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