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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남녀의 얼굴은 앳되고 밝아 보였습니다.

겉보기엔 일반적인 연인의 모습이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은 다른 연인들의 경우와 너무도 다릅니다.

남자는 하루 아침에 번듯한 직장을 잃었고 신변의 위협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습니다. 매일 총성이 들려옵니다. 직장 동료의 다리에는 아직도 총알이 박혀 있습니다. 점점 자라나는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면 앞날이 캄캄합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은신 생활 중인 아프간인 A 씨 부부 이야기입니다.

현지시간 9월 2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근처 풍경. 로이터 영상 캡처
A 씨는 2004년 한국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이 카불에 지은 아프간-한국 직업훈련센터에서, 12년 동안 강사로 일했습니다.

직업 훈련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고, 아프간을 도운 많은 한국인을 아직도 고마운 이들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는 최근 한국 정부가 진행한 아프간인 이송 작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카불에 남았습니다.

직업훈련센터의 운영 주체가 코이카에서 아프간 정부로 넘어간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 기관에 직접 고용된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아 한국대사관의 연락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용관계와 무관하게, 그는 외국과 협력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탈레반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한 지 사흘 째인 어젯밤(한국시간 2일) A 씨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A 씨와 매일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김여정 작가(책 ‘다크투어’ 저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A 씨가 일했던 카불 소재 아프가니스탄-한국 직업훈련센터(AKVTI) 전경. 2018년 samihullah maher 계정 유튜브에 게시된 홍보 영상 캡처.
▷ 상황이 매우 어려운 걸로 압니다. 끼니 등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 저는 지금 집에 숨어 지내며 곤궁함에 처해 있습니다. 전 얼굴을 마스크로 숨긴 채 다녀야 하며, 제 동생과 아버지가 음식을 구하러 (대신) 상점에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저는 아버지와 동생에게 돈을 빌려 생활하고 있습니다.

▷ 카불 현지 상황은 지금 어떤가요? 탈레반이 벌인 일을 목격한 적 있습니까?
-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열고는 있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은행들이 모두 문을 닫아 현금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탈레반은 카불까지 점령해 버렸고 사람들은 계속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이 상황은 마치 악몽 같아서, 자고 일어났을 때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뉴스 보도에도 나오듯 사람들은 탈레반이 청바지를 입고 있는 소년, 소녀를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총격은 불행하게도 일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그들은 우리 직업훈련센터 경비원의 발을 총으로 쏘기도 했습니다. 그 경비원의 다리에는 여전히 총알이 박혀 있습니다. 탈레반은 직업훈련센터 물건들을 훔치고자 애를 썼습니다. 대부분의 장비들은 훈련 목적인데다 옮기기도 어려운 것들이었지만 말입니다.

A 씨 등 직업훈련센터 관계자들에 따르면, 센터를 습격한 탈레반은 정비 훈련용 자동차 25대 가량을 훔쳐갔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조립이 덜 돼 있거나 타이어가 파손돼 있는 등 온전하지 못한 차량도 적지 않았습니다.

▷ 배우자가 임신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 출산일을 기다리며 행복하기도 하지만, 사실 제 아내와 아기를 생각하면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많은 의사들이 (탈레반을 피해) 도망쳤기 때문에, 대다수 병원에는 의사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환자가 믿고 갈 만한 병원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적당한 병원을 찾아낸다 할지라도 실제 그곳까지 가는 일, 그리고 저의 신원을 드러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제 배우자가 수월히 출산할 수 있는 평온하고 안전하며 의지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길 희망합니다.

현재 임신 20주에 접어든 A 씨의 배우자는 올해 23살입니다. 주민등록상 나이는 21살인데, 탈레반 통치기에 태어나 호적 등록이 매우 느리게 진행됐기 때문에 실제 나이와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 한국하면 어떤 것이 떠오릅니까?
- 2013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매우 발전된 나라였습니다. 산업 발전 수준이 세계 10위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인정이 많고 친근했던 곳으로 기억합니다.

같이 일했던 한국인 동료 중 기억나는 사람이 있나요?
- 김 선생님이 기억납니다. 아직 그의 사진도 갖고 있는데, 그는 직업훈련센터의 고문이자 프로젝트 감독이었습니다. 그가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김 선생님이 없었다면 직업훈련센터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에 카불 탈출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8월 초부터 대사관에 이메일과 전화로 계속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내내 회신을 받지 못하다가 8월 20일 처음으로 답이 왔습니다. 대사관 실무관이 이메일로 근로계약서를 보내달라고 해서, 그것 대신에 우리 직업훈련센터의 직원 명부를 보냈습니다. 그 이후엔 대사관 쪽 연락이 끊겼습니다. 전화와 이메일에도 모두 답하지 않았습니다. 김여정 씨의 연락을 받은 8월 25일에야 한국 군 수송기가 일부 아프간 사람들을 탈출시켰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이 부분은 통신 상태 문제로 충분한 답변이 오지 않아, 김여정 작가가 최근 메신저로 A 씨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옮겼음을 밝힙니다.)

A 씨가 8월 20일 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 실무관에게 받은 이메일. 아프가니스탄-한국 직업훈련센터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근로계약서를 보내달라고 돼 있다. 서류를 확인한 뒤 차례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이 메일에 답을 보낸 이후 대사관에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고 A 씨는 말했다.
▷ 한국군 수송기를 타고 카불을 탈출한 아프간인 중 아는 사람이 있나요?
- 네. 2013년 한국에서 직업훈련을 받을 때 만난 바그람 직업훈련원 강사, K씨, N씨, E씨... 그리고 다른 컴퓨터, 건설 과목 강사들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같이 들을 때 촬영했던 사진도 갖고 있습니다.

A 씨에 따르면, 간접 고용을 이유로 탈출 기회를 얻지 못한 한국 관련기관 종사 아프간인은 카불에만 최소 50명 가량 남아 있습니다.

▷ 앞으로 정국은 어떻게 흘러갈 거라고 봅니까? 탈레반 정부가 잘 굴러갈까요?
- 그들의 계획이나 인선, 정책 집행에 달린 문제일 텐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외국의 지지가 없다면 이 정권이 오래 유지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수많은 부패한 고위공직자와 관료, 법률가 등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는 건 그나마 좋은 점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이 이토록 빨리 무너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날을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전쟁이라도 나서 탈레반이 전혀 경험이 없는 민간인들에게 무기를 주면서 나가 싸우라고 한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 같아 우려됩니다.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지난 정부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탈레반을 믿고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할까요. 이렇게 계속 집에만 숨어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금전적인 문제에 맞닥뜨릴 것 같습니다.

▷ 당신의 장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 모든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갖고 살아가고 있겠지만, 저는 성공적인 미래를 원합니다.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요. 열심히 살림을 꾸려 훌륭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이 절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