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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이 일어났습니다"…대학가에 뿌려진 의문의 대자보

최근 서울대학교 게시판에 포스터가 하나 붙었습니다. 이 포스터에는 남성과 여성이 각각 수혈을 받고 있고, 하단에는 "남녀는 갈등하는 존재가 아닙니다"라는 글귀가 하나 적혀있습니다. 얼핏 보면 각종 사건을 두고 성 대결이 벌어지는 사회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포스터 위쪽을 보면 맥락이 조금 달라집니다. <학생 대상 사상 주입 마루타는 이제 그만>이라는 글과 함께 "학생들은 성 왜곡을 조장하고 주입하는 페미니즘을 따르지 않고도, 남녀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서울대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 [출처 : 한국성평화연대 페이스북]
옆에 함께 게시된 대자보를 보면 이 포스터의 의미를 저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대자보 제목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해는 오로지 페미니즘뿐인가"입니다.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임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는 대자보에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해를 할 때 페미니즘이 아니면 여성혐오·백래시(backlash: 반발·반격)·2차 가해 등의 용어로 낙인찍혀 왔다"면서 "정녕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을 행복하게 하는지, 발전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흐르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현재 페미니즘은 남성은 폭력적이고 강간을 일삼는 존재로 묘사하고, 여성은 할당받는 존재이며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반발을 "백래시, 여성혐오, 2차 가해, 성인지 감수성 부족, 젠더감수성 결여라는 그들만의 용어로 입막음 당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포스터를 게시한 단체는 '한국성평화연대'입니다. 페이스북을 보면 서울대뿐만 아니라 중앙대, 세종대, 성균관대, 경희대 등에도 같은 포스터를 배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인증사진을 올리면서 "00대학교에 성평화 포스터 000부를 배포하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평화롭지 않아 보입니다. 서울대학교 익명 SNS에는 이 포스터를 붙이면서 자신들이 붙여 놓은 대자보를 뜯어버렸다는 제보가 올라왔습니다. 또 어떤 포스터는 제자 성추행 의혹을 받는 교수에 대해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하는 대자보와 '강남역 살인사건' 3주기 행사 포스터 바로 위에 붙어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선 '페미니즘'에 관련된 대자보를 덮어버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절도범 현상 수배합니다"…뜯겨 나간 '반성폭력' 대자보

이와 별개의 사건도 소개합니다.

중앙대학교 반성폭력·반성매매모임 '반'은 페이스북에 사진 한 장을 공개했습니다. CCTV를 찍은 이 사진에는 남성들의 뒷모습이 담겼습니다. 사진 속 남성들은 구겨진 무언가를 들고 있습니다.

'반'은 이 남성들이 자신들이 붙여 놓은 대자보를 들고 사라졌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대자보에는 지난 2012년 중앙대학교에서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이후, 총학생회 성평등위원회가 제안한 '학내 성평등 및 반성폭력 문화 확산을 목표로 하는 조직위원회(FOC)' 출범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지난 5월 31일 새벽 중앙대학교 학내에서 대자보를 뜯어 사라진 남성 뒷모습 [출처 : ‘반’ 페이스북]
반 측은 "특수절도에 해당하는 엄연한 범죄"라면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CCTV 등을 토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경찰은 또 대학생 커뮤니티 앱에 "내가 대자보를 찢었다"고 인증 글을 올린 사람에 대해서도 IP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중앙대에서는 앞서 지난 1월부터 '반'의 출범을 알리는 내용의 대자보가 훼손되는 일이 잇달아 발생했습니다. 숙명여대나 성균관대 등 다른 대학에서도 대자보 훼손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학내 게시판은 '미투(#Me Too)' 이후 대학가에도 확산된 '페미니즘' 운동과 이에 대한 반발이 충돌하는 공간이 됐습니다. 대학생 커뮤니티 앱 등 SNS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학내 게시판까지 전선이 확대된 겁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대자보에는 또 다른 대자보로 '다름'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지난 2017년, 연세대학교에선 페미니즘과 관련된 대자보 논쟁이 붙었습니다. '페미니즘 언어에 반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에서 글쓴이는 "잠재적 가해자, 시선 강간, 여성혐오 등의 단어를 쓰지 말자"고 주장했습니다.

맞은 편엔 "갈등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고, 피해 여성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이를 이슈화하려면 정치적 구호가 필요하다"는 반박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어떤 주장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이, 생산적인 논쟁이 아니라 '조롱'과 '훼손'으로 끝나버리는 일부 대학 게시판의 풍경은 요즘 우리 대학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녀 간 성대결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