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 ‘깜깜이 조사’ 이젠 그만”…‘한만호 방지책’ 곧 시행_포키의 탁구 게임_krvip

“재소자 ‘깜깜이 조사’ 이젠 그만”…‘한만호 방지책’ 곧 시행_베투 게데스 지구의 소금 암호_krvip

2010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수사 당시 검찰의 증언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 이와 관련해 당시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섰던 최 모 씨는 지난 4월 법무부에 진정을 냈습니다. 검찰이 자신에게 위증 교사 등 부조리한 행위를 했으니 파헤쳐봐 달라는 내용입니다. 최 씨는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건넨 것으로 지목된 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동료 수감자입니다.

이렇게 의혹을 제기한 사람, 최 씨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한만호 씨의 동료 수감자 한 모 씨도 비슷한 주장을 했는데요. 한 씨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검찰 수사팀이 자신을 비롯한 수감자 3명에게 거짓 증언을 강요했다고 주장했고, 지난 6월엔 대검찰청에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 등 검찰 지휘부와 한 전 총리 사건 수사팀 등 모두 15명에 대한 감찰 및 수사 의뢰 요청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대검찰청은 이 사안에 대해 감찰 중입니다. 대검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 실에서 최 씨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것을 넘겨받는 한편, 중앙지검 조사를 거부한 재소자 한 씨에 대해선 그가 수감돼 있는 광주로 찾아가 조사를 벌이는 등 진상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연이은 재소자들의 폭로가 과연 진실인지는 감찰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일단 그들의 말 속에 공통점은 있습니다. 당시 검찰이 재소자인 그들을 많게는 수십 차례 검찰청으로 소환했고, 조서도 작성하지 않고 장시간 조사를 했단 점입니다. 이들의 당시 검찰청 출정 기록은 이미 KBS 등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는데요. 일각에선 검찰이 재소자들을 상대로 무분별한 조사를 벌이는 게 문제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 법무부 "檢, 재소자 소환 때 동의 필요…조사 땐 영상녹화 해야"

이를 의식해서일까요. 법무부는 지난 6월 장관 직속 기구인 '인권수사 제도개선 TF'를 발족했습니다. 법무부 검찰국장을 팀장으로 하는 이 TF에선,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지 등에 대해 논의해왔는데요. 오늘(20일) TF 활동의 중간 결과를 내놨습니다. 주요 골자는 재소자를 검찰청으로 반복해 부르는 등 기존의 검찰 수사 관행을 바로잡는 겁니다.

이에 따라 일단 검찰이 앞으로 재소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때는 동의가 필요해집니다. 검찰이 재소자에게 출석을 요구할 때는 죄명과 사유, 장소 등을 적은 출석요구서를 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작성해야 하고, 해당 교정시설이 이를 출력해 재소자에게 전달한 뒤 동의를 거쳐야 하는데요. 만약 출석을 원하지 않으면, 검사가 직접 교도소에 찾아가거나 화상으로 조사해야 합니다.

같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관계인을 수십 차례 부르기도 이젠 어려워집니다. 사건 관계인을 5차례 이상 부르거나, 별건 수사 등을 위해 별도 조사하려면 부서장에게 먼저 이를 보고해야만 소환할 수 있습니다. 또 사건 관계인을 10차례 이상 반복적으로 불러 조사하면 각 검찰청 인권감독관의 정기 점검을 받아야 하고, 사건 관계인이 부당한 반복 조사라며 이의를 제기하면 수사 과정에 대한 점검도 받게 됩니다.

참고인의 경우, 조사 방법도 다양해집니다. 기존에는 검찰이 조사를 위해 먼 거리에 있는 참고인이라도 검찰청에 출석시켰다면, 앞으로는 출석하기 어려운 참고인에 대해서는 화상 조사나 출장 조사를 적극 활용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진술 번복의 가능성이 낮은 참고인은 전화녹음이나 이메일 등 간이 조사 방법도 이용하도록 했습니다.

또 검사와 수사관들의 부당한 회유나 압박을 차단하기 위해, 조사 과정의 투명성도 높입니다. 먼저 재소자를 출석시켜 조사할 땐 원칙적으로 영상 녹화를 하고, 사건 관계인을 불러 조사할 때 조서를 쓰지 않더라도 조사 내용이 담긴 '보고서'와 조사한 시간·장소를 명기한 '면담·조사과정 확인서'를 작성해 수사기록에 무조건 편철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 몇몇 재소자 "검찰서 부당한 회유·협박"…대검, 실태조사 실시

이런 중간 결과 발표에 앞서, 법무부는 재소자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검찰 수사 관행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최근 5년 동안 전국 교정기관에 입소한 재소자 가운데 20차례 이상 검찰청에 소환된 전력이 있는 693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에 진행한 설문 조사입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설문에 응답한 638명의 재소자 가운데 절반 이상인 59%가 '동일 사건으로 10회 이상 소환됐다'고 응답했고, 200명 가까이가 '출석 요구를 받을 때 어떤 신분(피의자, 참고인 등)으로 출석 요구를 받는 것인지 설명받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검찰이 재소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반복해서 소환한 경우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또 633명의 재소자 가운데 11.6%가 '검찰청 조사 때마다 조서 등이 작성되지 않았거나 대체로 작성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소환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니, 최근에도 조서를 작성하지 않고 조사하는 관행이 지속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 '검찰청 조사에서 검사나 수사관으로부터 부당한 회유나 압박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2백 명가량의 재소자가 '그렇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에 대검찰청은 실태 조사에 돌입하기로 했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회유나 압박이 있었다고 밝힌 재소자들을 상대로, 수사 과정에 실제 문제가 있었는지를 따져보겠다는 건데요. 각 재소자의 사건 기록 등을 토대로 조사에 들어간다고 하니, 실태 조사를 마무리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TF 중간 결과 안에는 압수수색 관행의 개선도 포함돼 있습니다. 특히 주거지에 대한 반복적인 압수수색을 막기 위해 주거지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원칙적으로 막기로 했고, 당사자나 변호인이 영장 내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도록 집행 전 영장 원본을 제시하고 열람할 시간도 충분히 보장하도록 했습니다. 또, 압수수색 전 과정을 녹화하고, 임산부나 노약자, 미성년자가 압수수색 장소에 있을 때에는 먼저 퇴거시킨 뒤 집행하는 원칙도 세웠습니다.

재소자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조사를 막고, 압수수색에도 엄격한 기준을 세우는 일. 이는 검찰의 직접 수사부서인 '특수부의 수사 관행'을 고쳐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이와 관련해 대검 관계자도 "이번 가이드라인은 검찰 특수부 수사의 관행에 초점이 맞춰진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는데요. 그는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피의자나 기타 사건 관계인을 여러 차례 부르지 않지만, 정치인의 비리 등을 다루는 특수부에 한해서는 동일 사건의 관계인을 수차례 소환해 별건 수사로 확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실제 이런 수사 관행은 검찰 수사의 어두운 단면으로도 꼽혀온 게 사실입니다.

지난 6월 법무부엔 '인권수사 제도개선 TF'가, 대검찰청엔 '인권중심 수사 TF'가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두 TF는 지금까지 모두 7차례에 걸친 연석회의에서 이번에 발표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고, 이후 대검 검찰인권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쳤습니다. 다만, 실제 시행까진 시간이 걸립니다. 대검 예규 등을 개정하고, 일선 청에 지시 공문을 내려보내는 일까지 1~2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깜깜이 조사' 관행이 이제라도 개선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