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는 바다 쓰레기”…IMO 총회서 이렇게 따질까 [주말엔]_플라멩고 게임과 승리한 산토스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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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쓰레기 섬'을 아십니까.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 거대한 섬이 됐습니다. 곳곳의 바다에서 찍힌 사진들입니다. 모습만으로도 살풍경하죠.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런던협약(London Convention)런던의정서(London Protocol)는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중 하나입니다. 폐기물 해양투기를 막자는 약속입니다.

런던협약은 비행기나 선박, 그 밖의 해양 구조물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걸 뼈대로 합니다. 1975년 발효됐습니다.

런던의정서는 런던협약을 더 자세히 풀어쓴 겁니다. 세부 내용과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정했습니다. 1996년 채택됐습니다.

런던의정서는 쓰레기를 실은 배가 먼바다에 나가 몰래 버리는 행위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습니다. 그게 가장 전형적인 해양 투기 수법이니까요.

하지만 법은 늘 꼼수보다 한두 발짝 늦는 경우가 많죠.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는 방식은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시때때로 국제 협약을 바꿀 순 없는 노릇.

이런 문제를 논의하고 보완할 점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회원국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국제회의를 엽니다.

그 회의는 국제해사기구, IMO가 주관합니다. 올해는 10월 2일부터 6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립니다. 제45차 런던협약 및 제18차 런던의정서 총회입니다.

■ 오염수 방류, 해양 투기냐 아니냐

올해 총회에서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주요 의제로 논의될 거로 보입니다.

일본이 방류를 시작한 건 지난달 24일이죠. 그런데 40일도 채 안 돼 이 문제를 논의할 IMO 총회가 열리는 겁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국제회의가 소집된 걸까요. 사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것은 지난달이지만, 해양 방류라는 방식을 확정한 건 2년 전입니다. 2021년 4월 일본 정부는 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기로 확정합니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물이 일본 앞바다를 거쳐 전 세계 바다로 퍼질 것이 확정된 순간이었습니다.

일본의 최인접국인 우리나라가 대응에 나섭니다. 넉 달 뒤인 그해 8월 우리 정부는 IMO에 의견서를 제출합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KBS가 확보한 당시 의견서 원문의 제목은 상당히 긴데, 줄여 쓰면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우려' 정도입니다.


여러 주장이 망라돼 있지만, 핵심은 '런던의정서를 적용할 수 있는지 IMO에서 함께 논의해보자'는 요청이었습니다.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는 건 처음이라 낯설지만, 비교적 익숙한 바다 쓰레기 문제로 간주해 다뤄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일본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바로 다음 달인 2021년 9월 반박 의견서를 냅니다. 요지는 오염수 방류는 해양 투기가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일본 측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런던의정서는 선박이나 배, 해양구조물을 통한 폐기물 투기를 규제한다.
2. 후쿠시마 오염수는 육지와 연결된 1km 해저 터널을 통해 방류된다.
3. 1km 터널은 해양 구조물이 아니라 육지 시설(land-based facilities)다.
4. 따라서 오염수 방류는 런던의정서를 적용할 수 없는 문제다.

1km 터널을 ①해양구조물로 볼 것이냐 ②육지 시설로 볼 것이냐 해석의 문제가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 IMO "회원국끼리 해결해"

런던의정서나 런던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총 88개국입니다.

한일 양쪽의 의견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지지를 받을까요. 전례 없는 일이라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팽팽히 맞선 채 일종의 교착 상태가 계속됩니다.

그러자 IMO 사무국이 법률 검토에 나섭니다. 지난해 7월 결론이 나왔는데, 다소 허무한 내용이었습니다.

국제협약의 해석에 대한 문제니 가입한 당사국들끼리 논의해서 결정하라고 정리합니다.

이후 한국은 한 번 더 의견서를 냅니다. 제출 시점은 지난해 8월인데, 2021년 의견서와는 내용이 다소 달라졌습니다. 주된 내용은 '관련국들과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이후 논의는 사실상 멈춰 있습니다.

■ 방류 이후 첫 논쟁

이번 IMO 총회는 방류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해양 분야 국제 회의입니다. 국제사회 여론을 가늠할 수 있는 첫 논쟁의 기회입니다.


때마침 논쟁의 판도 깔렸습니다. 총회 사흘째인 10월 4일, '방사성 폐기물'이 의제로 정해져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에 한정된 안건은 아니지만, 후쿠시마 원전을 배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어느 나라가 무슨 얘기를 꺼낼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오염수 방류가 국제적 관심을 끈 이슈이고, 2021년 한국이 첫 의견서를 낸 이후 런던의정서 적용 여부가 쟁점이라는 건 회원국들 사이에 충분히 알려져 있습니다.

2년 전 관련 의견을 낸 우리의 입장이 중요할 수 있는데, 우리 정부의 방침은 아직 정확하지 않습니다.

민주당 등 야당은 현 정부가 IMO에서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강하게 규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년 전 의견서 취지대로 '런던의정서를 적용하자'고 회원국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정부는 내부 논의를 하고는 있다면서도, IMO 총회에서 무슨 입장을 어떤 강도로 밝힐지는 정확히 확인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공개 석상에서 나온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만 보자면, 때로는 신중했고, 때로는 미온적이었습니다.

박구연/국무조정실 1차장(9월 1일 일일브리핑)
"안전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기본 기조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의견을 낼 것"

이관섭/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8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제기구에 일본을) 제소하는 것은 대단히 사실은 사실적 관계에서 보더라도 이상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판단"

[연관 기사]
‘해양 쓰레기 금지’로 오염수 틀어막기 가능할까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60058
한 달 뒤 ‘IMO 총회’ 원전 오염수 다루나…정부는 ‘신중’ 기조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62579

IMO는 등록된 NGO에 대해서도 총회 참석을 허용하고 원할 경우 발언 기회도 제공합니다. 그린피스(Greenpeace)는 그 권한을 가진 NGO 중 한 곳입니다.

그린피스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IMO 총회에 참석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린피스는 우리 정부보다 앞선 2019년부터 IMO에 의견서를 줄곧 제출해왔습니다. 런던의정서 적용 여부를 회원국들끼리 논의하자는 내용입니다.

설사 한국이 나서지 않더라도 어차피 IMO 총회에서 오염수 논쟁의 판을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이때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을 어떤 기조로 밝힐까요.

그래픽 : 배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