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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연합군 공습에 대비, 가덕도 해안 절벽에 만든 인공 동굴. 관측소, 대피소 등으로 활용하려고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 가덕도의 눈물 '다크 헤리티지'

'총 사업비 13조 7천억 원' 부산 지역 최대 국책 토건사업으로 꼽히는 '가덕도 신공항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해상공항을 목표로 하는 가덕도 신공항은 지난 십 수년간 정치권에서 '동남권 신공항 공약'으로 거론돼오다 작년 3월 특별법 공포로 본격 추진됐습니다. 지난 4월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가 확정됐고 현재 사업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5일에는 어명소 국토교통부 제2차관이 부산 강서구 소재의 가덕도 건설 예정지를 방문, 현장 점검에 나서기도 했는데요.

최근 들어 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신공항 건설로 인해 가덕도 내 일제강점기 일본군 군사 시설 등 유적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 구한말 러일전쟁과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은 각각 러·미 군대와의 교전을 위해 가덕도를 전초기지(前哨基地)로 삼아 포대 진지, 인공 동굴, 장병 막사 등을 설치했습니다. 당시 제국주의 일본은 기존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내쫓고 강제로 조선인을 부리며 전투 태세를 갖추는 등 섬 전체의 '군사 기지화'를 도모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가덕도의 일본군 군사 시설이 조선 등 세계를 침략하고자 한 일제의 야욕(野慾)을 보여주고, 국제 전쟁사 차원에서도 상징성을 지닌 사적(史跡)이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일제강점기 슬픈 역사의 흔적인 이른바 '다크 헤리티지(Dark Heritage·부정적 문화유산)'로서 당시의 비극을 기억하고 교훈을 새길 수 있는 유적이라는 것인데요. 가덕도에 남아 있는 일제 군 시설의 현황과 가치, 신공항 개발을 추진 중인 국토부·부산시의 입장을 취재했습니다.

가덕도 남단 서쪽 외양포에 위치한 포 진지 입구에는 1936년 세워진 ‘사령부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라는 제하의 비석이 남아 있다.
■ 일제(日帝)의 '군사 요새'…포(砲) 진지, 인공 동굴 만들어

면적 22㎢, 해안선 길이 36㎞, 13개 섬과 5개 법정동 그리고 17개 자연마을이 있는 '부산에서 가장 큰 섬' 가덕도. 평지가 거의 없고 천가산 연대봉(해발 459.4m), 대항동 국수봉(264m) 등 많은 산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부산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이 발행한 자료집 '물고기의 길목, 가덕도의 해양문화'는 "가덕도는 조선시대부터 지정학적 요충지로 여겨져 왜구와 왜군의 침범이 잦았다"고 설명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는 섬이었고, 임진왜란 때에는 조선의 수군과 왜군의 전략 요충지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외양포가 일본군 주둔지였으며 지금은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예하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부산항과 진해 해군사령부 길목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덕도가 군사 요충지였음을 증명하는 문화재가 현재까지 곳곳에 남아 있다." - '물고기의 길목, 가덕도의 해양문화' 중

구한말까지 왜성(倭城)과 척화비가 있던 가덕도는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직후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요새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군의 주력 함대인 '발트함대'에 맞서기 위해 원거리 포격이 용이한 해안 기지를 만든 것입니다. 당시 일제는 원주민 67가구를 몰아내고 징집된 조선인을 노동력으로 삼았습니다.

4개월여 만에 280㎜ 유탄포 진지 6문과 막사 등을 완공한 일제는 그해 12월 '진해만 요새 포병대대 제2중대'를 주둔시켰습니다. 이듬해 4월에는 일본군 4사단에 '진해만 요새 사령부'가 편성돼 대대급 이상의 규모로 확대됐고, 패망 직전까지 가덕도의 군사시설을 활용했습니다. 실제 가덕도 남단 국수봉 서쪽 외양포에 위치한 포 진지 입구에는 1936년 세워진 '사령부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라는 제하의 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구한말까지 왜성(倭城)과 척화비가 있던 가덕도는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직후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요새화되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국수봉 서쪽 외양포에 위치한 옛 일본군 포병대 기지의 모습.  러시아군의 주력 함대인 ‘발트함대’에 맞서기 위해 일제가 원거리 포격이 용이한 가덕도 해안에 기지를 만든 것.
당시 일본군은 연합군 공습에 대비, 가덕도 해안 절벽 등에 인공 동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I·T·L자형 동굴과 연결복식 동굴 등을 만들었는데, 넓이와 높이는 1.5~2m, 길이는 10~15m 정도입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말기 국수봉 북쪽 대항 새바지마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T자 형태의 인공 동굴은 길이가 50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군의 한반도 상륙작전에 대비하기 위해 관측소 등으로 사용하고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포 진지와 인공 동굴 외에도 우물, 탄약고, 무기고, 지하 감옥, 장교 사저, 헌병대 막사, 일본군 내무반 등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 11일 부산 강서구에 따르면, 현재 가덕도 내 일제 군 시설은 건축물 23동, 포 진지 1개소, 표지석 1개소, 훈련장 1개소, 화약고 1개소, 말길 1개소, 관측소 3개소, 산악 보루 1개소 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건축물 중 장교 막사는 해방 이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돼 현재 마을 주민 30여 세대가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가덕도 대항 인공 동굴 관련 설명 현장 표지판.
■ 매립용 토사 마련 위해 국수봉 등 가덕도 남단 산지(山地) 절취

바로 이 유적들이 2030~35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 개발로 인해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국토부가 공개한 신공항 조감도를 보면 국수봉, 남산과 항구들이 들어선 가덕도 남단에 3,500m 길이의 해상 활주로를 연결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공항 건물 등 각종 부대시설은 남단 육지에 조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바다를 매립하는 데 필요한 토사(土沙)를 마련하기 위해 산지인 국수봉은 대부분 절취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국토부는 지난 4월 26일 보도자료 '국내 최초 해상공항 가덕도 신공항 밑그림 마련'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순수 해상 배치안은 절취된 산지를 배후 부지로 활용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 [육상] 동서로 폭이 좁은 지형(1.7㎞)이며, 시추 결과 암질(암석 90%)의 산지 지형으로 산지 절취(발파) 및 해양 매립 필요
- [해상] 시추 및 조사 결과, 가덕 인근 수심(최대 30m), 연약지반 두께(최대 45m), 최대 파고(50년 빈도 10m) 등 해양 매립 시 고려 사항 多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 섬 남쪽에 있는 국수봉을 대부분 깎아내고 그 바위와 토사를 바다에 매립해 신공항 활주로를 만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출처=국토교통부 자료 캡처)
그렇다면 국토부와 부산시는 신공항 개발에 앞서 해당 유적들의 보존 문제와 관련해 대안을 마련해놓은 걸까요. 두 곳의 신공항 추진 부서 관계자들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직 신공항 개발 기본계획이 수립되기도 전인 만큼 현재 기준으로는 어떻게 처리한다는 방침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추후 전략환경영향평가와 함께 가덕도 내 문화재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 국토부 가덕도 신공항 건립 추진단 관계자
"지금 전략환경영향평가 발주 중에 있습니다. 이달 말쯤 용역사와 계약해 조사가 시작될 예정인데, 그때 문헌 조사를 통해 문화재 관련 등 전반적인 사안을 검토할 것입니다. "

◆ 부산시 신공항 추진 본부 관계자
"(일제 군 시설 관련) 현재 보존 계획이 수립된 건 없습니다. 기본 공사 계획에 따라 문화재에 대한 기초 조사가 들어갈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가 되겠죠."

■ 전문가 "'국제 공항' 가덕도…세계인이 기억하도록 '전쟁 유적' 남겨야"

전문가들은 정부 및 지자체 당국이 신공항 건설에 돌입하기 전에 철저한 현지 학술 조사를 통해, 가덕도 내 일제 군 시설의 보존 가치를 진단하고 처리 방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또 공사 계획상 철거가 불가피한 시설은 후대가 기억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자료를 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장차 가덕도 신공항이 '국제 공항'으로서 그 위상을 공고히 하려면, 세계인이 찾아와 비극의 동아시아 역사를 기억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관련 유적을 가능한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합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전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가덕도 일제 군 시설은 일본군이 러일전쟁 초기에 만들어 패망 직전 태평양전쟁 때까지 사용했다. 당시 동양과 서양의 대립 구도를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유적"이라며 "또한 일제가 조선을 악랄하게 초토화한 흔적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지만, 마땅히 기록하고 보존해서 전 세계인이 찾아와 볼 수 있는 전쟁 유적으로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소록도 내 일제 화장장(왼쪽)과 가덕도 내 일제 화장장(오른쪽). 건물 양식이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제공)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부산외대 일본어과 명예교수)은 "여러 군 시설 외에, 가덕도 국수봉 너머 바닷가 쪽 산골에는 일제강점기 때 끌려온 조선인 징용·징병자들이 사망 후 화장(火葬) 처리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장 건물도 남아 있다"며 "일제가 생체실험을 한 소록도 화장장과 건물 양식이 유사하다는 증언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학자 등 문화재 전문가들이 조사에 투입돼 군 시설의 보존 가치를 따져보고, 공항 설계상 반드시 없애야 하는 곳은 촬영 기록 또는 문헌 자료로 남기거나 표지판을 세워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가덕도 신공항이 '국제 공항'을 표방하는 만큼, 세계인이 유적을 보고 당시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가덕도 내 일제 군 시설은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과 만행을 보여주는 잔재들로서, 우리의 역사와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의미에서는 마땅히 철폐돼야 할 것들입니다. 과거 김영삼 정부가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깔고 앉은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일거에 폭파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당장 쓸어내버려도 시원치 않을 '침략의 흔적'을 왜 굳이 유적으로 보존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비극적 문화유산인 '다크 헤리티지'를 보존하자고 관련 전문가들이 나서는 이유는, 후대가 슬픔의 역사를 잊지 않고 매순간 기억함으로써, '나라의 뿌리와 선대의 희생'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응시 자체로도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지만, 조상들의 한이 서린 그 유적들을 바라보면서, 애국심과 독립정신을 마음에 각인하는 광복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포그래픽=김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