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의문사위가 전한 교도대·軍 내 폭력 실태 _온라인으로 적립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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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가 12일 밝힌 의문사 2건의 진상을 통해 과거 교도대 및 군내 폭력적 가혹행위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군의문사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1980년대 강원도 제1야전군사령부 소속 야전부대에서 복무중 사망한 김모(당시 20세.경기) 하사와 1996년 강원도 모 교도대에서 자살한 박모(당시 21.서울) 이교(이등병에 해당)가 그동안 알려진 `단순 사망'과는 달리 군내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군의문사위에 따르면 박 이교는 전환복무의 일환으로 강원도 모 교도소 경비교도대에 배치받은 첫날부터 선임대원들로부터 가혹행위와 구타에 시달렸다. 전입 첫날 신고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침점호 후 불이 꺼진 내무반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선임대원들로부터 욕설과 함께 머리 등을 구타당했다. 이튿날 오전에는 구보(驅步) 시 목소리가 거북하다고 지적받았고 이날 밤에는 선임대원들의 이름과 계급 등이 적힌 메모지와 함께 암기를 지시받았다. 그러나 이 메모지는 박 이교를 비롯한 후임대원을 구타하기 위한 빌미에 불과했다. 박 이교는 그날 밤 취침점호 후 암기를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욕설은 물론, `원산폭격' 등 가혹행위와 함께 침상에 누운 채로 가슴을 구타당했다. `먹기 사역'도 있었다. 끼니 때마다 세 명이 먹어야 할 분량의 식사를 선임대원들의 강제에 의해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 치워야 했던 것. 남성들끼리만 생활하는 내무반에서 선임 대원들로부터 성추행도 당했다. 군의문사위는 "일부 선임대원들이 후임대원들의 상의를 벗기고 애무행위를 하거나 성기를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거부하는 후임대원들에게는 어김없이 구타가 가해졌다. 박 이교는 이 같은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교도대 전입 나흘만인 1996년 10월22일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교도대측은 박 이교가 내성적 성격에 얼굴 피부병에 의한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으로 처리했다. 해당 교도대 중.소대장은 이 같은 가혹행위와 구타가 빈번히 발생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부대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군의문사위는 지적했다. 부대관리 소홀을 넘어 구타나 가혹행위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교도소 관계자가 대원들의 내무반에 들어와 후임 대원들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도 "1번, 축구하다 다쳤다. 2번, 감시대에서 굴렀다. 3번, 뛰다가 넘어졌다. 이 중에서 몇 번이냐"고만 물어 사실상 구타와 가혹행위를 묵인했다는 지적이다. 강원도 제1야전군사령부 소속 야전부대에서 복무중 사망한 김 하사도 부대 회식 후 창고에 불려가 선임인 A하사로부터 주먹으로 가슴을 가격당해 쓰러져 사망했다. 그러나 당시 군 당국은 김 하사가 부대 회식 후 잠을 자던 중 구토로 인해 기도가 막혀 질식사했다고 발표했다. 군의문사위는 당시 군수사기관의 전문성 및 경험 부족은 물론,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다며 군 수사기관의 조사역량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편 국방부와 각 군은 지난해 발생한 경기 연천군 GP(前哨)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병영문화 개선과 장병들의 인권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