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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53주년을 맞는 국립오페라단이 신임 예술감독 선임을 둘러싼 논란으로 새해 힘겨운 출발을 하고 있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한예진 상명대 산학협력 특임교수를 신임 국립오페라 예술감독에 임명하자 예술계 인사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국내 성악가와 오페라 관계자는 ‘한국 오페라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한 감독 임명에 대한 반대 시위를 이어갔고, 한 감독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문체부가 한 감독의 경력을 오기했다고 해명한 것에 대한 대응이다.

한국 성악가협회도 성명서를 내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협회는 “현직 정상급 성악가들 가운데 누구도 오페라의 본고장인 유럽 중앙 무대에서 그 이름을 들어 본 이가 없다”며 문체부의 평가와 판단 근거를 요구했다. 성악가협회 김철호 이사는 “문체부가 한 감독에 대해 현장 경험이 많아 세계오페라 흐름 파악에 안목과 기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데, 오페라 제작이나 행정, 경영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다”며 “싱어로 무대에 몇 번 섰다고, 국립오페라단장의 자리에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대여론이 거센 가운데 한예진 신임 예술감독은 오늘(3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국립오페라단의 신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기자간담회는 두 차례 연기 끝에 개최된 것으로, 그간의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여준다.

◆ 한예진 감독 “비난 여론 섭섭하고 억울해…사퇴의사 없다”

논란이 뜨거운 만큼, 기자회견은 2015년 국립오페라단의 계획보다는 한 감독의 해명에 집중됐다. 이 자리에서 한 감독은 “(임명 논란에 대해) 섭섭하고 억울하다”며 자신은 ‘갓 태어난 아기’인데 지켜보지도 않고 평가한 것에 대한 유감을 드러냈다. 그는 “물러설 뜻 없다”며 “더 열심히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감독에 대한 문제는 두 가지다. 국립오페라단을 이끌어가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또 구체적인 활동과 경력이 무엇인지다.

오페라 제작 경험을 묻자 한 감독은 “제작 경험이 없다”면서도 “제작을 해보려 한 적은 있다”고 답했다. 그는 “작은 극장에서 연출했던 경험이 있고, 콘서트 기획도 나름 멋지게 해냈다”고 소개했다. 이어 “경험이 없고 어리다는 것을 외국에서는 젊은 감각과 열정, 신선함으로 보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경험이 없는 것으로 평가한다”며 “정신차리고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한 감독은 자신의 주요 경력인 상명대 특임교수에 대해 “정식 교수는 아니고 시간강사의 개념”이라면서도 “(학생이) 수업을 위해 강남에서 강북까지 오는 등 수업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고 자평했다.

학력과 경력이 혼선을 빚은 것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충남대학교 성악과에서 반 학기(4개월~6개월) 다닌 후 유학을 갔다”고 바로잡았다. 이어 “밀라노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베로나와 사로나 등에서 공연했고 야외에서 하는 여름 페스티벌 무대에 많이 섰다”며 “세계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소프라노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 감독은 논란이 된 경력증명서 제출에 대해서는 “제출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당시 독창회를 하며 바쁜 와중에 제출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력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오기이고, 직원과 의사소통을 잘못한 것에서 불거졌다”며 “이런 내용은 조사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 ‘한국 오페라비상대책위원회’ 박현준 단장

한편,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박현준 단장을 비롯한 비대위 인사들이 방문해 한 감독 임명 반대를 외쳤다. 한 감독이 자리를 떠난 뒤 기자회견장에 입장한 박 단장은 “이번 인사는 오페라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누가 한 감독을 추천한 것인지 밝혀달라”고 외쳤다.

◆ 국립 예술단체장 반복되는 선임 논란

사실 오페라단장 인선 논란이 낯선 풍경은 아니다. 2008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에 내정됐던 이영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은 반대 여론에 부딪혀 자진 사퇴했다. 당시 오페라계 관계자들은 작곡가 출신의 교수가 임명되는 것에 대해 “무대를 잘 아는 성악인이 단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 취임한 이소영 예술감독은 오페라단합창단을 해체해 거센 반발을 불렀다. 이 감독은 허위경력 기재논란으로 감사원 조사를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친인척 특혜와 예산 낭비 등의 혐의가 드러났다.

이 같은 사정은 옆 동네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에는 문체부가 선임한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에 대해 연극단체들이 반발했다. 김 감독이 평론가 출신이라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임기 도중 반대여론에 밀려 자리에서 물러난 경우도 있다. 정형민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2013년 서울관 개관 특별전에 서울대 출신 작가를 80% 이상 채워 미술계 인사들의 공분을 샀다. 당시 서울관 앞에서는 '관장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지난해 10월 채용비리 등으로 직위해제 됐다.

10개월간 공석이던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에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김세훈 교수가 선임되자 영화인들은 비영화인 발탁에 대한 반대의 뜻을 전한 바 있다.

◆ “인사 검증 시스템 부재” vs “기관장 임명은 장관 권한”

반복되는 인사 반발의 근거는 모두 ‘경력과 전문성 논란’이다. 결국,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정부가 임명한 인사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협회장은 “예술가의 특성상 타인에 대한 인정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해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있다”면서도 “이번 한예진 오페라단 감독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고 했다. 이어 “문체부가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여태까지 이런 인사는 없었다”고 했다.

탁 회장은 문체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어떤 기준으로 인물을 선정하고, 전문성을 평가하는지에 대해 공개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비대위 박현준 단장은 “그동안은 전문가와 평론가 견해를 물어보고 복수 추천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전부 생략됐다”며 “누가 추천했고, 검증했는지, 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아무도 밝히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국립예술단체 기관장 임명은 장관의 권한이므로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체부 임병대 공연예술전통과 과장은 “성악계 주요 인물 중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한 정보에 의해 후보군을 추리고, 전문성과 단체 운영능력, 소통능력, 국제적인 감각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며 “비대위 측에서 말하는 추천제도나 공모는 공식적인 절차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각 기준에 대한 판단 근거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평가 기준에 따라‘라는 표현으로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