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실은 ‘산재 백화점’이라 불려요”…‘개선’ 약속한 뒤 예산만 쏙? [취재후]_카지노 테마 데크가 있는 가짜 케이크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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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 터울의 초등학생 남매를 자녀로 둔 정 씨, 20여년 전 자녀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급식실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체구가 작은 정 씨에게 교장 선생님은 "그 몸으로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지만, 정 씨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공간에서 일하다가 하교 시간에 맞춰 함께 집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급식실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일하기에는 버거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게 18년을 일해오다 2016년의 어느 날, 급식실로 출근하던 정 씨는 오른쪽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습니다.

정밀 검진에서 정 씨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골반까지 암이 전이돼 증상이 나타났던 상황.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시간은 지났고, 몸은 다행히 호전됐습니다. 산재를 인정받은 정 씨는 그렇게 급식실을 떠났습니다.

■ '산재 백화점'이라 불리는 학교 급식실

학교 급식실은 급식 노동자들 사이에서 '산재 백화점'이라 불립니다. 강한 노동 강도로 많은 질병을 유발한단 이유에서입니다.

폐암으로 일을 그만두기 전, 정 씨는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매일 20kg이 넘는 쌀을 나르고, 키보다 더 높이 쌓인 식판을 들어 옮기며 '말도 못하게' 손목 근육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정 씨는 독한 약품으로 높은 곳에 있는 환기구를 청소하다 약품이 팔을 타고 내려와 팔 전체에 화상을 입은 동료, 심한 연기에 질식해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간 동료들도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정 씨가 산재 신청을 할 때 제출한 근무 환경 작성 서류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건 폐 질환입니다.

정 씨의 산재 승인 서류에는 '조리흄'이라는 단어가 적혔습니다. 조리흄은 뜨거운 음식을 조리할 때 나오는 유증기에 포함된 미세 발암 물질인데, 급식 노동자들이 폐 질환에 걸리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힙니다.

정 씨는 "환기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튀김류나 부침류 음식을 할 때 온갖 연기가 마스크 안으로 다 들어온다"며 "급식실 일을 시작한 뒤 환절기가 되면 잔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 잇따르는 산재에 '개선 약속'했지만…실행률은 10%

지난해 12월 폐암으로 숨진 급식노동자의 분향소 (사진제공: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실제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은 산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2021년 산재로 처음 승인된 이후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산재 승인 건수는 113건입니다.

2022년 실시한 학교 급식 노동자 대상 폐암 검진 결과, 10명 가운데 3명은 폐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12월에도 폐암 투병을 하던 급식 노동자가 끝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해 3월 '학교 급식실 조리환경 개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학교당 1억씩 예산을 편성해 고용노동부가 정한 급식실 환기 설비 가이드라인에 미달하는 학교들을 2027년까지 개선시키겠다는 겁니다.

당시 교육부는 개선 대상 학교 9,043곳 중 지난해 한 해 동안 1,889곳을 개선시키겠다고 목표로 세웠습니다.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17개 시도교육청이 제출한 가장 최근 통계를 보면 전국 개선 대상 학교 급식실 중 개선된 학교는 231곳에 불과했습니다.

기존 목표치의 10% 정도에 그친 셈입니다.


■ "사업주는 교육청" vs "가이드라인 기준 까다롭다"

예산까지 편성됐지만, 시설 개선이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시도교육청들은 고용노동부가 정한 환기 설비 가이드라인의 기준이 너무 높다고 주장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고용노동부의 급식 시설 관련 기술 지침은 학교 급식실의 층고와 면적을 충분히 확보해야 가능하다"며, "기존 학교 급식실에는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급식실을 새로 짓지 않는 한 가이드라인에 맞는 환기 시설은 어렵다는 말로 풀이됩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도교육청의 요구에 따라 고용노동부에 시설 기준을 완화한 개정 가이드라인을 요청해 지난해 8월 개정된 가이드라인이 발표됐다"고 밝혔습니다.

여건이 안 된다면서도, 지난해 각 시도교육청은 개선 대상 학교 중 20%가 넘는 1,889곳의 급식실을 개선하겠다며 예산을 받아갔습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에만 636개의 급식실을 개선하겠다며 예산 636억 원을 받아갔는데, 하반기에 목표치를 2백 곳으로 낮췄고, 실제 개선된 학교 수는 59곳에 그쳤습니다.

그런데도 올해 2백 곳을 추가로 개선하겠다며 교육부에 추가로 예산을 신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시도교육청마다 계획이 있고, 늦어진다고 해서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며 "교육부는 예산을 편성해 시도교육청의 계획에 맞게 교부할 뿐 개선 사업의 주체는 교육청"이라고 답했습니다.

한 해 동안 급식실 조리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으로 받아간 예산을 쓰지 않고 미뤄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이 겨울방학 동안 개선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전달해왔다"며 "이번 달 말 예산 대비 급식실 개선 현황을 확인해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