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현대사와 함께한 가요계 산증인 반야월_포커에 좋은 손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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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웁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 히트곡 남겨 26일 타계한 원로 가수 겸 작사가 반야월(본명 박창오·朴昌吾) 씨는 일제 강점기인 1939년 데뷔 이후 73년간 '현역'으로 활동한 가요계의 산증인이다. 고인은 191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진해로 이주해 진해농산고를 다니다 중퇴했으며 태평레코드사에서 주관한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걸었다. 그는 진방남(秦芳男)이라는 예명의 가수로 활동하면서 국민적 애창곡이 된 '불효자는 웁니다'를 비롯해 직접 작사한 '꽃마차' 등을 히트시켰다. 작사활동을 시작한 1942년 무렵부터 '반달'을 뜻하는 반야월(半夜月)이란 예명을 사용해 지금에 이르렀다. 1세기에 가까운 고인의 삶은 굴곡진 현대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데뷔 이후 나라 잃은 민족의 애환을 달래는 노래로 사랑받았던 그는 그러나 일제 말기에 '소년초' '조국의 아들' 등을 불렀고, '결전 태평양' '일억 총진군' 등을 작사해 오점을 남겼다. 고인은 2010년 친일 군국가요를 부른 것에 대해 "매우 후회스럽고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해방 이후 가수보다 작사가로 더 왕성하게 활동한 그는 마산방송국 문예부장으로 근무했으며 그 무렵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을 작사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국민의 마음을 위로했다. 고인은 아흔 살을 넘기고도 작사활동을 계속해 2008년 '꿈꾸는 청계천' '그리운 제2고향' 등 10편의 가사를 발표했고, 이듬해에도 '박달재 사랑' '나의 별' 등을 작사해 '영원한 현역'임을 입증했다.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와 노랫말로 대중과 함께해온 그는 '국민적 대중음악인'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전국에 가장 많은 노래비가 세워진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1993년 '내 고향 마산항'을 시작으로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 '소양강 처녀' '삼천포아가씨' '산장의 여인' '무너진 사랑탑' 등 전국에 세워진 노래비가 10여개에 이른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는 "고인은 해방 이전부터 활동해온 가요 1세대로 박시춘, 이난영과 더불어 가요계의 3대 보물로 불릴 만큼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면서 "말년까지 호탕하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작사활동을 계속했고, 고인이 생전에 직접 밝힌 바로는 그동안 발표한 노래가 4천-5천편에 이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