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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것도 없는 우리 조각 사상 최고의 걸작이자,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고승 '초상 조각'인 희랑대사(希朗大師) 조각상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습니다. 너무도 당연해서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공식 명칭은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입니다.

주인공인 희랑대사는 태조 왕건의 스승으로 고려 건국에 큰 힘을 보탠 당대의 고승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무려 10세기에, 그것도 나무에 색을 입혀 만든 조각이 1,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과 함께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안겨준 희대의 문제작이죠.

희랑대사상, 고려 10세기, 건칠과 나무에 채색, 높이 82.4cm, 국보 제333호, 합천 해인사
서양미술의 전통은 말할 것도 없고 초상 조각을 활발하게 제작했던 중국이나 일본과도 달리 우리의 불교 전통에서 이 조각상은 너무나도 독보적이고도 희귀한 사례입니다. 지난해 초 국립중앙박물관이 야심 차게 마련한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에서 이 조각상을 대면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기사를 통해 미술사적 측면에서 이 조각상이 지니는 가치를 살펴봤습니다.

[연관기사] 천년 전에 이런 조각이?…태조 왕건의 스승을 새기다

앞선 기사에도 언급했듯 이 조각상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가슴에 나 있는 수수께끼 같은 구멍입니다. 그래서 천흉승(穿胸僧, 가슴에 구멍이 뚫린 승려)이라고도 했고, 흉혈국인(胸穴國人, 가슴에 구멍이 있는 나라 사람)이라고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죠.

희랑대사상을 자세히 보면 가슴 한가운데 구멍이 보입니다.
기사가 나가고 얼마 뒤에 한 시청자께서 이메일로 제보를 해오셨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희랑대사의 가슴에 있는 구멍은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구멍이라고 들었습니다. 모기들에게 저녁마다 희랑대사의 가슴 구멍으로 들어가서 피를 먹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인사에는 모기가 안 보였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 67세입니다. 20대 때 희랑대사 좌상을 보면서 해인사에 계시는 스님께 들은 말씀입니다.

피를 빨아먹고 사는 미물에 지나지 않는 모기에게조차 자기 피를 보시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설화로 전해지는 겁니다. 다른 승려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모기들이 자기에게 오도록 가슴에 구멍을 뚫어 피를 나눠줬다는 이야기. 이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해인사가 발간한 잡지 《월간 해인》 1988년 4월 호(통권 74호)에 실린 <해인사의 인물열전-희랑대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희랑대사가 해인사의 졸고 있는 수행승을 위해 모기가 날아다니도록 했다.

수행하는 승려들이 졸지 말라고 일부러 모기를 불러모으려고 가슴에 구멍을 내 피를 보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사실 처음에 반대로 생각했거든요. 모기가 워낙 많아서 수행 정진에 방해가 되는 걸 보고 스님이 모기를 자기한테 불러모으려고 피를 나눴구나, 하고요. 실제로 관련 글이나 기사를 찾아보면 두 가지 해석이 모두 보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도 이야기가 주는 흥미로움은 전혀 반감되지 않죠. 국보 지정 사실을 알리는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에는 관련 내용이 이렇게 설명돼 있습니다.


'희랑대사좌상'의 또 다른 특징은 '흉혈국인(胸穴國人, 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라는 그의 별칭을 상징하듯, 가슴에 작은 구멍(폭 0.5cm, 길이 3.5cm)이 뚫려 있는 것이다. 이 흉혈(胸穴)은 해인사 설화에 의해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고승의 흉혈이나 정혈(頂穴, 정수리에 난 구멍)은 보통 신통력을 상징하며, 유사한 모습을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1024년, 보물 제1000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를 놓고 사실관계를 따지는 건 무의미합니다. 이야기가 만들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저 구멍이 단순히 '신통력을 상징한다'로 이해하고 말면 뭔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게 됩니다. 하지만 미물인 모기에게 기꺼이 자기 피를 보시했다는 이야기가 어우러진 희랑대사 조각상은 훨씬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설화의 힘, 이야기의 힘이죠.

희랑대사가 세우고 머문 곳으로 전해지는 희랑대
해인사는 저 유명한 신라인 최치원이 말년을 보낸 곳으로 널리 알려진 유서 깊은 사찰이죠. 해인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던 희랑대사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지만, 희랑대사가 창건하고 머물렀다는 해인사의 산내암자(山內庵子)인 희랑대(希朗臺)라는 이름에 그 자취가 남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