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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약에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서 어떤 지시, 실행 그리고 분명한 결과가 나왔었다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8월 1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지명 이후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처음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남긴 말입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8월 1일)
그러나, 과거 공식 문서에는 이동관 후보자의 발언과는 다른 정황이 나타나 있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실이 지난 2009년 8월 24일 작성한 '대통령 서면 보고서', 보고자에 '이동관 대변인'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보고 안건은 'VIP 전화 격려 대상 언론인 선정 보고'입니다. VIP, 즉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전화로 격려를 해줄 필요가 있는 대상자들을 정리한 겁니다.

2009년 청와대 대변인실이 작성한 ‘대통령 서면 보고서’ (제공: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실)
■ 당시 대통령에게 '전화 격려 필요 대상 언론인' 보고한 이유는?

대통령이 시간을 쪼개 전화로 격려까지 해주라고 독려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전화 격려 대상 언론인으로 선정된 한 석간지 사장의 경우를 보면, 선정 사유에 '사장 등 경영진과 편집진은 VIP에 우호적인 스탠스'라고 소개돼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VIP 동정·정부 시책에 대한 기사를 부각시키거나 기획기사 및 사설 보도 협조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한다고 써있습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특정 언론사가 청와대의 '보도 협조 요청에 호응'했다는 겁니다.

같은 문건에는 더 구체적인 정황이 나옵니다. 선정 사유를 뒷받침하는 첨부 문건을 소개하며 대변인실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靑(청) 대변인실에서 기획, <0000>에 보도협조 요청해서 보도된 대표적 기사·사설 스크랩'. 그러면서 4건의 기사와 사설 제목을 올려놨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용산 참사와 관련된 기사입니다. 2009년 1월 용산 철거민 농성 도중 경찰과의 대치로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다음날 바로 철거민의 폭력 대응에 초점을 맞춘 보도가 나왔습니다.

민노총 성폭력 사건의 조직적 은폐 주장이나, 공무원 노조의 간부진 내부 고발 등을 기사화한 것도 포함됐습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노조나 단체의 도덕적 흠결을 문제 삼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 기사들입니다.


2009년 청와대 대변인실이 작성한 ‘VIP 전화 격려 대상 언론인’ 문건 (제공: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실)
■ "좌파 세력 반발에도 꿋꿋하게 논조 시정 노력"...격려 사유?

언론사 내부 동향이나, 언론인의 정치 성향을 파악해 따로 관리해온 정황도 확인됐습니다.

한 일간지 사장의 경우 '지면 건전화를 위한 노고를 치하, 지속적인 노력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선정 사유에 적시됐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사장의 취임 이후 변화를 평가하는 대목에선 '10년간 경영·편집 전반에 뿌리내린 구 좌파정권의 잔재 청산 주력' '좌파세력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논조 시정을 위해 노력'했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 'VIP 국정 운영에 동조·지지로 변화'...격려 대상은 현직 장관

2009년 8월 문건에는 언론사 간부에 대해 '편집국장 시절, 친박으로 분류되었으나 대기자를 거치며 VIP의 국정운영에 동조·지지로 성향 변화'했다고 적혀있습니다. 특히 이 간부는 취임 이후 '방송 진출에 역량을 집중할 것을 천명'했다고 돼있는데, 당시 이명박 정부가 사활을 걸었던 '미디어법'의 후속 조치에 호응하는 점을 부각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간부는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박보균 당시 중앙일보 편집인입니다.

2009년 청와대 대변인실이 작성한 ‘KBS 라디오’ 관련 문건 (제공: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실)
■ 우호적인 언론엔 격려 전화, 비판적인 언론엔 문제 제기 후 개선 요구?

이동관 후보자는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을 거치는 동안 정권에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특정 기사에 대해 '비보도' 조치를 하는 등 언론 통제 시도를 해왔다는 의혹을 받아 왔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민형배 의원실을 통해 추가로 입수된 문건 중에는 이동관 대변인실이 지난 2009년 7월 KBS와 관련해 작성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KBS 라디오에 출연한 한 교수가 당시 국회에서 '미디어법'이 강행 처리된 것을 두고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며 'KBS 측에 출연자 선정, 방송 내용 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고 적어놨습니다. '미디어법 등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인사가 출연'했고, '통과된 법안에 대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등의 정제되지 않은 개인적 의견 개진 등'을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이에 'KBS도 그러한 문제 제기를 인정'했다며 '이와 관련, 빠른 시일내에 동 프로그램에서 미디어법 통과에 따라 달라지는 미디어 환경 등에 대해 전문가 대담을 실시토록 요구'했다고 써있습니다.

함께 적힌 '라디오 프로그램 모니터링 체계'에 대한 설명에서도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B.H(청와대) 대변인실에서는 문제가 있을 경우 신속히 사후 문제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입니다. 당시 종편 출범 근거가 된'미디어법'은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됐는데도 라디오 출연자가 관련 논란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문제 제기'와 '개선 요구'의 대상이 된 겁니다.

■ "채찍과 당근 통해 언론 장악 시도"..."문건 작성 지시, 보고받은 바 없어"

해당 문건을 입수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동관 후보자의 언론 장악 시도가 명확하게 드러난 증거"라며 " 이동관 후보자가 언론에 대해서 채찍과 당근을 통해서 장악하고 탄압하는 시도를 했던 게 사실이라면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장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는 해당 문건에 대한 KBS의 질의에 '문건의 작성을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바 없다'며 언론 동향을 살피는 등의 업무는 '당시 언론비서관실의 통상 업무로 실무선에서 처리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각 비서관실의 계기별 보고는 내부망으로 부속실에 일괄 전달'됐다며 '해당 문서 첫장에 적시된 보고자, 보고 안건 등 개요는 실제 보고 양식이 아니라 보고 편의를 위해 부속실에서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부속실에 전달된 이러한 문서는 대통령에게 일일이 보고되지 않으며, 해당 문건의 실제 보고 여부는 확인할 수 없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이 후보자는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본인은 참고인 소환조사조차 받은 바 없음'이라며 '직권 남용이나 언론장악의 혐의가 드러났다면, 어떤 형태로든 검찰조사를 받았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대변인도 지시한 적도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고, 당시 대통령조차 보고받았는 지도 불분명한 이 문건들은 대체 누가, 왜 작성했을까요? 언론사의 특정 보도에 개입하고, 내부 동향을 파악하고, 언론인의 정치 성향까지 수집해 관리하는 것이 언론비서관실의 통상 업무로 실무선에서 처리한 것이었다는 해명에 의문이 생깁니다.

이동관 후보자는 지명 이후 첫 출근길에서 과거 언론 장악 의혹을 부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적어도 언론의 본 영역이라고 하는 것은 검증하고, 사실은 의심하고, 그리고 확인해서 그래도 최대한의 객관적인 공정한 진실을 전달하는 게 언론의 본연의 역할 아니겠습니까.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제가 얘기하는 것도 의심하고, 검증 하십시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8월 1일)

이제는 '의심'하고, '검증'할 시간입니다. 이동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오는 18일 예정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