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평등한 국회를 원한다”…‘국회 페미’의 첫 인터뷰_스포츠 베팅의 감정 조절_krvip

“우리는 성평등한 국회를 원한다”…‘국회 페미’의 첫 인터뷰_귀하의 입금 요청이 거부되었습니다._krvip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지 이틀 뒤인 2018년 8월 16일. 국회에 '국회 페미'라는 익명 모임이 생겼습니다. "일터로서, 민의의 대표기관으로서 성평등한 국회를 만들기 위한 국회 여성 근로자 페미니스트의 모임". 그들이 직접 내놓은 소개말입니다. 의원 보좌진과 국회 직원 등 30명 정도가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성평등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았던 2018년, 그 목소리의 진지한 수신처가 돼야 할 국회에서 성평등을 외쳐온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이메일을 여러 차례 주고받은 끝에, '국회 페미'에서 활동 중인 보좌진 행비, 이도, 탈린 씨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야겠다", "우리가 있다는 걸 밖에도 알려야겠다"라는 생각에 첫 언론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습니다. 2시간 넘게 이어진 대화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어렵게 나온 ‘미투’ 목소리…국회는 무응답

기자 = 올 한 해 큰 이슈였던 '미투' 운동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하는데요. 국회에서도 잠깐이긴 했지만 움직임이 있었죠?
([연관기사] 국회 감사관실, ‘미투 폭로’ 조사 착수…가해 보좌관 면직 절차 중지)

행비 = 국회에서 '미투'가 처음 나왔을 때, 제가 여기서 겪은 수많은 성추행과 성차별적인 문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그리고 내가 폭로를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어요.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의 희생과 용기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잖아요. 그분들이 무엇을 잃게 될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옮겼다 하더라도 예전에 어떤 의원실에서 일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테니까, 의원 얼굴에 먹칠했다고 압력을 받았을 거고, 앞으로 이직하기도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도 = '미투' 글이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주로 올라왔었잖아요. 그걸 올린 분들은 물론 익명이 보장된 곳이지만 무서웠을 거예요. 그럼에도 용기를 낸 건, 분명 나 같은 사람이 국회에 있기 때문에 얘기한 거거든요. 여성 보좌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탈린 = 공격하는 사람들은 그래요. 당당히 나와서 얘기해라. 왜 익명 뒤에 숨어서 얘기하느냐고. 근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밥벌이가 불가능한 사람들이거든요. 방을 옮기거나 승진하고 싶거나 할 때도 "'미투'한 애야"라고 하면 못해요.

행비 = '미투' 내용이 남성 보좌진들에게 새로운 얘기는 아니었을 거예요. 어쩌면 더한 것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본인들의 위치가 그동안 늘 안전했기 때문에, '미투' 글 몇 개가 올라왔다고 해도 그게 본인들을 위협하고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는 자각은 갖지 못하지 않았을까.

탈린 = 실제로도 무너지지 않았잖아요. 아무 것도 무너지지 않았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2018년 4월 실시한 ‘국회 내 성폭력범죄 관련 실태조사’ 결과 일부. 국회의원 및 보좌진 전체 중 34.8%가 참여했다. 성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을 제외한 응답자 923명 중 여성은 397명, 남성은 522명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국회의원 정책자료’ 누리집 (http://ampos.nanet.go.kr:7000/mainPage.do) 참고.
■ 여전한 그 말, “그 방 비서 예쁘더라”

기자 = 조금의 변화도 없었나요?

탈린 = 자성의 목소리보다는 그런 거 있잖아요. 피해자들 외모가 어땠다느니, 근무할 때 태도가 원래 그랬다느니. 김지은 씨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상한 찌라시들이 국회에 많이 돌았거든요. 그런 식으로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확실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게. 이게 '미투' 운동을 대하는 국회의 태도인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행비 = 국회 안의 '미투'도 외면하는데, 어떻게 사회에서 터져 나온 수많은 '미투'에 응답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방 비서 몸매가 참 좋다더라. 짧은 치마 입고 다니는데 남성들을 꼬이려고 그러는 거다. 쟤는 뭘 좀 아는 애다. 이런 식으로 여성들을 '숨 쉬듯이' 가십으로 소비하는 건 여전해요.

이도 = 국회 내부망에서 직원 사진을 검색할 수 있잖아요. 그걸 캡처해서 본인들끼리 돌려봐요. 얘가 여기에 있더라, 얘 예쁘더라 이러면서.

행비 = 사실 국회가 '미투'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게 법안 처리된 걸로 딱 증명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많은 법안이 통과된 것들이 거의 없거든요.
([연관기사] 갈 길 먼 ‘미투’ 법제화…생존자들이 말하는 ‘미투’ 응답법)
'미투' 열풍에 대해 국회는 응답하지 않는 것으로 응답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국회 페미’가 국회 여성 화장실에 부착했던 캠페인 전단.
■ “여성은 가장 오랫동안 외면된 정치 현안”

행비 = 사실 '여성 문제'라고 하는 것들은 '사회 문제'인데, 국회 안에서는 사소하게 취급하며 주변화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여가위가 해야 할 일, 여성 의원의 일, 여가부의 일로 계속 미뤄두는 거예요. 내 일은 아니라는 거죠. 이런 이슈에 관해 얘기가 나오면 남성 의원들은 "그건 국회가 아니라 여성단체가 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러면서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던져줄 생각만 하는 거예요.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회 문제라는 감각이 전혀 없는 거죠.

이도 = 얼마 전 광화문에서 시위가 있었잖아요. 수만 명이 동시에 법사위 의원들에게 '문자 총공'을 했다고 하는데, 성명 하나 발표를 안 해요. 개개인의 입법기관들에 갔는데도 피드백 하나 없잖아요.

행비 = 만약 유권자 10만 명이 넘게 모여 단체 문제를 보냈다면, 분명 뭔가 얘기를 했을 텐데. 사회적으로 페미니스트 여성들을 배제하고, 없어도 아무런 지장도 타격도 안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을 안 하는 거죠. 유권자로서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탈린 =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까지 했으니 국회에서 응답하겠지 기대하실 텐데, 오히려 국회는 후진적이고 더 가부장적이잖아요. 가책이 생기죠. 결정권이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경우 대부분 응답할 마음도 의지도 없으니까.

불법촬영과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6번째 집회가 2018년 12월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 대한민국 국회, 견고한 성차별의 현장

행비 = 저는 근본적인 원인이, 국회가 남성 중심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다수가 남성 의원이고, 지역구를 가진 것도 거의 남성 의원이고. 보좌진도 보좌관, 비서관처럼 '관'을 단 사람들은 거의 다 남성이고. 여성 보좌관은 전체의 7%에 불과해요. 근데 8~9급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50% 이상. 다 행정비서로만 역할이 갇혀 있거든요.

그러니까 법안이 나왔을 때 성평등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전혀 정책적 대화를 나눌 상대도,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 존재도 아닌 거예요. 온라인에서 논쟁할 때는 일대일로 부딪혀서 설명하는 게 가능한데, 국회에서는 안되는 거죠. 여성들은 다 하급이니까. 같이 얘기하면 "이건 여성혐오가 아니다", "이건 성추행이라 볼 수 없다"는 식의 남성들의 논리가 승리하는 상황인 거죠.

이도 = 여성은 암묵적으로 급수 제한 같은 게 있어요. 올라가 봤자 8급? 처음부터 정책 담당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면요. 열과 성을 다해 일하면 보장도 있어야 하는데 미래가 없는 거죠.

직급별 국회 여성 보좌진 비율을 보면 8~9급의 경우 50~60%로 높다가 7급부터 39.2%로 내려간다. 5급 이상은 여성 비율이 각각 7.7%, 20.4%에 불과하다.
행비 = 남성과 여성이 대부분 동등한 수준의 학력과 경험을 갖추고 국회에 들어오지만, 다른 출발선에 서거든요. 남성들은 빨리 급수를 올려주고 여성들은 행정 비서 역할을 시켜요. 회계랑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돌봐줘야 하는 그런 역할.

기자 = 어머니라니요?

행비 = "모성을 가져야 한다"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해요. 제가 국회에서 처음 급수를 단 공무원이 됐을 때 대학을 갓 졸업한 여성이 인턴으로 들어왔는데. 이 친구에게 열심히 일하면 너도 보좌관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배운 거 살려서 빨리 나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어요. 능력으로 인정받아서 승진할 거라는 희망이 아예 여성에게는 차단된 사회인 거죠.

기자 = 그 정도로 불평등한 상황인지는 몰랐네요.

행비 = 국회에서 일하는 남성들은 학생운동 경험이 있다든지, 사회에 대한 열의가 있어서 뭔가 바꿔보기 위해서 들어온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성평등에 대해 본인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본인은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나는 잘못한 게 없고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서 더 변화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구조인 것 같아요.


‘국회 페미’가 개설한 페이스북 페이지, ‘기울어진 여의도동 1번지 대나무숲’ (https://www.facebook.com/pg/womeninkna/) 게시글.
■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기자 = 의원들 상황은 어떤가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여성 위상이 올라간 게 사실이잖아요.

행비 = 여성 의원, 특히 비례대표들은 여성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한 경우가 많죠. 근데 일단 국회에 들어오면, 몸집을 키우기 위해 안전, 국방 이런 이슈들을 가지고 가야 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여성 이슈와 법안을 좀 멀리하는 경향도 생기는 것 같아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성처럼 돼야 하는 그런 면도 있어요. 제가 아는 어떤 의원은 당선된 다음 옷부터 시작해서 완전히 남성처럼 보이도록 하시더라고요. 살아남기 위해서.

이도 = 사회적 남성이 되고자 하는 거죠. 권력을 얻는 데 더 도움이 되니까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018년 8월 22일 ‘미투’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탈린 = 그러지 않으면 진짜 살아남기 힘들어요. 사실 여성 의원들은 경험이 있으니 성차별에 대한 의식은 더 높겠죠. 근데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국회에서 10년, 20년 일한 남자 보좌관들이 많아요. 의원이 "우리 이런 거(성차별 이슈)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얘기했을 때, "의원님이 성장하시려면 이런 이슈보다 다른 걸 하시는 게 낫습니다" 이렇게 가는 경우가 있어요.

행비 = 여성 의원이기 때문에 남자 보좌관들이 존중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그냥 뭘 모르시는 분. 이런 식으로. 남성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이도 = 국회에 그런 말이 있어요. 여성 의원이 여성 보좌관을 채용하면 날개 한쪽을 잃는 것과 같다고. 보좌관 2명이 다 여성이면 여성 의원한테 날개가 없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 “‘여성의 몫’ 확대, 여성만을 위한 것 아니다”

행비 = 여성 의원이 너무 소수이거든요. 51명, 전체 300명의 17%밖에 안돼서 무시해도 괜찮은 구성원으로 주변화돼 있는데. 여성 의원이 훨씬 더 많아지고 그들이 사회적 남성이 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이 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탈린 = 여성 대표성이 확대되면 성평등 의제에 대한 국회 내의 목소리가 좀 더 커질 거고, 그 의제가 메인이 됐을 때 남자 의원들도 많이 숟가락을 얹을 수도 있고, 진짜 힘을 보탤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지금보다는 좀 수월한 상태가 될 테니까요.

국회 본회의장 의원 출결 및 표결 현황판
행비 = 여성이니까 편의를 봐주자는 게 아니에요. 동등한 수준의 경험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도 지난 지방선거 때처럼 여성이 공천을 받는 데는 분명한 제약이 있잖아요. 여성 대표성을 늘리자는 건 특혜가 아니라 분명히 가져와야 하는 몫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도 = 역차별이라고 하죠, 일각에서는. 근데 저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역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행비 = 여성 의원이 늘어나는 건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니라 국회의 다양성이 커지는 거예요. 좀 더 다양한 시민과 가치관을 대표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사회적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합니다.

‘기울어진 여의도동 1번지 대나무숲’을 형상화한 이미지.
■ 국회에는 ‘페미니스트’가 필요하다

기자 = 국회에 큰 변화가 없는 이상 앞으로도 '국회 페미' 활동이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행비 = 성차별 의제에 대해서 국민들의 갈등이 높기 때문에, 아마 국회는 무시하며 응답하지 않는 게 자기들을 위해 좀 더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닫혀버려서 새로운 걸 시도하기 더 어려운 형편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문제를 의제화하고 뉴스에 많이 나오는 것밖에 현실적 방법이 없지 않을까 해요. 저희가 이 자리에 나온 것도 그래서고.

탈린 = 저희 활동이 다 화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묻히기도 하고. 국회에 일하는 여성들이 저희 모임에 다 소속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국회 안의 현실을 시민들께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비 = 사회 변화를 좀 더 실효적으로 완성하려면 국회가 바뀌어야 해요. 국회의 잘못된 구조에 대해 안에 있는 저희도 열심히 이야기하고, 시민들과 함께 2019년에는 좀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서, "관련 법이 미비하여" "여가위원들의 자질과 협상력이 부족하여" 어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도 = 저는 어쨌든 국회가 제대로 응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은 이미 시대정신으로 가고 있다고 봐요. 그게 얼마나 빨리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국회가 지금은 외면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귀를 기울이고 반응할 거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