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외교·정보 관계자 노리는 ‘아바나 증후군’…“극초단파 공격” 배후 찾기 나서_포르투갈에서 포커를 치다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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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해리스 부통령 베트남 방문 3시간 지연…'아바나 증후군' 때문이었다

지난달(8월) 24일 오후 4시쯤, 동남아시아를 순방 중이던 미국 해리스 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베트남으로 출발하려던 비행기에 갑자기 타지 않았습니다.

베트남 주재 미 대사관은 “최근 하노이에서 ‘이상 건강 징후(anomalous health incident)’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접하고, 부통령 순방 대표단이 출발을 연기했다”고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상 건강 징후’라는 표현은 그동안 미국 정부가 '아바나 증후군'을 지칭할 때 자주 써왔던 용어였습니다.

언론을 통해 “지난 주말 베트남 수도 하노이 주재 미 대사관에서 2명의 외교관이 아바나 증후군 의심 증상을 호소했다”고 보도됐는데, 이들이 재택근무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미국 정부의 우려가 커졌을 것이란 추측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결국 해리스 부통령은 예정 시각보다 3시간 지난 오후 7시 반쯤 싱가포르 파야레바르 공군 기지에서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미 국무부는 “신중한 평가 끝에 부통령의 순방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백악관도 "해리스 부통령의 건강은 아무 이상 없다"고 밝혔습니다.


도대체 '아바나 증후군'이 뭐길래…美 외교관·정보기관 당국자 노린다?

여기서 '아바나'는 쿠바의 수도입니다. 2016년 쿠바 수도 아바나에 근무 중인 주쿠바 미 대사가 이상 증상을 호소한 게 처음 보고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일부에선 '쿠바 괴질'이라고도 불립니다.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에 따르면, '아바나 증후군'은 어지러움과 심한 두통, 메스꺼움, 청력 상실, 기억 상실 증상 등을 포함합니다.

쿠바에서의 첫 발견 뒤 미국은 이듬해 아바나 주재 직원들을 대거 철수시키고, 미국 주재 쿠바 외교관들을 추방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쿠바 내 캐나다 외교관 일부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면서 캐나다도 주재 직원 수를 줄였습니다.

하지만 유사 증상은 이후 중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전 세계에서 근무 중인 미국 외교관과 정보기관 당국자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지난해엔 미 국가안보회의(NSC) 당국자가 백악관 근처에서 비슷한 증세를 호소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의심 사례가 발견됐습니다.

올해도 독일 베를린과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유사한 건강 이상 증상을 호소하면서 미국 정부가 자체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1월 초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20명이 넘는 미 대사관 직원들이 이 미확인 뇌 질환인 아바나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을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고, 2016년 이래로 미국 내외에서 외교관·정보 요원과 그 가족 200여 명이 아바나 증후군을 겪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해리스 부통령과 같은 미 행정부 최고위층까지 이 증후군의 영향권에 놓인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며 미 정부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극초단파'·쿠바 '음파 공격' 의심…쿠바 과학자들 "과학적 증거 없다"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미 국립과학원은 아바나 증후군이 극초단파 때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아바나 증후군이 ‘극초단파(microwave)’에 의해 발생했고, 미 외교관과 정보 요원들을 겨냥한 계획적이고 지능적인 공격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해 12월 사건 대응을 위해 미 국가정보국장실(ODNI), CIA(중앙정보국) 등 17개 미 정보기관의 전문가와 정보 분석원, 의료 전문가 등이 총출동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습니다.

지난 7월 하순부터는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쫓았던 CIA 베테랑 요원을 내부 태스크포스 수장에 앉히고, 올 3월 취임한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이 사안과 관련해 매일 브리핑을 받는 등 조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습니다.

지난 6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아바나 증후군 질병의 원인에 대해 광범위한 검토를 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속도를 내는 분위깁니다.

증상이 나타난 사람들 중엔 곤충 울음이나 금속을 가는 것과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도 나와, 음파 등을 통한 공격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습니다.

태스크포스는 러시아 첩보 조직인 정찰총국(GRU)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합동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5~6년 전부터 극초단파로 사람의 뇌를 노린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극초단파는 사람의 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측두엽에 전달돼 뇌 신경을 손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미 정보 당국은 직접적인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고 러시아 정부도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태스크포스는 다른 한편으로는 '음파 공격'의 결과라며 쿠바를 지목하기도 했는데, 쿠바 역시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최근 들어서도, 쿠바과학원 소속 각 분야 학자 20여 명은 13일(현지시간) 관영매체를 통해 아바나 증후군과 관련한 49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고 "'미스터리한 증후군'에 대한 서술은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미 외교관 등이 겪은 증상들이 어떤 공격으로 인한 것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며 "쿠바 경찰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의 수사당국도 '공격'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증상을 앓은 외교관의 뇌에서 '뇌 이상' 증상이 발견됐다는 미 국립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쿠바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형태의 에너지도 선택적으로 뇌 손상을 일으킬 수는 없다"고 반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