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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방금 윤 특파원도 언급한 것처럼,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이라크인들일 것입니다. 특히 주변 나라들로 피신한 난민들의 고통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요. 전쟁발발 5년이 지나도록 이라크 상황은 안정되지 않고, 현 거주국에서 난민 대우도 받지 못하다 보니 이들은 그야말로 갈 곳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정창준 특파원이 요르단 암만에서 떠돌고 있는 이라크 난민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전쟁은 20대 청년에게 평생 타야 할 휠체어를 안겨줬습니다. 올해 26살의 무스타파씨... 이라크전 발발 일주일 여 뒤.. 옥상에서 안테나를 고치다가 다국적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하반신 불구가 됐습니다. 2년 전 가족을 떠나 요르단에서 구호단체의 지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의미 없는 삶을 그저 연장하고 있다고 절망합니다. <인터뷰> 무스타파(이라크 난민): “나에게 불구를 안겨준 미군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며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어디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무스타파씨에게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암만 구시가지에 있는 광장.. 1년 전만 해도 이라크 난민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라크 거리로 불릴 만큼 난민들의 터전이었던 상가 거리도 지금은 이라크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향의 맛을 찾는 이라크인들로 가득하던 식당은 썰렁해졌습니다. 명소였던 또 다른 이라크 식당은 아예 문을 닫았습니다. 경찰이 불법체류 이라크 난민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 결과입니다. <녹취> 알 살티(요르단 상인): “예전엔 이라크인들이 불법체류자라도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1년 전부터 취업비자가 없으면 일을 못하게 됐고, 요르단을 떠나야합니다.” 이렇다보니 난민들은 집에서 은둔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이라크에선 보석상을 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했던 무니르씨 가족, 가재도구를 팔아 천 여 만원을 가지고 왔지만 타향살이 3년 만에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특히 체류기간을 넘겨 가족 한사람 당 매일 2천 원에 이르는 벌금마저 쌓이고 있습니다. 난민지위를 신청했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습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무니르(이라크 난민):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붙잡히면 교도소에 가거나 이라크로 쫓겨날 수 있어요.” 특히 올해 6살인 딸 나라스는 신체적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는 전쟁 후유증까지 겪고 있습니다. <녹취> 아디야프(무니르씨 부인): “의사들은 전쟁에 따른 오염의 결과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도심의 시장 한 켠. 이라크 여성들이 담배 등을 팔며 행상에 나섭니다. 여성들에겐 관대할 것이라는 기대로 위험을 감수하고 거리로 나온 것입니다. 몰래 일자리를 찾는 난민들도 많습니다. 올해 27살의 모하마드 군은 상점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불법 취업이다 보니 요르단인들이 받는 임금보다 턱없이 낮을 수밖에 없지만 그나마 일을 할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인터뷰> 알리(이라크 난민): “요르단인들이 40여 만 원을 받는 일이면 이라크 사람들은 10여 만 원을 받아요. 불법취업이기 때문이지만 일종의 착취입니다.” 현재 주변국으로 피신한 이라크 난민은 250만 여명입니다. 전쟁 직후 난민 유입을 허용했던 이웃 국가들도 경제적 악영향으로 난민들의 귀향을 압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곳 암만에 사는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이라크 난민입니다. 이 같은 대규모 난민유입은 집값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이라크인을 바라보는 요르단인의 시각도 그리 곱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돌아갈 곳은 없습니다. 이라크는 지금도 준 전시상황이라고 난민들은 말합니다. <녹취> 가산 모하마드(이라크 주민): “바그다드 뿐 아니라 북부지역까지 폭탄테러가 일어나는 것으로 볼 때 낙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치논쟁은 거리에서 일어나는 현실이 반영돼야 합니다.” 하지만 미군과 이라크 정부는 치안상황이 안정되고 있다며 난민들의 귀향을 권고합니다. <인터뷰> 살라 알 사마라이(이라크 난민기구 대표): ”이라크엔 안전한 곳이 없어요. 이라크 정부는 대단히 허약해서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습니다.” 특히 극심해지고 있는 종파갈등은 난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전쟁직후 남편과 아들이 다른 종파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주무리씨 가족. 이 같은 악몽은 고향을 공포의 대상으로 바꿨습니다. <녹취> 주무리(이라크 난민): “내 집이 공격을 당했고, 당시 임신 4개월이었는데 아이까지 유산했죠. 이런 모든 상황을 이제는 잊고 싶습니다.” 재건에 대한 기대도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고급두뇌들이 이라크를 탈출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아델 알 카미스(이라크 무스타리아 대학 교수): “누가 현재의 이라크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의사와 교사 등 고급인력의 70%가 이라크를 떠났습니다.” 대부분의 이라크 난민들은 귀향을 죽음에 비유합니다. 하지만 일자리가 허용되지 않아 생계수단이 막막해지면서 생명을 담보로 한 불가피한 선택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엔지니어인 사미르씨는 이라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학 1학년생인 큰 딸 자하라는 학비를 대지 못 해 학교를 그만두면서 결국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도 안전이 걱정되지만 막막한 생계에 말리지도 못합니다. <인터뷰> 사미르(이라크 난민): “여기서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거주비자가 없으니 당국이 추적하죠.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로 가든지 이라크로 돌아갈 수밖에 없죠.”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사무실에는 추방을 면하기 위해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는 이라크인들이 모여듭니다. 하지만 요르단에서만 난민요건을 인정받은 이라크 난민은 고작 5만여 명, 이 가운데 1%만이 재정착에 성공하는 형편입니다. <인터뷰> 이무란 리자(UNHCR암만본부 대표): “이라크 난민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불확실성입니다. 미래가 어찌될지 이라크 상황이 어찌될 지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전쟁이 일어난 지 5년. 난민들은 귀향의 꿈을 하나 둘 포기하고 있습니다. 타향살이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비참한 생활고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에 참여한 나라들 어느 누구도 갈 곳 없이 방황하는 난민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