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까지 같이 가줄게”…동성애자·앨라이 우정 담은 ‘퀴어 마이 프렌즈’_스파 파크 카지노_krvip

“지옥까지 같이 가줄게”…동성애자·앨라이 우정 담은 ‘퀴어 마이 프렌즈’_빙 광고 지원_krvip

다큐멘터리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의 주인공 아현(왼쪽)과 강원(오른쪽). 영화사 그램 제공.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의 우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는 옛 드라마 대사가 떠오르는 감독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내가 오빠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면 어떨 것 같아?"

'카메라만 들고 쫓아다니면 영화가 되는 줄 알았던' 20대 초반, 서아현 감독은 기독교 대학에서 만난 친한 오빠 강원의 삶을 기록하기로 마음먹는다. 26살 생일 강원이 SNS에 올린 커밍아웃 게시물이 계기였다. 하나님을 믿는 동성애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아현에겐 세계가 뒤집히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나답게 살아도 괜찮다는 해방감이 찾아왔다.

어쩌면 내 친구의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은 강원이 미군에 입대하면서 구체화됐다. 정체성을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했는데, 정작 주한미군이 돼 돌아온 강원의 처지를 보며 '이건 영화적 삶'이라고 느꼈다. 무작정 카메라를 들었다. 둘만의 '소소한' 프로젝트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강원의 인생 굴곡을 따라 촬영은 서울과 독일, 뉴욕을 오가며 장장 7년간 이어졌다. 오빠 이야기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던 포부도 시간과 함께 사그러들었다. 대신 영화는 '우리 이야기'가 됐다. 타인의 인생을 그럴싸한 해피엔딩과 함께 3인칭 시점으로 그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감독은 1인칭 시점을 마다치 않고 카메라 앞에 서 성 소수자 앨라이(Ally·연대자)이자 다큐멘터리 창작자로서의 고민과 변화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았다. 감독 본인이 '실패하더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실패하는 성장담'이라 부르는 이 다큐멘터리는 88년생 게이 강원의 이야기이자, 89년생 '앨라이' 아현 두 사람의 이야기다.

다큐멘터리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의 주인공이자 연출자인 손아현 감독. 영화사 그램 제공.
"커밍아웃의 두려움은 없었어?" "게이면서 크리스천인 걸 받아들인 게 신기해." 제작진 사이에서 '질문 살인마'라는 별명이 있었을 만큼, 촬영 초기 아슬아슬한 질문을 쏟아내던 아현의 물음표는 점차 자기 자신을 향한다. 함께 퀴어 퍼레이드를 찾았다가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반대 집회 참가자들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강원이 없었더라면 나도 저 반대편에 있지 않았을까. 호기롭게 강원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내가 지옥까지 같이 가 줄게' 외치던 모습도 어쩌면 '객기'는 아니었을까.

"처음엔 제가 완벽한 친구이자 앨라이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착각을 하면서 영화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영화를 만들면서 오히려 강원을 성 소수자라는 박스 안에 가두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강원에겐 여러 가지 정체성이 있고, 커밍아웃을 했다고 해서 그 박스 안에 가둘 수 있는 게 아닌데…."

강원과 '7년간 실컷 지지고 볶는' 시간 동안, 타인을 알아간다는 건 결국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아현은 깨닫는다. 그렇게 발견한 '나'는? 강원 못지 않게 '이상한 사람'이다. 영화 찍다 생긴 빚만 수천만 원인, 집안의 천덕꾸러기이자 비혼주의 비정규직 여성. 영화의 제목이 '프렌드(friend)'가 아닌 '프렌즈(friends)'인 이유다.

다큐멘터리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의 한 장면. 영화사 그램 제공.
"스코틀랜드 속담에 '사람만큼 이상한 존재는 없다(There's nowt so queer as folk)'라는 말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어요. 성 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인 줄만 알았는데,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상한 구석을 원래 '퀴어'라고 부르더라고요."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으면서 동시에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상한 면. 우리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런 면을 '퀴어'라고 한다면, 이상한 두 친구가 만나서 서로 지지고 볶으며 영화를 만드는 이상한 다큐멘터리의 제목도 '퀴어 마이 프렌즈'여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처럼 인생이 바닥을 칠 때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믿어주는 서로에게 기댈 수 있다면, 제멋대로 흐르는 삶을 좀 더 수월하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친구와 함께 영화를 완성한 두 사람의 말이다.

"우리가 멀리에서 찾는 '공동체 사회가 우리에게 어떻게 해 줘야 한다', '어떤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이 작은 관계 안에서 실험해 보고 도전해 보는 과정을 담고 싶었어요. 사회적 이슈를 부각해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관객분들이 사회적 이슈를 좀 더 자연스럽게 '내 친구도 이런 과정을 겪을 수 있겠구나' 하고 좀 더 정서적인 부분에서 전달받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