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회 부회장 줄게, 출마하지마”…정치와 체육의 불편한 동행_내사랑 빙고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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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체육 분리 공염불..KBS 보도로 실체 드러나

일반 시민들에게는 남의 일 정도로 여겨져 온 지역 체육회장 선거.

지자체장이 당연직 체육회장을 맡던 시절, 예산을 쥐고 있는 정치권에 체육회가 휘둘리며 각종 문제가 생겼고,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해 2020년 체육회장 민선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특유의 단결력으로 조직화가 쉽고,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대 예산을 집행하는 '알짜배기' 체육회는 여전히 정치인들의 '소유욕'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회장은 선거로 뽑지만, 여전히 예산 대부분을 지자체에 의존하고 있는 체육회는 지난 민선 1기 체육회장 선거에서 지자체장 측근을 대거 배출하며 '정치권 개입' 우려를 샀습니다.

그러나 이번 KBS 보도처럼 직접적으로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은 처음입니다.

■ "체육회 부회장 시켜줄테니, 구 체육회장 출마 접어달라"

대전시 서구 체육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전 대전시의원 김경시 후보는 지난 9일, 대전 서구청장실에서 서철모 대전 서구청장을 만났습니다.

둘 사이의 녹취록에는 서철모 구청장이 김 후보에게 대전 서구 체육회장 선거 불출마를 대가로 '대전시 체육회 부회장' 자리를 주기로 조율됐다는 발언이 등장합니다.

이 자리에서 서철모 구청장은 이장우 대전시장과 이승찬 대전시 체육회장의 실명을 언급하며, 이미 조율을 다 마쳤다고 설명합니다.

[서철모/대전 서구청장 : "어제 이승찬 (대전시체육회) 회장하고 얘기를 좀 했습니다. 예우에 맞게 시 체육회 부회장 하시는 걸로 조율을 다 해놨어요."]
[서철모/대전 서구청장 : "이승찬 회장이 시장님한테 다 얘기해서 조율된 거예요. 저도 어제 연락을 받고 가부만 결정해달라고…."]

두 사람의 15분 남짓한 대화에서 이장우 대전시장은 6번, 이승찬 대전시 체육회장은 8번이나 등장합니다.

대화 내내 서철모 구청장은 반복적으로 대전 서구체육회장 선거 불출마와 대전시 체육회 부회장직 수락을 거듭 권유했고, 김 후보는 자신이 대전시 생활체조연합회장을 지내는 등 다른 후보에 비해 체육계 경력이 더 많은데 왜 자신을 배제하냐며 섭섭함을 토로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철모 구청장은 "상황이 정리됐다는 정무특보의 말을 듣고 위로해주기 위해 부른 것"이라며 "대전시장이나 시 체육회장과는 이야기된 바가 없고, 좀 과장되게 말한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 "부당한 불출마 권유 또 있어."… 서철모 구청장 "지방선거 때 상대 후보 캠프 관계자, 출마는 경우 아니야"

김 후보를 포함해 대전 서구 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모두 3명, 이 중 또 다른 후보도 서철모 구청장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불출마 권유를 받았다는 주장과 정황도 나왔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대전 서구 체육회 인사는 "서철모 구청장이 다른 후보에게도 측근을 보내 사퇴를 권유했다"며 "선거 제도가 도입되기 전 장종태 전 서구청장이 당연직 체육회장일 때 부회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불출마를 요구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10월 말 열린 대전 서구체육회 이사회에 서철모 구청장이 직접 참석해 일부 직원의 해고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서철모 구청장의 정무특보가 대의원이자 유권자인 종목별 회장들을 만나고 다닌 것도 논란이 됐습니다. 정무특보는 이에 대해 "민원을 듣고 해결해 주려는 차원에서 만났다"고 해명했지만 예산을 지원받는 입장인 체육회 관계자들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선관위도 정무특보의 행보가 선거에 영향을 줬는지에 대해 당사자를 불러 조사했습니다.

또 다른 후보자도 측근으로부터 사퇴 권유를 받았다는 추가 폭로에 대해 서철모 구청장은 "해당 후보자가 지방선거에서 상대 후보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라 체육회장 출마는 경우가 아니라고 말했을 뿐"이라며 "사무국장 교체 요구도 같은 맥락"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대전 서구에서는 정치와 체육이 분리되지 않았고 분리할 생각이 없음을 해명을 통해 오히려 확실하게 밝힌 셈입니다.

앞서 서철모 구청장이 이번 사안을 '조율'했다고 말한 이장우 대전시장은 논란이 되자 "체육회장 선거에 관여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민주당 소속 대전시 서구의원들이 서철모 대전 서구청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 체육계 '개탄'..정치권 '사퇴 요구'..시민단체 '쓴소리'

논란 속에 지난 15일, 대전시 체육회장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최대 쟁점은 KBS 보도로 촉발된 '선거 개입' 논란이었습니다. 투표에 앞서 진행된 정견발표에서 상대 후보들은 KBS 보도를 언급하며 체육회장 선거가 정치권으로 독립되어야 한다며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재선에 도전한 현 체육회장 이승찬 후보는 흑색선전이라고 주장했지만, 참석한 이들 모두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체육회장 자리가 정치권과 자치단체장들의 낙하산, 보은의 자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데 뜻을 달리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파문은 체육계를 넘어 지역사회 전체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습니다.
대전 서구의회 의원들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서철모 구청장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민주당 소속 서구의원 11명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중립 의무를 무시한 서철모 구청장은 사퇴하고 관계기관은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대전참여연대도 자치구 구청장이 시장의 심부름을 수행한 것이고, 구청장이나 시장이 대전시 체육회의 부회장 자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표현한 것이라며 체육회 관계자들과 시민에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라고 주장했습니다.

■ "1980년대 전두환 보도지침" 대전시 대응, 또 다른 논란

이런 가운데 이번 일과 아무런 상황이 없다던 대전시의 황당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취재진이 대전 서구를 상대로 취재 중이던 지난 14일 오후, 갑자기 대전시 홍보담당관 명의로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가 전송됐습니다.

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대전시와 관련된 허위 내용을 유포할 경우 엄중히 대응할 방침이라며
관련한 형법 조항까지 근거로 달아 통보 형식으로 문자를 발송했습니다.


취재 사실과 내용을 몰랐던 대부분 기자는 처음에 어리둥절했다가, KBS 뉴스를 보고서야 상황을 이해했다고 전해왔습니다. 관공서가 출입 기자들을 상대로 이런 공지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결과적으로 KBS 단독 보도를 미리 파악하고 출입 기자들에게 법 조항을 들이대며 압박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역의 한 언론에서는 "1980년대 전두환 시절 보도지침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반응을 내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대전시는 이튿날 또다시 문자 메시지를 통해 "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허위내용이 회자 되자 대전시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환기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해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민언련을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는 "권력이 언론의 취재 활동을 제한하고자 하는 명백한 언론 자유의 침해로 볼 수 있으며 단순 공지가 아닌 협박으로 읽힐 수 있다"며 언론과 시민에게 공개 사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 본격적인 수사 시작..'윗선' 어디까지인가 '관건'

서철모 구청장의 불출마 권유를 주장한 김경시 후보는 선관위에 구청장과 측근 등을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신고했습니다.

김 후보는 서철모 구청장의 불출마 권유가 지난 9월에도 있었다며, 자신이 먼저 후보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서 구청장의 해명은 거짓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김 후보가 녹취록 등 증거물을 제출하면서 선관위 조사는 급물살을 탈 전망입니다.

선관위 조사는 서철모 구청장의 발언이 위탁선거법 58조 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두고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 과정에 공모한 사람이 있는지를 더 조사해 법 위반이 확인되면 수사기관에 고발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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