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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도 기구한 운명의 난민들이 있습니다. 19세기 네팔에서 부탄으로 이주해 살다가 1990년 종교적인 이유로 다시 네팔로 쫓겨난 로트샴파스족이 그들인데요. 12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네팔의 후손이지만 네팔 정부에서도 받아 주지 않아서 벌써 15년째 난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상 땅 ‘네팔’과 태어난 땅 ‘부탄’에서 모두 버림받은 이들의 딱한 사연을 기현정 순회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히말라야의 ‘행복한 소왕국’, ‘작은 실낙원’라 불리는 부탄, 1인당 국민소득 백3십만 원에 평균수명이 55살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비즈니스위크가 조사한 행복한 나라 8위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나라 ‘부탄’ 주민의 5분의 1은 아이러니하게도 고향을 등지고 네팔과 인도 등지로 쫓겨나 난민 신세로 살고 있습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600킬로미터 떨어진 자파 지역. 연료가 부족해 태양열을 이용해 물 끊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난민촌입니다. 카르까바하두르 구룽 씨가 아들, 며느리 손녀까지 모두 열다섯 식구와 함께 지내는 집입니다. 다섯 명이 살기엔 턱없이 비좁아 보이는 4평 남짓한 집,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지붕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고 벽 창호는 신문지가 대신합니다. 네팔 후손이지만 선대부터 부탄에서 살았던 구룽 씨는 지난 93년 전 재산을 빼앗긴 채 부탄에서 쫓겨났습니다. 네팔어를 사용하고 부탄 국교인 불교로 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인터뷰>카르까바하두르 구룽(부탄 난민/57세) : "할아버지도 부탄에서 태어나고 나도 부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던 우리 아이들도 도망올 때 데리고 나왔습니다." 곧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고향땅을 떠나온지 벌써 15년, 어린 아들 딸들은 난민촌에서 결혼까지 해 이곳에서 태어난 손녀들까지 생겨났습니다. 구룽 씨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손녀들과 함께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터뷰>카르까바하두르 구룽(부탄 난민/57세) : "만약 네팔 정부에서 네팔 시민으로 받아들여 준 다해도 이곳에서는 살기 싫습니다. 우리는 부탄으로 꼭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룽 씨의 아들 룩 바두르 씨, 난민촌에 넘어와 성인이 된 그는 이제 부탄보다 이곳 생활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처럼 부탄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인터뷰>룩 바두르 구룽(24살) : "만약에 부탄에 돌아간다면 정부에서 우리를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어요." 원래 네팔 후손이지만 19세기에 부탄에 이주해 살다가 종교, 문화 차이로 강제로 쫓겨난 민족, 구룽 씨 가족은 로트샴파스족입니다. 부탄 왕실은 처음엔 로트샴파스족에게 시민권에다 정부 관직 자리까지 내주며 포용정책을 썼습니다. 그러나 로트샴파스족이 부탄 인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급격히 늘어나자, 위기의식을 느낀 부탄 왕실은 인종청소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부터 부탄에서 쫓겨나기 시작한 로트샴파스족은 모두 12만 명. 이들은 네팔 정부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난민촌 7곳에 분산수용돼 있습니다. 이곳 난민촌에서 생활하는 부탄 난민들은 농사를 짓거나 어떤 일정한 직업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저 UN에서 지급해주는 생필품으로 하루하루 무료한 일상을 보낼 뿐입니다. 한창 일할 나이의 건장한 남성들도 아침부터 하릴없이 아낙네들과 수다를 떨거나 때가 되면 보급소에서 먹을거리를 받아오는 일이 전부입니다. 난민촌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공간은 학교입니다. 이 학교에선 6살부터 16살까지 2천5백 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낯선 취재진의 방문에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로 학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하지만 호랑이 선생님의 불호령 한마디에 쏜살같이 교실 안으로 들어가고, 벗어던졌던 신발까지 가지런히 정리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들입니다. 부탄으로 돌아갈지, 계속 네팔에서 살아갈지, 아니면 미국, 제3의 나라로 가야할지, 자신들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난민촌 아이들에겐 ‘영어’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난민촌에서 태어나 부탄을 가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지만 돌아가고 싶은 나라는 부모의 고향, 부탄이었습니다. <인터뷰>케임 프라사더 아차려(난민촌 어린이) :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니고 부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부모님은 부탄에서 태어났지 미국에서 태어난 게 아니거든요." 아이들에게 더 큰 절망은 미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직업이 없는 난민촌에서 생활하다 보니 아이들이 알고 있는 직업은 선생님, 난민 2세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인 셈입니다. <인터뷰>텍 바하도르 구룽(난민 캠프 학교 주임) : "아이들은 자기가 봐 온 사람 중에 제일 높은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공부를 마친 뒤에 자신들이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는게 현실이죠." 이처럼 미래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부탄 난민에 대해 미 국무부는 최근 전원 수용의사를 밝혔습니다. 당장 다음달부터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이주절차 센터를 열고 난민들의 재정착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나 난민촌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인터뷰>텍 바하도르 구룽(난민 캠프 학교 주임) : "미국에 간다고 해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나가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건 미국이 아닌 부탄으로의 귀향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미국에 간다 해도 난민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인터뷰>마노지 쿠루 라이(난민 캠프 대표) : "미국에 가서도 우리에게 어떤 일을 시키는지, 어디에서 살 수 있게 해주는 지, 그리고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 줄 것인 지 모릅니다. 이 모든 문제가 해결돼야만 미국에 갈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트 워치는 부탄으로 돌아가는 것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일부 난민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려는 난민을 협박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난민촌 내부에서도 미래를 둘러싼 갈등이 적지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조상 땅에서도, 자신들이 태어난 땅에서도 모두 버림받은 부탄 난민들. 이주를 허용한 미국마저 마땅치 않아 하는 이들의 15년 난민 생활의 끝이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