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개발 60년에 얽힌 일화들_베토 실바와 아데미르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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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기적적인 성장을 집대성한 '한국 경제 60년사' 책자에 국토 개발에 얽힌 일화들이 자세히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책자에는 정부가 1980년대 후반 토지공개념제도 도입을 놓고 외국 사례가 없어 난처했던 사례도 기술돼 있다. 1988년에 제3차 부동산 투기가 발생하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내각에 특별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으며, 나웅배 당시 부총리가 그해 8월 토지 투기를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9개월 이내에 마련하는 지침을 국토개발연구원에 내렸다. 이에 학계, 연구소, 중앙부처 공무원 등이 대거 참여한 토지공개념연구위원회가 구성됐는데, 당시 내무부에 있던 전국 토지대장 전산자료를 활용해 토지소유 실태를 분석해보니 놀랍게도 토지소유자의 5%가 전체 토지의 65.2%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토지공개념제도의 하나로 고려한 택지소유상한제 사례를 외국에서 찾을 수가 없어 곤혹스런 상황에 빠졌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인도의 25개 주 중 17개 중에서 택지소유상한제를 한 번 실시한 적이 있다는 정도만 알아냈을 뿐이었다. 이를 참작해 설문 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택지소유 상한선으로 100평이 좋겠다고 답했으며, 이 위원회는 도시의 쾌적성과 향후 소득이 향상됐을 경우를 고려해 200평을 택지 소유 상한으로 결정했다. 토지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발 이익의 환수도 중요한 정책 과제였다. 당시 투기가 제일 심했던 토지가 임야였다. 그래서 일본 사례를 참작하고 농지매매증명제도를 적용해 도시 근교에서 임야를 매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 책자는 "토지공개념제도는 토지 및 주택시장 안정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자본주의적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측면도 있었다"면서 "토지공개념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택지소유상환제 등이 폐지되는 등 역사적으로 나름대로 기능을 다하고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화도 재미있다. 1964년 박 전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했을 당시 에르하르트 서독 수상이 "경제발전은 공장 건설뿐만 아니라 도로나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기반시설이 정비돼야 한다"면서 "나는 아우토반을 이용할 때 마음속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서독의 라인강의 기적이 고속도로 건설에 기반을 뒀다는 사실을 주목한 박 전 대통령은 본-쾰른 구간을 수차례 왕복하면서 고속도로를 관찰했다. 경부고속도로의 공사비 승인 시에도 당초 330억원으로 책정된 사업비가 공사 시작 후 109억원 증액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당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이 불투명해질 상황이었으나 박 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 승인해줬다. 또한 추풍령 터널이 포함된 대전-대구 구간 공사 때 박 전 대통령은 직접 사업 담당 직원들과 함께 헬기를 타고 현장 답사를 예닐곱 번 다녔을 정도로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중부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된 일화도 이채롭다.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 중부고속도로 영향권 내 인구만 1천200만명에 달하고 하루 이용차량만 33만대에 이르는 국가 대동맥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 중부고속도로가 논의될 당시만 해도 '과연 누가 얼마나 이용하겠는가'라는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개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한 정체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건설한 지 만 10년도 안 돼 확장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은 뼈아픈 교훈 사례로 지적됐다. 당초 2006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했던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는 사패산 터널 구간이 북한산국립공원의 자연환경과 사찰의 수행환경에 훼손된다는 이유로 환경 및 불교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장기간 공사가 중단됐다. 2002년 8월 노선조사위원회 구성을 시작으로 여러 노력을 했으나 합의점 도출에 실패한 끝에 2003년 12월 역사.문화.환경보전을 위한 제도개선 추진 등을 약속하고 공사가 재개됐다. 이 책자는 "사패산 터널공사 갈등을 통해 얻은 성과는 성장위주의 가치관에서 역사와 문화적 환경과 같은 무형가치를 중시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정하고 개발과 보존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부산 간 최저 운임은 보통 여객 3등 운임이 1946년 91원(지금의 화폐단위의 1천분의 1로 환산하면 0.091원)이었다. 2008년 최저 운임 보통열차인 무궁화호가 2만7천700원임을 감안하면 그동안 30만배나 올랐으며, 무궁화호 운임을 1976년(2천170원)과 비교하면 32년 동안 13배가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