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후텐마 기지 이전 갈등 고조_롤 포커 신선한_krvip
<앵커 멘트>
대등한 ‘미일 관계’를 표방한 일본 하토야마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갈등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후텐마 기지’죠?
네, 양국이 이미 합의 한대로 후텐마 기지를 인근 지역으로 옮기겠다는 미국. 당초 계획을 바꿔 오키나와 밖으로 빼겠다는 일본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는데요.
이 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미군 운용과도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미일 갈등의 진원지이자 동북아 안보 지형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후텐마 기지를 김대홍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오키나와 '나하'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 취재팀은 주택가 밀집 지역에 있는 한 시민 공원을 찾았습니다.
비를 맞으며 공원 전망대로 올라서자 후텐마 비행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수시로 이착륙하는 공격 헬기와 대형 수송기들. 요란한 굉음을 내며 주택가 위로 아슬아슬하게 이착륙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역 주민들은 비행기가 불시에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인터뷰> 야마자키(주민) : “미국의 작전에는 주요 거점일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초.중학교가 밀집돼 있어요”
<인터뷰> 요코이(주민) : “기지는 전쟁이나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없는 것이 좋겠어요”
실제로 지난 2004년 대형 수송헬기가 후텐마 기지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추락했습니다.
공원 전망대에 설치된 안내판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기지를 이전해 평화로운 마을을 되찾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후텐마 기지 이전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노력은 결국 10년 만에 결실을 맺었습니다. 지난 2006년 당시 일본 자민당 정권과 미국은 후텐마 기지를 오는 2014년까지 오키나와 중부 나고시에 있는 주일 미군 슈와브 기지로 이전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후텐마 기지에서 북서쪽으로 60킬로미터쯤 떨어진 나고시.
후텐마 기지가 이곳에 오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쟁이 뜨겁습니다. 시내 중심가에는 후텐마 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한 달이 넘도록 걸려 있습니다.
대대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해오면서 순박하게 살아왔던 지역 주민들이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찬반 의견으로 갈려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내년 1월 치러지는 시장 선거에서도 기지 이전 문제가 최대 쟁점입니다. 기지 이전에 찬성하는 현직 시장과 반대파 단일 후보가 현재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찬성파는 기지 이전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미일 관계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현실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반대파는 후텐마 기지가 옮겨오면 미군 범죄 등 주변 치안이 불안해 지고 환경도 파괴된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반대파 후보 후원자 : “기지 문제에 있어서, 주일미군의 75%가 오키나와에 있습니다. 전쟁 이후 계속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오키나와의 평화와 환경 보전을 위해서는 기지 이전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후텐마 기지 이전 예정지에서 텐트 농성을 벌이고 있는 히로시 씨도 반대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인터뷰> 히로시(후텐마 이전 반대자) : “기지로부터 피해가 계속 나오고 있어요, 강간이라든지 소음이라든지 견딜 수가 없어요”
동료들과 함께 텐트 생활을 한 지도 벌써 6년이 다 돼갑니다. 힘들고 외로운 투쟁이었지만 민주당 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미군기지가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문제가 이처럼 꼬이게 된 것은 '대등한 미일 관계 정립'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일본 민주당 정권이 그 상징적 조치로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오키나와를 지역 기반으로 하는 사민당이 기존의 미.일 합의를 수정하지 않으면 연립정권에서 이탈하겠다며 민주당을 압박한 것도 또 다른 이유입니다.
<인터뷰> 후쿠시마(일본 사민당 당수) : “조금 시간이 걸려도 최종적 결론이 날때까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오키나와 현민의 뜻을 담아야지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결국 하토야마 정권은 '총선 공약 이행'과 '연립정부 유지'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이번 주까지 결정을 내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하토야마(일본 총리) : “수개월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정부와 여당이 열심히 연구, 조사하겠습니다”
미국도 후텐마 문제는 양보하기 힘듭니다.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재편과 맞물린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6년 미일 양국은 후텐마 기지를 나고시로 이전하고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8천명을 괌으로 이전한 뒤 오키나와 가데나 이남 미군 기지를 일본에 반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런 패키지 합의 가운데 첫 번째 후텐마 이전이 좌절되면 동아시아 미군 재편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아미티지(전 미 국무장관) : “10년 동안 합의한 내용이 완전히 백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더 큰 문제는 후텐마 이전 문제가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작전 계획에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미군 기지의 오키나와 밖 이전은 사실상 괌 이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될 경우 가장 긴급히 전개될 미 해병 전력이 그만큼 일본이나 한반도로부터 더 먼 곳으로 옮겨간다는 겁니다.
후텐마 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대폭 증강된 미군의 병력을 한반도로 이송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때문에 그 기능이 어디로 이전하느냐는 동북아 안보와도 직결됩니다.
미국이 후텐마 기지 이전과 함께 괌 주둔 미군 병력을 증강하려는 것은 21세기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한편 군사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도 있습니다.
후텐마의 향배에 미일 양국은 물론 한국과 중국, 북한까지도 비상한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