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받은 술은 어디로?…나눠먹고 입 닦은 적십자사_손상된 슬롯이 수리되었습니다_krvip

기부받은 술은 어디로?…나눠먹고 입 닦은 적십자사_보글 파워 볼_krvip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대한적십자사에는 각종 기부 물품이 들어옵니다. 최근엔 좀 특이한 '기부 물품'이 들어왔습니다.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은 이 특이한 '기부 물품'을 별도 보고도 안 하고, 기록에도 안 남기고 조용히 나눠 가졌습니다.

1억 기부 회장님이 들고 온 '술 박스'...유혹의 씨앗?

지난 4월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축하할 일이 생겼습니다. 한 기업체 회장이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겁니다. 이른바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고액기부자 클럽 가입식을 열었습니다.

회장님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20개가 넘는 튼튼한 상자를 갖고 왔습니다. 상자에는 와인 60병과 맥주 480캔, 시가 150만 원 상당의 술이 담겨있었습니다. 회장님은 "와인은 직원들 선물이고, 맥주는 적십자 관련 행사에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술, 어디에 쓰였을까요? 행사에 참여한 대한적십자사 직원 22명과 봉사원 17명, 39명이 와인을 골고루 나눠 가졌습니다. 맥주 480캔은 봉사회 워크숍 등 대한적십자사 내부 행사에 사용했습니다.


"받았으면 회계처리 했어야"...'기부'에 예외는 없어

기부일까요? 선물일까요? 기부의 사전적 뜻은 이렇습니다.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음.

대한적십자사는 내부 감사를 했고 '기부'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경기지사의 기관장과 책임자에게 '주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부적절한 기부금품 사용에 동참하거나 방조했다는 것입니다.

일단 받은 것 자체가 잘못이었습니다. 구호 등 제 용도에 쓰이지 못할 '기부 물품'이라면 받지 말았어야 한다는 게 감사팀의 지적입니다.

받았다면 '기부 물품'으로 처리했어야 했습니다. 통상 기부 물품은 접수 절차를 거쳐 관리합니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회계처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무시하고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기부받은 물건들을 임의대로 처리했습니다.

감사원은 지난 24일 관련 민원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소지가 있는지 따져보고 있습니다.


6명 중 1명꼴로 '징계·경고·주의'

'술 박스'가 불러온 사태를 '해프닝'이라고 넘기기엔 대한적십자사의 과거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지난 5년간 징계 처분이 급증했습니다. 파면, 해임, 정직과 같은 징계는 물론, 경고나 주의를 받은 '징계 외 처분'을 받은 직원이 한 해 710명. 같은 해 직원이 3천9백 명인 걸 감안하면 6명 중 1명꼴입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29개 공공기관의 비위행위 조사에서 대한적십자사는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후원과 모금으로 운영하는 구호단체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지난 한 해, 대한적십자사에는 국민 370만 명이 회비와 후원금을 보냈고, 148억 원의 기부금품이 모였습니다. 매 순간 '돈'과 '물건'을 만지는 사람들. 청렴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