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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이 이전한 서울 용산의 지명이 일제강점기 왜곡된 것으로, 이 지역을 '용산(龍山)'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제의 잔재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용산 둔지산 제자리 찾기 시민연대'는 16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국방부와 미군기지가 있는 지역을 용산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제가 이 일대를 강제수용해 주둔군 사령부를 설치하면서부터"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곳은 원래 조선 시대에 한성부 남부 둔지방 내 지역으로, 이곳에 있던 나지막한 산의 이름은 '둔지산(屯芝山)'이고 고유어로는 '둔지미'였다"고 밝혔습니다. '미'는 '메'나 '뫼'와 마찬가지로 산을 뜻합니다.

용산 둔지산 찾기 연대는 "선조들이 수백 년 동안 이 지역을 부른 마을 이름은 둔지미"였다면서 "역사성과 장소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잘못된 지명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연대체에는 녹색연합과 서울환경운동연합, 문화연대, 용산역사문화 사회적 협동조합 등 시민사회단체와 한국땅이름학회, 용산학연구센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등 11곳이 참여했습니다.

■ 옛 '용산'은 무악재 지맥으로 다른 곳.. 남산 자락 아냐

이 지역의 지명이 원래 둔지미였다는 사실은 여러 고지도와 문헌에서도 쉽게 확인됩니다. 미국 위스콘신대 밀워키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글 지도 '경조오부도'가 대표적입니다.

이 지도는 구한말 미국 대리공사를 지낸 조지 클레이튼 포크가 1895년 구입한 것입니다.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의 일부인 경조오부도를 한글로 재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조오부도의 한문판과 한글판 모두 현재 국방부와 미군기지가 있는 남산 아래를 둔지미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남산에서 남쪽 서빙고로 내려가는 산줄기 가운데 서쪽으로 흘러내린 지맥입니다.

그런데 지도에서 '용산'이라는 지명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옛 용산'은 현재 국방부와 미군기지가 있는 남산 아래 지역을 가리키지 않았습니다. '옛 용산'은 오늘날 마포구 도화동에 가까운 용산구 산천동 위치로, 현재 용산성당이 있습니다. 둔지산과 옛 용산 모두 70m 남짓한 높이로, 옛 용산 일대는 현재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경조오부도에서 보듯, 옛 용산은 남산 아래가 아니라 한양도성의 서쪽인 무악산에서 만리재와 효창묘를 거쳐 한강 마포에 이르는 산줄기입니다. 이 지형이 용을 닮았다고 해서 예로부터 용산(龍山)이라고 불렸습니다. 용산이라는 지명은 조선 전기인 1451년에 편찬된 고려사에 등장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지명이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비고 등에도 용산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용산 둔지산 찾기 연대는 "지금의 국방부와 미군기지는 용산 자락에 들어선 것이 아니고, 세간에 떠도는 용산의 지맥, 용의 기운이 모이는 명당 운운하는 말들은 지금의 용산과 무관한 이야기"라고 덧붙였습니다.

■ 일제, 둔지미를 용산으로 왜곡

지금의 국방부와 미군기지 일대를 용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일제가 이 땅을 강제수용하면서부터입니다. 이 지역에는 수백 년 된 둔지미 마을이 있었는데, 일제는 러일전쟁 승리 이듬해인 1906년부터 118만 평에 이르는 이 일대에 군사기지를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1906년 제작된 '한국 용산 군용 수용지 명세도'를 보면, 남산 아래 이태원과 둔지산, 서빙고 일대를 수용하면서 지도 명칭을 '용산'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실제 용산이 위치한 지도 서쪽은 지도상에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어 1908년 일본인이 제작한 '경성 용산 시가도'와 1909년' 경성 용산 시가전도' 역시 이 일대를 둔지미나 둔지산이 아닌 용산으로 표기합니다. 1910년 국권침탈 이후 둔지미라는 지명은 공식 문서에서 사라졌습니다.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을 지낸 김천수 용산학연구센터장은 일제가 둔지산 일대의 지명을 왜곡해 용산으로 표기했고, 1914년 경성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이 일대를 경성부 용산으로 공식 명칭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제가 이처럼 용산이라는 지명을 자의적으로 끌어다 쓴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명시적인 문헌 등은 발굴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다만 김천수 센터장은, 용산이라는 지명의 상징성과 의미 때문에 일본인들이 둔지산 대신 용산을 지명으로 끌어다 쓴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 "용산의 잘못된 지명은 일제 침략의 결과…대통령 집무실 명칭에 포함해선 안돼"

해방 이후 일제의 병영에 다시 미군이 주둔하면서, 둔지미라는 고유지명은 회복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용산 미군기지의 일부가 됩니다. 서울 중심부에 있지만 반세기 넘게 한국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 되면서 둔지산은 잊혀진 지명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미군기지 내 사우스포스트, 물탱크 두 개가 놓인 언덕일 뿐입니다.

하지만 둔지산은 역사적 가치가 작지 않습니다. 1454년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둔지산에는 조선 초기 국가 제단이 집중적으로 설치됐습니다. 또, 숭례문을 나와 동작 나루와 서빙고 나루를 통해 영남으로 내려가는 주요 교통로였습니다.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이 '두운지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둔지산의 산세와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 전하기도 합니다.

강세황의 ‘남산여삼각산도’, 18세기 후반. 용산 둔지산 제자리 찾기 시민연대 제공
용산 둔지산 찾기 연대는 "용산과 둔지산의 제 이름과 제자리를 찾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왜곡된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뒤틀린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다보니 "미군의 반환 이후 최초의 국가공원으로 추진되는 '용산국가공원'이 또다시 일제가 붙인 지명을 그대로 사용해 결정됐다"고도 지적했습니다.

김천수 센터장은 "근대사의 질곡 속에서 현재 용산 지역은 러·일전쟁과 한국전쟁으로 변곡점을 맞았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다시 한번 정체성을 새롭게 하게 됐다"면서 "공간의 역사적 맥락과 정체성을 고려해 역사적으로 정확한 이름을 쓰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이들은 "국방부와 미군기지 일대에 붙여진 용산이라는 지명을 당장 둔지산으로 바꿀 수는 없다"고 전제하고, 우선 새 대통령 집무실 명칭에 용산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아울러 용산국가공원을 조성할 때 이 일대의 정확한 지명이 '둔지산'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정부 차원에서 고유 지명을 살리는 노력을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