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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7명의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탈북민에게 무료 영어 교육을 해주는 비영리 단체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에서 영어를 배운 탈북민들인데요.

미국의 정치인·학계 인사 등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북한에서 겪은 직간접적 경험을 연설하기 위해, 통일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겁니다. 과연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요?

■ "허울뿐인 '장애인의 날'…북한에 목발·휠체어 보낼 날 꿈꿔요."


2018년 가족들과 함께 중국으로 탈북해 한국으로 넘어온 맹효심 씨는, 소아마비로 인해 걷지 못했던 어머니를 통해 북한 장애인들의 삶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다른 많은 나라들처럼, 북한도 장애인보호법을 제정했고 매년 6월 18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하는 등 장애인들에 대한 혜택을 명문화해놓긴 했지만, 이는 '허울'뿐이었다는 게 맹 씨 주장입니다.

한 예로 탈북하기 이전 맹 씨 가족들이 평양으로 여행을 갔을 때, 맹 씨는 그곳에서 군 복무 중 장애를 입은 많은 사람들을 봤다고 합니다. 그들 중엔 다리가 없어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북한 장애인 보호법은 국가에 기여하다 장애를 가진 군인들을 특히 대우하라고 했지만, 참전용사 출신일지라도 장애인의 삶은 '대우받는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겁니다.

또 장애인 보호법은 장애인들에 대해선 무료로 의료 제공을 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정작 맹 씨 가족은 어머니의 한쪽 팔을 수술하기 위해서 갖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아야 했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북한 장애인들의 삶의 실상에 대해 알리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한다는 맹 씨. 언젠가 기회가 되면, 북한의 장애인들을 위해 목발과 휠체어를 북으로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얘기합니다.

■"물건 취급받던 삶…중국 내 탈북민 도와야"

워싱턴 D.C.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 ‘The Fund for American Studies’에서 연설하는 김명희 씨의 모습.
1998년부터 탈북을 시도해 총 세 번의 시도 끝에 한국으로 올 수 있었던 김명희 씨는,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했던 시절에 대해 말했습니다.

한때 '북한이 세계 최고의 나라'라고 믿었다는 김 씨가 처음 탈북을 결심한 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라고 합니다. 당시 친구와 이웃들, 심지어 부모님까지 질병과 기근 등으로 세상을 떠나자, 현실을 믿기 어려웠던 김 씨는 언니와 함께 탈북하고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자신의 삶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사람이 아닌 사고 파는 물건처럼 취급당했고, 탈북 첫날 중국에서 붙잡힌 김 씨는 언니와 헤어졌다고 합니다. 결국, 인신매매를 당해 한 마을로 보내진 김 씨는 너무도 괴로웠지만, 다시 언니와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북으로 송환되어도 다시 탈북했다가 공안에 붙잡히기를 반복했습니다.

세 번째 탈북 때도 공안에 붙잡혔지만 운 좋게 풀려난 김 씨는, 사정을 알고 있는 몇몇 중국인들의 도움으로 결국 언니를 찾아 한국에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운이 좋았지만, 여전히 중국에는 인신매매와 강제 결혼, 폭력, 감금 등으로 고통받는 북한 여성들이 많다는 김 씨. 그는 국제기구 등이 중국 내 탈북민을 도와야 하고, 중국 정부도 탈북민의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FSI는 이들이 앞으로도 젊은 '북한 인권 활동가'로서, 영어로 북한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