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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월급 120만 원 받는 전화상담원, 밤엔 가수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새해 정부경제정책의 가장 큰 고민도 일자리 늘리기다. 이 같은 현실에 굴하지 않은 젊은이가 있다. 국립국악고교, 한양대학교 국악과 출신의 정민아(28) 씨. 오전 9시~오후 6시 서울 역삼동의 한 인터넷 회사에서 전화상담원으로 일하고 밤엔 홍익대학교 인근 라이브클럽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며 노래한다. 2005년 8월 사비를 털어 어머니의 이름을 딴 첫 싱글 '애화(愛花)'를 냈던 그는 최근 첫 정규 음반 '상사몽(相思夢)'을 발표했다. "악단 시험에 여러 번 떨어진 후 비정규적인 사설 연주단, 학교의 특별활동 강사로 일했어요. 수입이 고정적이지 못했죠. 자취방 월세 등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찾았는데 가야금을 버리니 제겐 아무 기술이 없더군요. 컴퓨터 프로그램 엑셀(Excel)도 못 다뤘으니까…." 전화상담원을 시작한 지도 4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엔 대학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를 선택했다는 자괴감, '선생님' 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에 힘들었다. 하지만 일에 적응한 지금, 나름의 재미를 찾았다. 이곳에서 받는 월급은 120만 원. "전화상담원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고객들도 있죠. 청구된 요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네가 내 돈 내놓으라'고 하시는 분도 하루 1~2건 정도 돼요. 이젠 노하우가 생겼지만 처음엔 욕설에 마음을 다쳤죠." "소중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그는 "생각보다 음악 전공자들도 졸업 후 직장 구하기가 힘들다"며 "또래 친구는 시집을 가거나 교직에 몸 담거나 개인 레슨 강사 등을 한다. 의외로 전화상담원 이름을 갖고있는 음악 전공자 선배들도 더 있다"고 덧붙였다. 생계를 위해 낮 시간을 보낸 정씨는 퇴근 후 25현 개량 가야금을 들고 홍익대학교 인근 라이브클럽으로 발길을 돌린다. 밤 시간 무대는 온전히 그 만을 위한 세계다. 인디 밴드들이 주름잡는 클럽 무대에 가야금을 들고 데뷔한 건 2004년 집 인근 경기도 안양의 클럽 오렌지 폭스가 인연이 됐다. 인디 음악을 좋아해 이곳을 자주 찾던 그는 '주말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하면 연습실을 사용하게 해준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클럽 운영자이던 록밴드 고스락의 베이시스트 조한동은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 이곳 공연을 시작으로 2005년부터 홍대 클럽 순회가 시작됐다. "가야금은 모든 국악기가 그렇듯 슬픔을 이겨낸 한(恨)과 기품이 있죠. 동시에 어떤 악기와도 어울리는 장점이 있어 양악기와도 함께 놀 수 있어요. 클럽 공연 앙코르 곡으로 가야금을 뜯으며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를 땐 환호가 굉장하죠." '가야금 싱어송 라이터'로 불리는 그는 음반 '상사몽'에서 작사ㆍ작곡ㆍ편곡ㆍ보컬ㆍ가야금 연주까지 소화했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음악을 추구한다. 시간과 공간을 통해 운명처럼 만들어지는 음악을 뜻한다. "제 친구 지인의 블로그에 '아침에 지하철로 출근하며 창문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정민아의 음악 때문이었다'란 글과 함께 싱글 '애화' 수록곡이 깔려있더군요. 이 블로그 제목이 황진이 시인 '상사몽'이어서 음반 제목에 붙였죠." 정씨의 '이중생활'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처음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길이 아닌 걸 알고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지더라"는 그의 말은 가슴에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아로새기게 만든다.